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떠났어
지빌레 베르크 지음, 구연정 옮김 / 창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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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지빌레 베르크라는 작가.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작가인가봐. 동독에서 태어난 그녀는 독일에서 '순수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그리고 엄청 베스트셀러들을 만들어내는 그런 작가래. 오죽하면 '서점을 습격하게 만드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겠어. 그리고 한국에 소개된 그녀의 첫번째 책이 바로 이 '그래서 우리는 떠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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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습격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작가.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있을까? 순수문학이든 대중문학이든.

통 일 전 동독을 배경으로 한 '그래서 우리는 떠났어'에는 안나와 막스라는 열세살박이 두 아이가 등장해. 그리고 그 둘의 일기(인 듯해)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먼저 안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가난한(더하기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의) 집안의 여자아이야. 언제나 추운 집, 날이면 날마다 술과 담배에 쩔어있고, 길거리의 아무남자나 집에 데려오며, 길가에 그냥 쓰러져 자버리는 일도 잦은 그런 엄마를 가진 자칭 '세상에서 가장 쪽팔린 존재'야. 그리고 막스는 경찰이라는 좋은 직업(공산주의 국가에서 공무원이면 최고 아니겠어?)을 갖고 있지만 사회부적응자(아들과도 말 한 마디 못 하는데 경찰은 어떻게 하나 몰라)라고 할만한 그런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야. 역시 우울하지. 언제나 끝없이 불평불만을 터뜨리곤 했지. 그런 두 아이가 안나의 어머니가 길가에 쓰러져 버린 것을(또!!) 우연히 막스가 발견하게 되는 사건에 의해 만나게 되고,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정말 소울 메이트, 혹은 천생연분이 따로 없어) 모헙을 떠나게 되지. 꿈을 안고. 뭐, 솔직히 말해서 가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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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막스의 번갈아 쓰는 일기를 통해 이야기는 전개돼. 항상 '확인'하는 듯한 안나와 뭐든 불만스러운 막스의 일기 제목에서 성격이 드러난달까?

솔 직히 열세살이면 이제 중1(서양식 나이일 테니까)이나 되었을 텐데, 그들의 좌충우돌하는 로드 가출 무비를 보고 있으면 기가 막혀. 무슨 애들이 겁도 없이 한 명은 네덜란드를, 또 한 명의 이딸리아를 꿈꾸면서 이렇게 동유럽의 이나라 저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그렇게 겁없이 돌아다니니까, 전문 유괴범(엄청 덜 떨어졌지만)들에게 유괴되기도 하고, 경찰과 작당한 아동 집단 구걸단에게 끌려가기도 하는 게 아니겠어. 하지만 그런 조마조마한 상황 속에서도 안나와 막스는 특유의 장점들을 발휘하면서 결국은 벗어나게 되지. 처음 책을 읽을 때는 그렇게 불평불만이 가득했던 막스가 이렇게 상황 판단력과 순간적인 결단력이 뛰어날지 몰랐고, 극히 그 나이의 여자아이같은 허영과 투정이 보였던 안나가 모든 악조건에서 장점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아이인지 몰랐으니까. 가끔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작가가 아이들의 묘사에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 그리고 하나 불만을 더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소울 메이트같은 둘이라고 하지만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두 인격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그들의 일기는 비슷한 느낌이야. 가끔은 막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이거 안나의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으니까. 번역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작가의 뛰어난 장점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야. 어떻게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톡톡 튀게 잘 써내려갔는지. 덕분에 참 재미있게 읽었어.

아 마도 작가는 통일 전 동독이라는, 그리고 당시의 동유럽이라는 음울한 상황에 대한 끝없는 냉소 속에서 그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꿈과 위안을 주려고 했던 것만 같아. 동시에 자본주의가 절대 대안만은 아니라는 것도 슬며시 보여주고. 우리의 되바라진 열세살박이 두 아이들은 두려운 상황들 속에서도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지 못 하면서도 되돌아가지 않아. 철저히 자신들에게 놓여진 상황을 판단하고 앞으로 나서지. 조그만 장벽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고 '에이, 때려칠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는 나에게 꽤 시사하는 바가 컸어. 만약 당신이 '아침식탁에 낯선 개미핥기가 앉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 잔잔하지만 와닿는 무언가가 있을거야. 물론 재미도 있고.
아... 안나랑 막스는 네덜란드에 갔을까? 갔다면 엽서나 한 장 보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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