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tique 판타스틱 2008.6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 / 페이퍼하우스(월간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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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넘게 나와주어서 고맙다. 판타스틱! 이 텃밭 속에서

유 년시절, 나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은 다름 아닌 SF와 추리 소설이었다. 어머님의 선견지명(?) 이셨는지, 아니면 몇몇 출판사의 멋진 상술이었는지, 집에는 세계문학 걸작선, 명작동화 전집 등등의 전집류들이 여럿 있었고, 신기했던 것은 당시 'SF 걸작선'과 '추리소설 걸작선'이라는 녀석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왠지 요즘 부모님들이라면 안 사줄 것 같은 그 시리즈들. 소위 당시 트랜드였던 '지능계발'을 위해서였을까?(그런데 왜 오락실은 안 보내주셨을까?) 암튼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분위기 속에서 나를 가장 매료시켰던 것은 다른 책들보다 SF와 추리. 지금에 와서는 '장르문학'이라고 불리는 그 녀석들이었다.

그 런 과거 때문일까. 지금도 SF와 추리 그리고 판타지와 하드보일드 등 소위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국내에서는 (약간은) 마이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장르들을 참 좋아한다. 다른 책들도 좋아하지만, 이 장르들이 갖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매력은 손을 뗄 수 없는 그런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그런 가운데, 이 '판타스틱'이라는 잡지의 발매는 개인적으로는 '만세'를 부를 일이었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그 현재와 미래, 방향성을 읽을 수 있고, 그를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주고, 새로운 면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잡지만한 매체가 사실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들의 지식들을 얻는 것과는 또 다른 강점을 분명 갖고 있는 것이 잡지, 특히 '전문지' 아니겠는가. 더 이상 '장르문학 잡지 한 권 없는 나라'에서 살지 않아도 되게 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솔직히 우려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나라 잡지시장의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장르문학이라는 장르의 마이너함 역시 모르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몇몇 애호가들이 'SF 소설을 사는 이유'로 '출간 당시에 사지 않으면 금새 절판되어 구할 수 없기 때문'(본문 51p)이라는 푸념 섞인 토로를 할까. 그런 상황에서 판타스틱의 선전(어쨌든 1년이 넘게 발매되었으니까)은 그저 응원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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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부터 지금까지도 건재한 루이스 캐럴의 '실비와 브루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또 다른

그 렇게 살아남은(?) 판타스틱의 이번 호를 보고 있으니 왠지 뿌듯하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새삼 들고. 그렇게 변화, 진화를 하고 있기에 그 생명력 역시 더욱 커지는 것이 아닐까. 편집장이 바뀌었다는 점 등, 내부적인 변화도 많이 있었던 듯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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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 이런 서재를 가질 수 있을까? 여러 의미로 동기부여가 되었던 이번 달 특집, '명사의 서재'.

하 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막대한 컨텐츠의 충실함 만큼은 전혀 변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든다. 지속적으로 내로라 하는 장르문학 작가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재미있는 기획기사들도 좋다(여러 작가나 관계자들의 서가를 공개했던 이번 호 기획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그리고 작지만 다양한 자투리 코너들 하나하나도 충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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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 있는 작가의 연재만화를 보는 재미도 참 좋다. 이번 달에는 유시진씨가 새 판타지 만화 '파문'의 연재를 시작했다.

또 한 매 호, 정력적으로 연재되는 중, 단편 소설들(가끔씩은 루이스 캐럴의 실비와 브루노같은 장편들도 있지만) 덕분에 잡지 치고 읽는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즐거움도 있다. 이번 호에서 건진 작가는 '찰스 부코우키스'. '아웃사이더 문학'이라는 처절할 정도로 바닥을 파고드는 독특한 작가였다. 개인적인 취향과는 좀 벗어나지만.

여러 잡지를 둘러봐도, 한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나 충실한 구성과 컨텐츠의 방대함을 자랑하는 잡지도 참 찾기 힘들다. 게다가 그것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관심사의 책이기에 더욱 애정이 가며, 이렇게 지속적으로 발간되면서도 제 색깔을 잃지 않고 오히려 진화 중이라는 점에서 반갑다. 시간이 지날 수록 퇴색되어가며 안타까움을 자아내던 여러 잡지들을 보아왔기에 더욱.

6,900원. 현재 판타스틱의 가격이다. 컨텐츠의 내용과 질에 비해서 참 저렴한 가격이 아닐까 한다. 그 가격을 보면서 언젠가 판타스틱이 10,000원이 되는 날을 상상하는 엉뚱한 기대를 해본다. 잡지의 경영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잡지의 가치를 인정받아 누구나 10,000원을 아낌없이 지불할 그 날을 말이다.
파이팅! 판타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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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이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기획기사를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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