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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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다인동거'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나였지만, '퍼레이드'에서 보여준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언 제부턴가 많은 수의 남녀가 함께 공존하는 그런 동거 아닌 동거에 대해 참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도 그렇고, 특히 내가 참 좋아했던 '프렌즈'에서의 친구였다가 애인이었다가를 반복하는 그런 아찔한 감정의 저울질도 그렇고. '하릴없는 다섯 남녀의 뒤집어지는 동거이야기 하지만 '라는 이 책 '퍼레이드'를 읽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런 나의 '동거'에 대한 왠지 모를 호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결과는 조금 달랐지만.

다 섯 남녀의 동거 이야기, 그리고 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 각 장의 화자는 각각 한 명의 동거인이다. 이 다섯 장의 옴니버스 구성은, 시간이 흘러가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기에 더 흥미롭다. 전체적인 줄거리가 진행되되, 화자만 변형되는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래서 한 주인공이 다른 동거인의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그리고 동일한 사건을 각각의 사람들이 판단하는 상황과 시기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어떻게 다른 느낌을 주는지 등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구성을 잘 이끌어나가는 요시다 슈이치의 구성력도 꽤 돋보이고.

그런 가운데 이 다섯 명의 기묘한 동거는 책의 내용에서도 언급되듯, “선의로 넘치는”, “다정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트”와 같다. 서로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기대는 어떤 가족, 친구, 연인의 동거가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채, 그렇게 마음의 보이지 않는 벽을 한 겹 쌓은 채 이루어지는 동거다. 어쩌면 인터넷 상의 너무나 친절하고 진지하지만 탈퇴해버리면 그만인 그런 커뮤니티적인 인연에 대한 은유랄까. 그리고 이 다섯 명은 그런 삶을 오히려 즐기고 있으며 이 동거 자체도 '탈퇴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 중 한 명이자 그들의 거점을 마련한 장본인 나오키는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배려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들을 받아들였던 것은 철저히 내가 그게 낫다고 판단해서' 라는 식으로 말한다. 뭔가 기묘하게 커뮤니티 운영자스럽달까.

작 가 요시다 슈이치는 그런 다섯 명의 삶, 그리고 그들이 서로 가지고있는 정신적인 공유와 그만큼의 거리감을 교묘하게 잘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다정하고 진지하지만 그 뿐인' 느낌을 책 전반에 잘 이미지화했다는 생각이다. 비록 '코미디의 탈을 쓴'이라든지, '책을 읽는 내내 침대보를 부여잡고 웃었다'라는 등의 추천사와는 달리 그런 이질적인 느낌에 썩 웃음이 나오거나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욱 그 느낌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개인적인 감상일지 모르겠지만, 책 뒷 페이지의 그런 독자서평이나 앞표지의 '정신없이 웃게 만든 다음'같은 추천사는 무시하고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기에 이 책은 더 빛을 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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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벽을 두고 살아가는,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당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의 동거생활 속에서 우리는 우리네 인생을 본다. 우리의 가면 퍼레이드를 본다

그 리고 그런 분위기로 표현되던 그들 전부의 감정적인 벽은 마지막 장에서 본질적으로 드러난다.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사람들은 과연 몇명정도일까. 나 자신의 본 모습을 모두 드러내기에 너무 위험한 세상에서, 모두 다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만남에서 가면을 쓴다.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 자신을 연기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때도 마찬가지다. 허울이든 장점이든 우리가 그 사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경우는 얼마나 있을까. 모두 자신만의 시선, 자신만의 안경으로 이미 한 번 판단된 그런 모습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런 인간세상의 본질적인 퍼레이드를 다섯 명의 동거남녀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살아간다. 각자 자신의 가면을 쓰고 누군가를 연기하며. 누군가에게 자신을 더 잘 포지셔닝하고 더 멋지고 훌륭하게 보이고 싶어하며. 그리고 가끔씩은 나를 불쌍해보이거나 부족해보이길 바라면서. 그것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이기 때문일까? 그런 나 자신이 조금은 애처롭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잘 수행한 후의 그런 느낌이랄까. 언젠가는 또 다른 가면을 써야만 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왠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 것만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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