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운을 만든다고도 합니다.

용어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학문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지지 않은 용어들이 많습니다. 수학, 과학, 철학, 인문학 등 대부분의 용어들이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원어를 일본어를 거쳐 우리 말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직접 번역이 된다고 의미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인공 지능‘이라는 용어에 대해, ’인공 이해력‘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 다른 용어도 있습니다. ’치매(癡呆,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가족으로서 고생하는 분들이 많고, 우리나라, 일본에도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이미 ’바보‘라고 불러버리면, 그 다음에 어떻게 이해하고 지내야 할지 알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일본에서는 ’인지증‘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나오는 책들 중에는 따뜻한 책들이 있었습니다. ’바보‘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나를 다르게 보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페코로스» 시리즈가 그랬습니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있었던 일과 느꼈던 것들을 만화로 그렸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여행을 이해하려고 했던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저자는 ’인공 이해력‘이라는 단어가 쓰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지만, ’엄마/마마, 아빠‘와 같이 그냥 이어져 내려온 단어가 아니라면, 정확하게 정의하는 데서 대상을 이해하는 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1. 아우구스티누스의 방식

첫 번째는 400년 경,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명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신을 세 가지 능력으로 분류한 방식입니다. 그의 위대한 저서인 «삼위일체론 De Trinitate»에 의하면, ‘기억력’(memoria, memory), ‘이해력‘(intelligentia, intelligence), ‘의지력’(voluntas, will) 이 세 가지가 인간 정신의 삼중 구조에 해당합니다(De Trinitate, 10.11.17).

‘기억력‘은 과거에 경험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의지력‘은 어떤 욕구로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행하려 할 때 발휘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해력‘은 기억력과 의지력을 제외한 인간 정신의 능력으로, 어떠한 사실이나 지식, 정보를 학습, 이해, 추론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을 의ㅣ합니다.

(...)

동아시아에서 흔히 ‘지능’으로 번역되며, ‘이해력’을 의미하는 라틴어 ‘intelligentia‘의 영어식 표현인 ’intelligence‘는 기억력과는 별개의 이성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intelligence(intelligenctia)는 어원적으로 ‘이해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inteligere‘에서 파생된 단어이기에, ’이해력‘으로 올기는 것이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서구에서는 기억력과 이해력을 엄격히 분리해 그 의미를 해석해 온 역사가 깊습니다. 따라서 AI는 오해의 여기자 있는 번역인 ’인공 지능‘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쓰일 가능성은 없겠지만) ’인공 이해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의미상으로는 더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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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듦새가 무척 예쁩니다.

진한 초록 글씨와 손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
노랑 방수 책표지.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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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있습니다.

* 왜 많이 팔렸을까요? 읽고 있는 책은 8쇄입니다. 각 쇄는 책마다 다를텐데, 최소로 잡아도 800부 이상은 팔렸다는 건데, 읽다보니 의아합니다. 독자들은 누구이고 왜 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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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15권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단편 구성에 소재나 줄거리도 새롭게 느껴졌는데, 15권까지 오니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가인 일본은 1965년 6•25전쟁에서 패전국의 경재적 부담을 해소할 만큼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후 1980년대, 1990년대 버블 경제가 꺼질 때까지 풍요롭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만화에는 가난을 경험했던 세대의 사람들이 풍요로움 앞에서 스러지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1920~1940년대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아릿한 마음도 듭니다.

오래 전 만화이겠지요. 아마도 1980년대 이전에 출시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 그 중 지금도 변함없는 모습과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작가가 풀어놓는 사회상에 대한 이해도 흥미롭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입니다.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좀 한 독자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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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 김흥숙 시산문집 ㅣ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성찰 1
김흥숙 지음 / 서울셀렉션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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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다시 읽었습니다.
(북플에는 반영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역시...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관철 욕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2020년에 읽었을 때 남긴 메모가, 지금도 눈길이 머문 구절이었습니다.

자기 관철 욕구가 큰 사람들에게서 자기 관철 욕구가 발현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일방적이라는 건 공통되지만, 강할 때도 있고 부드럽거나 연약할 때도 있습니다.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뭔가를 받거나 강요당하면, 한 번쯤 그 자리에서 관계가 멈춰섭니다. 선물도 그렇습니다. 상대가 좋아할 것을 주는 경우,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경우, 내가 주고 싶은 걸 주는 경우 등 다양할 겁니다. 상대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강행해 전달하는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예의상 사양하는 거라면 그래도 무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취향이 다르다고 했음에도 강행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한 것이니, 나도 그렇게 받아서 처리하고 싶은대로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이미 상대는 비가역적인 상태였을테니까요.

하라는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자기 관철 욕구가 강하다고 해야겠지요. 끝난 일을 붙들고 자꾸 뭔가를 해내려고 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무릇 유효한 기간에 노력하는 것이 맞겠지요. 일도 유효기간이 있으니까요. 단,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자신이 더 나아지는 건 끝이 없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번에 깨달은 건, 자기 관철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건 동일했지만, 상대가 자기 관철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쉿,‘. 조용히 생각해 볼 일 입니다. 고요한 시간 안에 머물러 볼 일 입니다.

* 제목이 ’쉿,‘입니다. 조용히(쉿) 쉬었다가(,) 가라는 뜻인가 봅니다.

* 작고 예쁜 보라색 책입니다. 그리고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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