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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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라는 이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만났던 신해철은 어쩌면 내 나이 또래의 수많은 이들에게 '음악', '밴드'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규정지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밴드'를 보았던 1988년의 가을을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무한궤도가 진행했던 라디오를 통해 라디오의 즐거움을 알았고, 그의 앨범을 통해 레인보우와 디오를 소개받으면서 록의 즐거움을 알았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때의 넥스트는 매일 듣다시피 했고. 그리고 그와 넥스트의 앨범이라면 빼놓지 않고 일단 구매하고 보는 '필구' 밴드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대학 시절,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히 꺼렸던 나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락밴드 활동을 했던 것도 '넥스트'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이 될 정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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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미에서 그가 나에게 미친 영향은 참 컸다


하지만, 역시 관심이 잦아들면 흥미나 애정도 잦아드는 법일까. 그렇게 좋아하고 즐겁게 들었던 그의 음악을 언제부턴가 듣지 않기 시작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들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받아들였고. 그게 호의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렇게 여과없는 받아들임의 시간 속에서 그는 '과거에 좋아했던 뮤지션'이 되어갔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아, 예전에는 참 좋았는데, 신해철도 나이가 먹긴 먹었나봐. 옛날이 훨 좋았어'라는 식으로 나 자신에게 푸념을 던져대고 있었는지도.

그러던 중, '쾌변독설'이라는 책을 냈다는 소식에 구미가 당겨 읽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음악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던 뮤지션이었기에 아직 관심이 남아있었던걸까? 왠지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잡았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신해철이 직접 집필한 것이 아니라 7일간의 인터뷰라는 것에 대해 조금 거부감이 생겼지만, 역시 달변가는 달변가였다. 그리고 전문 인터뷰어라는 지승호씨의 말끔한 진행도 훌륭했고. 가끔씩은 '신해철을 휘두르다니. 전문 인터뷰어라는 직업이 대단하긴 하구나...'라고 혼자 킥킥대기도 해면서.

인터뷰는 크게는 뮤지션으로서의 그와,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시민 - 이 정도로 자신의 발언이 큰 힘을 발휘하는 사람을 '보통 시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으로서의 그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된다고 볼 수 있겠다.

먼저 음악적인 입장에서의 그를 바라보면서 참 여러 가지를 느꼈다. 과거 내가 그를 흠모했을 시절의 이야기들은 다시 한 번 나에게 그 시절의 추억을 되돌릴 수 있는 그런 각별한 경험으로 다가왔고, '왜 이렇게 변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에 대해서는 왜 그랬는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그의 달변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변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이 느껴졌던 것은. 특히 디지털과 아이돌의 습격을 받으면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음악계의 이야기는 참 동감 그 자체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신 하고 있는 후련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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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했던 '그대에게'가 '타깃 프로듀싱'한 곡이었다니. 그럼 나도 낚인 거였네? 크하하하하!!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의 이야기. 그만큼이나 발언 하나하나가 기삿거리가 되고, 연예인, 혹은 공인이라는 입장에서도 자기 할 말 다 하고, 문제가 있다 느끼면 고소해서 승소하고(언론중재 위원회 4전 4승이라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연예인으로서 기자와 싸워 이길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만 이기기까지 하다니. 정말 이 부분은 박수칠만 하다), 또 자기 자신의 삶을 자기 뜻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참 대단함을 느꼈다. 비록 그의 모든 생각에 동감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렇게 자신의 소신을 밝혀나갈 수 있다는 점만은 높이 사고 싶다. 그리고 닮고 싶은 면이기도 하고. 나 자신도 분명 소신있게 살아간다고 자부하지만 가끔씩은 굽힐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 그 경우들 중에서는 나 자신이 겁장이처럼 피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많은 책을 읽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함으로써 쌓아온 그의 지식, 그리고 그의 말솜씨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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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이야기들은 절대 독설도 아니고 쾌변도 아니다. 그저 자기 의견을 확실히 피력할 뿐. 아, 이 세상에서는 그런 걸 독설이라 부르던가?

이 책을 들고 나니면서 읽던 며칠 전 전철에서 본 한 무가지에 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더랬다. 마침 책을 다 읽어가던 터에 반가워서 꺼내 읽어본 결과, 재미있게도 이 책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더라. 발매 첫 날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면서. 과연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사서 봤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내 독서편력에서 참 오래 기억될만한 그런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는 기본적인 효용(?)을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음악을 위시한 다양한 소재에서 나와 동감하거나 혹은 반목하는 여러 의견을 나누며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면에서 말이다. 비록, 그 영향을 받는 것은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신해철씨와 지승호씨. 언젠가 한번쯤은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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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쾌변독설', 그리고 다른 손에는 그의 인터뷰가 담긴 무가지를 들고 읽는 기분도 참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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