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셸 부인, 그녀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녀는 가시로 뒤덮여 있어 진짜 철옹성 같지만, 그러나 속은 그녀 역시 고슴도치들처럼 꾸밈없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다고 난 직감했다.
겉보기엔 무감각한 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참 괴팍한(?) 소설이다. 적당한 수준의 철학과, 적당한 수준의 미학, 적당한 수준의 사색과 적당한 수준의 고전과 문화,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이 혼재된 흔치 않은 소설. 그렇기에 어쩌면 이 부분들에 대한 적당한 수준의 참을성(?)을 갖지 않으면 '뭐야, 이건'이라고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최근 소설들의 경향처럼 '시적 서사'(바리데기에 대해 황석영 작가가 밝혔던 것처럼) 혹은 '영화적 연출' 등의 빠른 전개나 긴장감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이 책의 주인공인 쉰 넷 먹은 수위아줌마 르네와 열 둘 먹은 천재소녀 팔로마의 끝없는 사유가 번갈아서 맴돈다. 그리고 독자는 이런 사유 속에서 작가가 펼쳐내는 이야기를 즐기게 된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면서.
작가인 뮈리엘 바르베리가 펼쳐내는 이런 사유들은 굉장히 빛난다. 어쩌면 그저 하나의 '지식'으로 끝날 수 있는(실제로 우리가 배워온 철학이나 문화 중 특히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그저 '지식'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특히 많다) 그런 문화들이 그렇게 빛이 날 수 있는지. 그저 그것들을 지식으로서만 간직하고 그저 머릿속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나로서는 작가의 그런 능력이 상당히 인상깊을 수밖에 없었다. 문화 자체가 책 속에서 생명력을 부여받은 느낌이랄까? 그런 빛나는 문화, 철학. 작가가 생각하는 그런 문화를 함께 공감하거나, 혹은 나의 생각을 덧붙여가며 꽤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은, 매우 다른 환경에서, 매우 다른 삶을 살아왔고, 나이의 차 역시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정도로 그 차이가 크지만 매우 닮아있다. 둘 모두 끝없는 지적 갈증을 갖고 있으며, 그런 갈증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만큼이나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인, 철학적인 지식들을 통한 현명함도 갖추고 있고. 또한 다니구치 지로나 오주 야스지로, 바둑과 히카루의 바둑(고스트 바둑왕), 분재나 미닫이문, 하이쿠와 단카, 자루소바와 스시까지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자신들의 문화적 소양, 지적인 오만에 얼마쯤은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무언가, 어딘가에 기대어 함께 나아가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려 하는 일종의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어쩌면 르네는 그렇게 자신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한 채 부자 혐오증에 빠져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쩌면 팔로마는 그렇게 이제 열두살밖에 되지 않은(그러기에는 너무나 똑똑하지만) 아이가 1년 후의 자살을 꿈꾸는지. 그야말로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다. 가시를 한껏 세우고 있는.

그리고 한 사람, 일본인인 오주를 만나면서 그 두 사람의 그런 우아함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런 국면을 시작으로 이 책의 소설적 재미는 더욱 강해지고, 그런 또다른 재미, 그리고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아닌 또 다른 면을 보게 되면서 이 책은 더 큰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 우리들은 모두 병자다.
그리고 우아함을 간직한 고슴도치는 오히려 가시를 다 뽑혀 결코 우아하지 않은,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자신을 원한다. 저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진 제각각의 병은, 그렇지 않고서는 치유할 수 없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간만에 뒷표지의 찬사들이 꽤 어울리는 책을 만났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