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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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나는 전설이다'  영화판의 인기를 생각해보면 그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국내에서 평가절하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54년 작품이었던 '나는 전설이다'의 번역판이 2005년이 되어서야 나왔다는 점도 그렇고, 사실상 이번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국내에서의 입지도 그랬다. 솔직히 말해 이번 영화의 인기 역시 '리처드 매드슨'의 이름보다는 '윌 스미스'의 이름값이 더 무거웠던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국내에서는.
하지만 둘 모두를 감상했던 나로서는 분명 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괜찮았지만 어딘가 허전했던 영화에 비해 본격적인 흡혈귀의(혹은 좀비의)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원작이 훨씬 나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그리고 그랬기에 이번에는 이 책을 읽었다. 그의 1956년작, '줄어드는 남자'를.

당시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참 '원자력' 혹은 '방사능'이 대단한 만병통치약이었다. 거북이는 닌자 거북이가 되고, 쥐는 쿵후 배운 인간형 쥐가 되기도 하고. 혹은 푸르딩딩한 근육덩어리가 되기도 하며, 거대화되어 하수구의 난폭자가 되기도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참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돌연변이' 혹은 '뮤턴트(Mutant)'라는 이름으로 생겨왔던 것이 사실.
이 책 '줄어드는 남자'에서는 어쩌면 참 초라하고 처량하게도 그런 방사능에 의해 조금씩 몸의 전체적인 크기가 줄어드는 기이한 병에 걸리는 남자가 등장한다.
도대체 '줄어드는 남자' 하나로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놓을까라는 노파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리처드 매드슨에게는 그런 노파심은 필요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줄어들면서 조금씩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저자는 참 다양한 상황을 설정한다.

처음은 가장으로서 가져야 할 위치로서의 갈등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가장으로서의 권위. 철저히 마초이즘적인 인간으로 그려지는 주인공. 훤칠한 키와 듬직한 덩치, 그리고 경제력을 가졌던 그. 그리고 그런 것들이 '줄어든다'는 황당한 이유로 전부 상실되어가는 상황에서의 갈등이 얼마나 클까. 가장이 가장이 아니게 되고,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게 되며, 남편이 남편이 아니게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정신적인 공황 상태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남자로서의 갈등. 사랑하는 부인을 사랑할 수 없는 듯한 남자로서의 박탈감과 좌절감 역시 굉장한 아픔이 아닐까. 점점 작아지는 만큼 부인에게의 자신감도 점점 사라져가고. 끝까지 그를 사랑해주는 부인임에도 불구하고 작아져가는 자신감의 크기만큼 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주인공의 아픔, 그리고 그런 가운데 벌어지는 여러 촌극들은 결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그런 오싹함이었다.

이렇게 '줄어든다'는 설정을 통한 인간의 사회성 박탈이 가져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그런 것이었다. 이것으로부터 작가는 사회성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사회성을 잃었을 때의 공포, 공황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SF적인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결국 아주 현실적인 배경과 현실적인 아픔을 그려낸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생활 속에 녹아든 공포가 아닐까. 특히 남자로서 굉장한 몰입감을 느꼈다는 느낌이다.
특히 작가의 절묘한 묘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단위의 혼란'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 괴로워하고, 또 가끔씩은 자신의 현 상황을 직시하지만, 결국 끝까지 주인공은 자신은 더 이상 정상인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저 단위의 혼란이었다. 점점 작아지는 그에게 있어 주위 사물과 환경의 거리, 그리고 크기 등이 분명 점점 멀어지고 더 커지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몇 미터는 될 듯한'이라는 식의 정상인적인 단위로서 표현한다. 그런 묘사를 통해 그는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버리지 않으며 절대 자신의 현실에,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고.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갈등은 바로 지하실과 거미와의 갈등이다. 너무 작아져서 지하실에 떨어진 주인공. 그리고 그 곳에서 그를 위협하는 최고의 적은 다름아닌 거미. 평소에는 그저 귀찮은 존재였던 거미가 죽음으로 이끄는 무서운 존재가 된 것에 대한 괴리감, 그리고 주위 사물과 거미를 소재로 한 주인공의 힘겹고 괴로운 모험은 그 어느 모험보다도 스펙타클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모험기이되 모험같지 않은 한 작은 집의 초라한 지하실에서의 모험은 그렇기에 더 처절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저자가 지하실에서의 모험과 지하실에 떨어지기 전까지의 갈등을 교차편집했던 구성의 의도는 바로 이 두 가지를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소박함은 상상 이상이다. 극히 하찮은(?) 소재와 보잘 것 없는 배경, 그런 가운데 이 정도로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성'이라는 소재에 대한 깊은 접근, 그러면서도 SF 적인 상상력과 박진감을 그려낸 소설은 참 드물다. 그만큼이나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작가가 가진 표현력과 상상력의 깊이는 대단한 것이란 이야기겠지.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전설이다'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이 '줄어드는 남자'가 뽑힌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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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만들어진 '줄어드는 남자' 영화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평점도 좋고 리뷰의 평가도 후한 편. 무엇보다 '리처드 매드슨'이 직접 각본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원작의 그 모습을 어떻게 재현했을지의 궁금증 때문이라도 한 번 꼭 보고 싶다는 느낌?  내년(2008년)에 리메이크작이 또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그걸 기다리며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도. (사진출처 : IMDb)

영화 관련 리뷰 번역 링크(밀리언셀러클럽)
1957년판 줄어드는 남자 영화 정보(IMDb)
2008년판 줄어드는 남자 영화 정보(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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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줄어드는 남자' 이외에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리처드 매드슨의 여러 단편들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리처드 매드슨의 이름을 빛냈던 '환상특급'. 그 영화판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미래판 고려장격인 '시험', 사망자를 예측(혹은 일부러?)할 수 있는 '홀리데이 맨', 아담 샌들러의 '클릭'이 마구 떠올랐던 몽타주, 마을을 파멸시키는 한 원초적 악인의 '배달', 병원과 이발소 그리고 주술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코드가 섬뜩함을 주는 '예약 손님', 버튼 하나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버튼, 버튼',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뷔작으로 유명한 '결투', 그리고 혐오 곤충(?)인 파리에 얽힌 박진감있는 단편 '파리지옥'까지. 한 작품 한 작품 참 매력적인 단편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나는 전설이다'에 있던 단편들보다 더 매력적이고 탄탄한 작품들이 많은 느낌이랄까.
특히 개인적으로는 쫒기는 공포를 확실히 그려주고 있는 '결투'와 '몽타주'가 가장 재미있었고, '시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독자로서는 참 즐거운 일이지만, 이 단편들만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내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만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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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리처드 매드슨은 참 영상적인 작가인 듯 하다. 최근에서야 보고 그 추격신에 탄복했던 영화 '결투', 그리고 환상특급 극장판의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나는 전설이다' 를 통해서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SF 작가로서의 탁월한 상상력, 그리고 인간 내면에 대한 뛰어난 묘사력을 느꼈다면, 이번 '줄어드는 남자'를 통해서는 그의 작가로서의 묘사력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느꼈다. 그만큼이나 참 잘 쓰여진 최고의 환상소설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그렇게 환상소설로서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심리 묘사와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잘 하고 있는지. 스티븐 킹이 극찬을 할 만 하다. 그리고 보잘것 없지만 나 역시.
내년에 꼭 영화를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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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고의 스토리 텔러 스티븐 킹. 결코 그의 극찬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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