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울어요 - Autumn
토머스 하디 외 지음, 헤럴드 블룸 엮음, 정정호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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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가장 서양의 고전 문학을 많이 섭렵한(?) 시기는 소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학구열이 무척이나 강하셨던 어머님께서 '교양' 혹은 '정서'를 이유로 잔뜩 사다 주셨던 것도 있었지만 막상 그 책 한 권 한 권이 너무나 재미있었달까. 오히려 '어린이들을 위한' 이라는 식의 책들보다는 그런 고전들이 훨씬 재미있었던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고전들은 지금 읽어도 그 때와는 조금 다른 맛이지만 훌륭한 맛을 내고.
그래서인지 최근 서점에 가면 즐비하게 있는 동화책이 아닌 어린이책들을 보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저급의 컨텐츠'를 '아동문학'인 양 포장한 그런 책들을 볼 때.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저명한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약간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아동문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그의 괴팍함(?)을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상업적으로 아동문학이라고 포장되어 등장하는 것들은 대부분이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나이대의 독자들에게 부적절한 글들이다'라는 그의 강한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가 그다운 깐깐함으로 엄선한 서양의 고전문학들을 모은 것이 이 '해럴드 블룸 클래식' 시리즈다. 원제는 'Stories and Poems for Extremely Intelligent Children of All Ages'. 해석하기에 따라 '모든 세대의 지극히 총명한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과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고, '모든 나이대의 지극히 총명한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과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재미있다. '모든 세대의'라고 해석한다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어린이들에게 좋은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모든 나이대의'라고 해석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린이의 동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그런 책이라는 뜻일 테니까. 해럴드 블룸의 서문을 보면 후자의 해석에 더 가까운 뜻으로 이 시리즈를 편찬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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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공교롭게도 처음 잡은 책이 가을이었다. 계절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이 나도 모르게 적용된 것이었을까

총 8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의 정서로 모은 단편소설 41편과 83편의 시로 구성된 '헤럴드 블룸 클래식' 중 처음 잡은 것은 5권인 가을편.
중국의 작가 린위탕의 '생활의 발견'에 의하면 가을은 부드러움, 연약, 순수, 소박, 고상, 관대, 가냘픔, 단순, 청명, 여유, 한가로움, 청량함, 실질적인 것의 이미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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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짧은, 하지만 재미있는 그리고 '환상문학'적인 단편들이 모여있는데, '테스'의 토머스 하디, '죄와 벌'의 톨스토이, '주홍글씨'의 나사니엘 호돈 등 그야말로 '명작'을 써낸 거장들의 작품들이 담겨있다.재미있는 것은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서양문학이라고는 하기 애매한 작품도 담겨있다는 것.  각각의 느낌은 꽤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소설들의 직관성이다. 거장의 작품들이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또 단편이기에 더욱 쉽게 읽힌다.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도 그 매력은 그대로 살아있는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땅이 필요할까'와 20년 동안 주위 모든 지인들에게서 떠나 그들을 관찰하다가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나사니엘 호돈의 '웨이크필드'가 가장 재미있었고 또 인상깊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고 시편. 개인적으로 서양 시에 대해 굉장한 문외한이지만 한 편 한 편을 읽는 동안의 감정들은 꽤 각별했다. 비록 실력이 일천해서 서양시로서의 맛을 느끼지는 못 했지만 그 심상만은 확실히 느껴졌달까. 특히 표제작인 '이제 그만 울어요'의 자연의 순리와 슬픔에 대한 이야기는 꽤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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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부터 편저자 서문, 그리고 역자 해재까지 이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엮은이인 헤럴드 블룸의 의도에 대해 참 친절히도 다뤘다>

저자 소개, 편저자 서문, 역자 해재... 어쩌면 당연히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분명 거장들의 작품이지만 그들을 거장으로 만들어준 것은 대부분 장편이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이다. 그리고 고전을 해럴드 블룸이라는 명평론가의 이름으로 모으는 작업이 있었기에 그 의도에 대한 밝힘이 있었어야 할 것도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개인적으로 왠지 이 부분들 때문에 이 책 자체가 '어렵고 지루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역자 해재까지 더했으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서문과 해재가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성격상 이 두 글을 꼭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고. 그것이 조금 아쉽달까. 적어도 국내에서 썼을 역자 해재라도 조금 더 쉽게 써주었으면 어땠을까. 분명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었으니까. '지극히 총명한'이라는 단서가 붙긴 해도.

고전의 향기라는 고리타분한 이미지의 수식어를 쓰지 않더라도 이 시리즈 굉장히 매력적이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며, 저명한 평론가가 엄선한 작품들 답다. 읽기 쉬우며 재미있는, 그리고 짤막짤막해서 부담없는 단편들. 그리고 열심히 골라서 찾기도 힘든 거장들의 단편들을 모아둔 이 시리즈. 가을의 느낌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또 감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헤럴드 블룸의 서문과 역자 해재를 다 빼고 작품들부터 감상하길 권한다. 고전이라는 딱딱함이나 부담감이 전혀 없이 작품만을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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