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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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되는 분량의 소설을 열흘 정도나 걸려 읽은 것은 어쩌면 이 책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거다. 듣기로는 분명, 작가 김형경은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작가'였건만, 내가 느낀 그녀는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포착하여' 먹먹하게, 우울하게 만드는 데 '선수'였다.

사실, 열 일곱살 먹은 소녀가 갑자기 부모를 잃는다는 설정은 많다못해 넘쳐나는 설정이고, 개인적으로도 그런 극한 상실과 고통에 대한 글을, 만화를, 영화를 참 많이도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니은이는 좀 달랐다. 불쌍하다는 연민의 감정이 아니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처한 상황 하나하나가 불쌍하기보다는, 눈물난다기보다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펑펑 우는 울음이 아니라 온몸이 마른 눈물의 소금기로 가득한 그런 느낌이랄까.
저자는 책 속에서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 가는 것도 같고, 맘 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137p)"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왜 책을 읽는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참.
책 때문인지, 혹은 지금까지 마셔본 것 중 가장 맛있었던 더치커피를 마시면서 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랑 블루'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나의 '남자답지 못한' 감정적인 독서는 우습게도 문자메씨지 한 통에 의해 끝났다(몇 번이고 책을 던지는 경험을 모두 끝내고). 책 중 니은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어가는 그녀에 비해 나 자신은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고래를 만났음에도. 열 일곱 소녀보다도 못한 어리석은 남자 한 '마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지만, 만 팔천원에 경매에서 산 한 언니의 문자메씨지 몇 통에 의해 치유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어쩌면 참 재미있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상처받고, 또 치유되면서 느끼는 성장소설의 묘미를 이렇게 느낀 것이 참 간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성장소설들이 상처와 치유가 아닌, 발전을 통해 우뚝 서는 방향을 취하고 있던 것들 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능글맞을 정도로 사람 마음을 건드릴 줄 아는 작가 김형경의 힘이었을까.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의 힘이었을까. 간만에 즐겁게 한 권의 책에 조종당한 느낌이다.
그래, 성장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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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도 치유의 문자 메씨지를 보내줘. 만팔천원이면 되나? 아님 이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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