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라 기담문학 고딕총서 8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사용자 삽입 이미지여자의 일생, 목걸이. 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파상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고전 명작'의 작가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 받고 깜짝 놀랐다. 모파상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썼을 거라 생각했던 고전 명작의 스타 작가(?)가 당시에는 이런 '기담'이나 '환상문학'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생소했다. 어떻게 보면 '수능식 교육의 폐해'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얕은 독서량 때문이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리 뒤져봐도 내 머릿속의 모파상은 '목걸이'와 '여자의 일생'의 그 이미지 뿐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몇 백년 전이라고 해서 뭐가 달랐겠는가. 긴긴 한여름밤 모여앉으면 귀신 얘기도 했을 것이고, 작가들이라면 좀 기묘하거나, 환상 속에서나 볼 만한 그런 이야기들도 써보고 싶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나는 '모파상'이라는 작가를 조금은 잘 못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장편 문학보다는 단편 문학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그는 이십대 후반부터 극심한 편두통을 시작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 결국 마흔세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것도 정신병원에서. 그런 어쩌면 불행한 인생을 보냈기 때문일까. 이 책 '오를라'에서 나는 꽤 다른 그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박하고 뛰어난 문체는 분명 내가 읽어왔던 몇 편 안 되는 그의 작품의 이미지였지만, 전체적으로 우울함과 허무함이 담겨져 있달까. 총 9편(오를라가 1판과 2판으로 담겨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8편)의 기묘한 이여기들은 그래서인지 '유령'이나 '귀신' 혹은 '시체' 등의 외부적인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생겨나는 그런 공포와 우울함이다(외부적인 공포의 소재가 등장하는 경우에도 기저에 깔린 것은 역시 심리적인 측면에서 생기는 부분이 더 크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기담'이라기보단 '심리극'이라는 느낌에 가까우며 억지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그의 병력에 근거하는 것만 같아서 더 서글프기도 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 단편의 시작 부분을 장식하는 기묘한 느낌의 그림들. 왠지 모를 그로테스트함을 주는 이 그림들이 작품마다의 공통적인 우울함을 대변하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그의 단편들은 풍부한 배경지식과 뛰어난 묘사력, 그리고 간결한 문체로 '역시 모파상'이라는 찬사를 나오게 함과 동시에 최근 각광받는 '장르소설'로서의 재미를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다.
특히 표제작이자, 서술 형태와 일기 형태의 두 가지 형태로 담겨져있는 오를라는 굉장히 인상깊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감을 참 잘도 서술해낸 작품으로, 지금에 와서야 흔한 소재일지 모르겠지만, 한 인간이 그 공포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의 심리적 묘사가 굉장히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왜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모파상 공포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뽑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외의 소설들도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하는 '에라클리위스 글로스 박사'는 조금 아쉽달까. 다른 작품들과 굉장히 다른 형식의(그래서 모파상의 실험적인 작품이라 추측하는), 독특한 소재의, 굉장히 유머러스한 그런 작품이었지만, 역시 나는 기존의 간결한 그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기담문학 고딕총서'다(벌써 8권이다). 18세기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서양의 고딕문학. 어쩌면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인정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장르문학'의 18세기적 발현이 바로 이 고딕문학일 터. 지금에 와서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으로 분리되며 조금은 '문학' 취급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그런 장르문학. 당시로서는 얼마나 멸시되었을까. 그런 가운데 그런 작품을 써왔던 찰스 디킨스, 에드거 앨런 포, 기 드 모파상, 엘리자베스 개츠킬, 니콜라이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뛰어난 작가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는 '기담문학 고딕총서'에게도.

그런데... 이런 모파상같은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쓰면 그 작품은 고전인가 장르문학인가. 어쩌면 참 우스꽝스러운 질문 아닌가? 그런 아이러니하지만 새로운 느낌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오를라'다. 다음은 애드거 앨런 포의 고딕문학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독특한 그림들은 이런 목차 등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편집자의 세심함이 느껴진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