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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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그림, 누가 그렸는지 참 유쾌하다. 개인적으로 깜빡 속았거든... 무슨 이야기인지는 막상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미 각. 어쩌면 인간만이 갖고 있을지 모를 '미각'이라는 존재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기쁨 중의 하나다. 물론 많은 동물들이 감각 기관으로서의 맛을 구별할 수 있으며, 또 선호하는 먹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본능적인 식욕일 뿐, 인간의 경우처럼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경험'에 대한 기쁨은 느끼지 못 할 것이다. 그 증거로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식습관'을 갖는 종족은 인간 뿐이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난 그냥 배만 채우면 되지 별로 그런 것엔 관심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막상 맛있는 음식이 입 속으로 들어가면 행복한 얼굴을 하게 되지 않는가. 식욕을 넘어선 미식에 대한 만족감의 표현을 말이다.

그러 고보면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맛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아졌던 것 같다. 싸이월드나 블로그 등을 통한 인터넷 문화의 엄청난 확산,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의 일반화 등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은 엄청나게 올라갔고, 지금은 너무나 쉽게 분위기 좋고 맛있는 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음식점들은 훨씬 더 장사하기 힘들게 된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반대로 정말 훌륭한 집이라면 보다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생각해보면, '맛의 달인', '미스터 초밥왕', '명가의 술' 등, 미각을 자극하는 컨텐츠들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일본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한 소재는 아니었다. 한국음식의 엄청난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2003년에 발매되기 시작한 '식객'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지금에 와서야 영화, 드라마 등으로 붐을 일으키게 된 것도 요즈음의 정보 폭발에 대한 이런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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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이라는 걸출한 컨텐츠가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폭발적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현 시점의 정보화가 가져온 시대적인 트랜드이기도 하다.

그 런 의미에서 올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독특한 작명센스의 상에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상한, '금단의 팬더'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살 만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매년, 미스터리&엔터테인먼트 작가의 발굴 및 육성을 목표로 하는 문학상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장르소설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는 덕분에 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상이기도 한데, 이미 '맛'이나 '미식' 에 대한 컨텐츠가 꽤 대중화되어버린 일본에서도 '미식 미스터리'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등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실제로 읽어보는 중 우습게도 침을 삼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 취직하고, 십여 년 넘게 요식업에 종사한 저자의 글에는 인간의 본능을 넘어선 '미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훌륭한 음식 자체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는데다, 실제로 어떻게 묘사하면 사람들이 '맛있게' 느낄지에 대한 감각을 파악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개인적으로 프랑스 음식에 대한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기에 모르는 요리나 식재료에 대한 부분이 많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이 고이는 것은 분명 저자의 리얼한 묘사가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머릿속에 먹음직한 음식이 그려지는 소설은 개인적으로도 처음이라는 느낌이다.

언제나 무언가의 극한을 추구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 소설은 그런 '미식'의 극한의 추구에 따라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의 욕망이 그려내는 참혹함을 말한다. 제목에서의 금단의 팬더는 '원래는 대나무를 먹지 않았던 육식동물인 팬더가 일련의 사건으로 신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 결과 대나무를 먹지만 육식에 대한 과거의 그리움은 본능적으로 남아있다'라는 마치 전설같은 컨셉에서 나온 것으로, 이 책 전반의 '미식'에 대한 욕망의 내러티브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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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그르누이와의 비교는 참 어울리는 비교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거... 대놓고 '스포일러'...아닌가?



그 런 작가의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역량은 전체적인 소설의 등급을 한 단계 높여주었고,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깊이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장르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그런 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그런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미식'이라는 코드와 그에 따른 훌륭한 묘사 덕분에 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어 있는 지금 시점의 우리나라라면 이 책,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참 '맛있는' 소설이다. 한여름 식욕도 동하지 않는 습기찬 날씨에 맛깔나는 음식과 참혹한 미스터리의 마리아주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 한 권이라면 참 만족스러운 '미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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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들의 칭찬이 모두 '미각'에 집중되다는 것. 분명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짚어주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찬조출연해준 판다Z군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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