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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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시 노구찌 히데요라는 이름을 아는가. 세계적인 세균학자로서, 매독, 소아마비, 광견병, 황열병 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그는, 일본 1000엔짜리 지폐의 모델로 활동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위인전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로서 거의 신격화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위인들도 확실히 모르는 내가 그를 알고 있는 것은 어려서 봤던 무츠 도시유키의 만화 '닥터 노구찌'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큰 화상으로 인한 왼손 불구라는 환경적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각고의 노력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한 사람의 성장 드라마였던 저 만화는 그야말로 불굴의 투지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는 인간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그랬기에 아직까지도 내 머리 속의 노구찌 히데요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전형적인 위인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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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노구찌 히데요는 만화 '닥터 노구찌'의 바로 그 '위인'이다. 그리고 일본의 지폐에 사용될 만큼이나 일본내에서의 입지도 굉장히 높은 것이 사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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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그는 많이 달랐다. 마치 책 속에 소개된 '미국과 일본에서의 평판 차이' 만큼이나(그건 그렇고, 일본에서도 지폐 초상화 문제로 많이 시끄러운 모양이다).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노구찌 히데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그의 대부분의 연구가 지금에 와서는 의미있는 것이 거의 없고, 또 심하게 말하면 '허위'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 일본인도 아니고, 겨우 만화 한 작품을 읽었던 내가 충격이었는데, 당시 이 책이 발매되었던 일본 독자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그럼 이 책은 그런 노구찌 히데요라는 사람에 대한 반박에 대한 책인가하면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이야기는 분자생물학의 화두인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시작일 뿐이다. 그러고보면 참 독특한 구성이다. 노구찌 히데요처럼 록펠러 대학에서 연구를 거쳤던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경험적 에피소드로부터 하나하나 과학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리고 노구찌 히데요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홈런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3루타성은 되는 시작인 셈이다.

그렇게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에피소드, 그리고 과학계에서 '칭송받지 못한 영웅들(Unsung Heroes)'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개해가면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책,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다. 어쩌면 과학적인 사실로서 '체계적'으로 하나둘 설명하는 책이었다면 그야말로 '지식의 요약정리'라는 느낌이 들었을거고, 또 그랬다면 250페이지 남짓의 빡빡한 텍스트를 다 읽었을지 의문이다(이 나이에 생물 시험볼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의 경험 속에 녹아든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솔직히 문구 자체가 식상하고 거짓말같지만 정말 그렇게 느꼈다)를 하나 하나 빠져들어 읽는 동안 어느샌가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특히, 생명을 논하고 있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 연구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면 좀 이상할까. 어떤 의문에서 그 연구가 시작되었고, 또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이 가장 재미있었다. 짜릿한 흥분도, 또 좌절도 있는 그런 인간적인 부분들. 마치 과학이 아닌 일종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흥미를 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옮긴이인 김소연씨의 '롤러코스터같은 책'이라는 말에 참 공감이 간다.
그리고 생명을 연구하기에 그런 것일까. 과학자의 글이라기엔 극히 감성적이며 또 문학적인 느낌의 글솜씨는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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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과서에 나올 듯한 모식도를 보면서 오히려 흥미를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분명 나 자신이 아닌 교과서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펼쳐진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결국 한 점을 향한다.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저자의 소년기부터의 의문. 그리고 지금까지도 확실한 답을 낼 수 없는 우리의 의문점인 그 것.
인 간의 끝없는 탐구 정신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분자생물학이란 학문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한 수많은 실험과 인공적인 변화를 꾀했다. 그러는 동안 그런 과학의 발달로 인한 특혜도 많았지만, 그 반대도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저자의 생명에 대한 해석이 더욱 감동적인 것일지도. 김이 빠질까봐 결론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유전자 조작 옥수수, 광우병 논란 등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뜨거운 감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한 번 읽고 생각해볼 만한 그런 책이다.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생명에 대한 매혹적인 관심과 재미, 그리고 소중함을 전달하는 이런 책을 생물 교과서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부쩍부쩍 드는 하루다.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곳만은 아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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