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에 사는 사람들 - 무한카논 1부 무한카논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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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間)'. 어쩌면 이 말 만큼이나 서글픈 말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래서 소속감도 동질감도 없는 '사이'의 존재.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에 의해 태양계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입증받기 전까지는 '별'로서 인정받지도 못 하며, 그저 태양계를 겉도는 존재였던 혜성같은 '사이'의 존재. 그렇게 입증받은 지금에 와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태양계를 물었을 때 그의 존재를 떠올리지 못 하는 '사이'의 존재.



"너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니, 철새처럼 아빠의 나라와 엄마의 나라 '사이'를 날아다니게 될 거다. 엄마는 부처님에게 자비를 구하여 저세상으로 가려 한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엄마의 혼은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혼은 공기보다 가볍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엄머의 혼을 아빠의 나라에 데려가다오. 너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서 새로운 신에게 사랑받도록 하거라."


- 나비부인이 아들 JB(혹은 Sorrow)에게
<혜성에 사는 사람들> 237P
시마다 마사히코의 무한카논 시리즈 1부인 '혜성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시작된 4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 슬프고 아름답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재능과 유복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감성이 향하는 방향으로 뛰어듦으로써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 하는 가슴아픈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되고. 그렇기에 그들은 혜성에 사는 사람들이고 이 책은 무한카논(각 성부마다 악곡의 처음으로 돌아와서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 있는 카논), 즉 아픈 사랑의 돌림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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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들은 것은 이 작품이 처음(아, 일천한 나의 일본문학 독서량이여)이었기 때문일까. 그의 독특한 느낌은 꽤 남다르게 다가왔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고, 특별히 문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입 안을 맴도는 맛깔나는 구절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아주 건조하게 철저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서술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 이야기가 빛난다. 신파극으로 예를 들자면, 여기저기 눈물샘을 자극할 요소들을 준비하고 '자, 이제 여기쯤에서 울어보지?'라고 쿡쿡 옆구리를 찌르는 그런 신파가 아니라, 그 스토리 자체를 좀 더 충실히 준비하는 그런 신파랄까. 그리고 그렇기에 더 마음에 들었고. 그만큼이나 혜성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는 독특하고 자기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랑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4대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역사적인 사건들과의 만남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여파, 맥아더 장군 이야기(대한민국에서의 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라서 더 재미있었달까), 기업과 야쿠자와의 어쩔 수 없는 얽힘 등이 4대의 사랑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얽히면서 이야기에는 더 큰 현실감을, 사랑에는 더 큰 아픔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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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장에 담겨진 가계도. 끝없이 반복되는 그들의 일그러진 사랑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이 가계도다. 책을 읽고나면 이 가계도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기나긴 사랑이야기를 읽고 난 후임에도 다음 권을 향한 갈증이 일어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이 작품이 작가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들의 멈추지 않는 처절한 사랑이 강하게 느껴지는 만큼, 2부에서 이어질 가오루의 미국행에 대한 궁금함이 강하다. 철저히 감성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무한카논 시리즈. 그래, 사랑은 감성이니까.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감성이니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이 부분일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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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북스토리 관계자님. 한 번에 3권 다 번역하고 내셨으면 안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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