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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ㅣ 제국 3부작 2
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조정환 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민 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합격점을 줄 만한 그런 존재. 언젠가 다른 이념으로 교체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의 큰 대안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 운용되고 있는 국가들 중 그것들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 아니 그 이전,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힘의 원천으로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되는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적 권력으로 이행하는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해 논했던 <제국>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통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그 작품에서 하지 못 했던 - 그래서 비관론들이 난무하고 수많은 질문과 비판을 낳았던 - 답을 '다중'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통해 내어놓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크게 전쟁, 다중, 그리고 민주주의로 구성된다. 더 이상 우리의 전쟁은 일부 국가들간의 전투로 볼 수 없는 상황이며, 아무리 국지전적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수많은 나라들의 이권 다툼과 세력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제국 주도의 전지구적 전쟁으로 보아야 하는 이런 전쟁들. 그리고 그런 전쟁을 종식시키고 만들어질 '좀 더 민주적인 세계'. 그리고 그를 위한 민주주의의 힘의 원천으로서의 다중을 논한다.
그러면 다중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군중이나 대중같은 획일화되거나 수동적인 주체가 아닌,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래서 만인에 의한 만인의 지배라는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주체로서의 '지구 시민'을 일컫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참 흥미로운, 그리고 상징성있는 그런 인류의 구분법이라는 느낌과 함께, 그렇게 분류됨으로 인해 인식될 힘에 대해 새삼 몸을 흠칫했다. 꽃은 꽃으로 불리는 순간에야 꽃이 되는 법이듯, 우리네 인류도 자신이 그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야 그 힘을 인식하는 법이니까.
이 책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이 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시켜, 결국 탁상공론이 아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래서 60억의 지구 시민들이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기 위해 최대한 그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런 그들의 노력은 세익스피어부터 도스토예프스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심지어는 스타트랙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인 예시와 메타포를 통해 자신들의 사유와 논리를 담는다. 그런 그들의 노력은 비록 굉장히 난해하고 쉽게 잡히지 않는 개념적인 내용들을 좀 더 흥미롭게 읽고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의 설명은 수많은 예시들로 현학을 넘어낸다. 그렇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한 편은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안내자가 된다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쉽지만은 않다. 총 500 페이지에 달하는 본문과 100페이지 정도의 주석들을 따라 읽는 '다중'에의 대장정은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다 읽고 책을 덮은 후에도 그 개념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그 이미지 만으로도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60억분의 1일 뿐인 나 자신이, 어쩌면 한없이 하잘것 없을지도 모를 나 자신이 이 세계에, 이 세계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막연함. 그런 막연함에 대해 '다중'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너는 민주주의의 근원으로서 존재하는가. 라는.
책장에 두고, 두고두고 꺼내볼만한 책이다.
넘쳐나는 텍스트의 압박은 이 책을 읽는 최고의 압박이었다. 좀 더 읽기 편한 편집이 아쉽지만, 그 압박만 넘긴다면 저자들의 멋진 저작에 찬사를 내놓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