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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소년들 - 수단 내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전하는 세 소년의 충격 실화
벤슨 뎅 외 지음, 주디 A. 번스타인 엮음, 조유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막연함.
이 책을 잡으면서 갖고 있던 나 자신을 고백하자면 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얼핏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수단 내전'과 그에 따른 참상. 하지만 그 정도 뿐이었던 나의 무지. 그리고 그에 따른 막연함.
그 리고 그런 참혹함 속에 던져진 사람들에 대한 나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가끔씩 얼마간의 동정심을 가질 뿐, 그런 동정심의 발로로 기부하기 시작한 '얼마간의' 기부금. 그 정도로 나의 알량한 자기만족은 끝이 나고 가끔씩 소식을 접했을 때 떠올리는 동점심도 금새 사그라들며, 곧 나 자신의 삶에 열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막연한' 얼마간의 동정심.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수단 내전 [Sudanese Civil War]
요약 |
아프리카 수단에서 일어난 유혈분쟁. 1983년부터 아프리카계 함족인 남부 반군이 아랍계 셈족으로 이루어진 북부 정부군에 맞서 벌인 반정부 분리 무장투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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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주로 남부 아프리카계 함족인 기독교도와 토속 정령신앙을 믿는 주민들로 이루어진 수단인민해방군(SPLA)은 중앙정부의 지나친 이슬람 원리주의와 차별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남부지역의 자치권과 자원이용 확대를 요구하면서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수단인민해방군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존 가랑(John Garang)을 지도자로 세우고 에티오피아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수단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1983년부터 시작된 무장투쟁은 처음에는 종교전쟁의 성격을 띠었지만 역사적 갈등과 석유·금 등 자원 쟁탈전이 맞물리면서 20년 넘게 장기화되었다. 그동안 굶주림, 질병으로 200만여 명이 사망하고, 400만 명 이상의 난민과 수십만 명의 기아 가 발생하며 국제적인 문제로 떠올랐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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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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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슨 뎅, 알폰시온 뎅, 벤자민 아작이라는 세 명의 수단 출신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이 책은, 이 세 명의 소년이 미국에 도착한 후, 이 책의 저자이며 저 세 소년의 후견인인 주디 번스타인 여사에 도움으로 각각의 머릿속에 남겨진 참혹한 도망의 기억들의 조각을 그들의 직접 서술을 통해 엮는다.
겨우 다섯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달린다.
이 책의 원제인 'They Poured Fire on Us from the Sky'처럼,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벼락으로부터 본능적으로 도망갈 뿐이다. 굶주림과 설사, 말라리아, 황달같은 자연적인 문제들은 오히려 무섭지 않다. 인간들의 잔혹함이라는 더 큰 공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필사의 탈출을 통해 도착한 곳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에티오피아'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꼬리표는 '기아'다. 도대체 누가 '기아'로 알려진 그 나라로 피난을 갈 것인가.
그것도 그나마, 다시 수단으로 쫓겨나게 되고, 그들은 다시 한 번 케냐까지 달린다.
무려 2만 명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들 중 반 이상은 그 짧은 생애를 마쳤고.
450 페이지 가량의 두터운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소년의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단숨에 읽어나갔다. 첫 부분에서는 조금 지루했다. 마치 부시맨을 떠올리게 하는 그들의 원시적인 생활방식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수단에서는 상당한 부자라 할 수 있는 그들의 풍족한 삶의 이야기는 '그저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적 소양이 발달할 만한 교육을 받지 못 했을, 세 소년이 직접 쓴 글들이 소설로서의 재미를 줄 만큼 세련될 리가 없기 때문. 하지만 가끔은 잘 쓰여진 다큐멘터리의 인위적인 감정 조절보다, 서투른 '사실'이 더 충격적이고 와닿는 법. 직접 겪은 이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기운을 느끼면서, 함께 공포에 떨고 또 그 비참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그 참혹함에 분노가 일었다.
사실, 이슬람교도가 무슨 악마겠는가. 세상 모든 죄는 저지르는 자의 몫이다. 테러리스트가 나쁘고 총기난사를 한 자들이 나쁜 거지, 이슬람교도가 나쁘고 게임이 문제인 것은 절대 아니지...
이 아이들에게 대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어른들이 만들어낸, 서로의 이익을 위한 다툼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눈물겹다. 얼마 전 읽었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도 느꼈고,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눈물겨운 우리네 역사 속에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육필로' 직접 전해주기에 더욱 뻐져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쟁의 극독을 마신 나라들의 이야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런 가슴 한 켠의 묵직함이 언제까지 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또 그저 '얼마간의 동정심'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에 더욱 그 묵직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사실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소중했던 것만은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고.
이 책을 읽고 '반전'같은 대단한 것을 말하는 위선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지로 인한 막연함'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에 감사한다.
코끼리 두 마리가 싸울 때, 짓밟히는 것은 풀밭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