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조와 혁신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전파하지 않는다. 대만은 처음에 인텔(Intel)이 관심도 없었던 공산품에 쓰는 반도체 칩을 생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만은 그러한 입지를 토대로 미국 기업들이 아직 재현하지도 못하고 있고 미국 정책 결정자들이 중국 손에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첨단 칩을 개발하게 되었다. 미국은 반도체 혁신에서 우월적 지위를 상실했다. 지식은 상품 제조를 통해서 축적되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도 자세히 살펴보겠다. 경제적 미개척지는 새로운 발견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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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다보는 풍요로운 미래는 무분별하지 않다. 닥치는 대로 뭐든지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풍요가 미국의 사고와 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설명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M. 포터 (David M. Porter)의 1954년 명저 «풍요로운 사람들 (People of Plenty)»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풍요를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고정 자산, 인간이 소비해 없앨 때까지 창고의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물건들로 인식하면 안 된다. 풍요는 이 땅의 일부인 인간과 자연의 상호 작용과 관련된 물리적 • 문화적 요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종류의 풍요는 그동안 우리 세대가 누린 종류의 풍요와 다르다. 포터는 미국이 "생산자의 문화를 소비자의 문화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재설정한" 방식을 설명하면서 뒤이은 수십 년 동안 이러한 격변이 심화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정책은 역사학자 리자베스 코언(Lizabeth Cohen)이 일컬은 "소비자 공화국(A Consumers‘ Republic)"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재앙을 불러올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우리에겐 집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물건은 넘쳐나지만 바람직한 삶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바로잡자는 게 우리가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는 소비보다 생산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게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풍요를 상태로 규정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게 충분한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들에 집중하겠다. 바로 주거, 운송, 에너지, 건강이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미래를 구축하고 창출해야 하는 제도와 사람들에 집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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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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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타이베이에 있는 중정기념관에서 여러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큰 전시는 두 개였습니다. 장개석 정부에 관한 것과 전 세계의 민주주의에 관한 움직임(물결) International Wave of Democracy 이었습니다.

전시의 시작은 대한민국 제주 4•3에서 시작해 천안문, 홍콩 뿐 아니라 전쟁이 나기 전 우크라이나의 움직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전시를 장개석 정부와 나란히 하고 있다는데 놀랐고, 이런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다는데 놀랐습니다. 한편 대만은 왜 민주, 민권, 자유 등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수 안치환씨의 곡이 나오고 있었고, 1980년 5•18의 광주에 대해서는 한강 작가의 글귀가 실려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돌아오지 못한 모든 영혼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영혼을 평생토록 그리워했을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슬픔도 기억합니다.

˝Where sunlight falls, so many flowers bloom. Why walk toward darkness? Go to the land of blossoms —walk toward where they flourish.˝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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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생동안 자신이 해야할 몫에 대해서 알게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질문이 바보 같지만, 아마도 답은 제각각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뜻을 세우고 (아마도 알아차리고)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살다보니 알게되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 모르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100세를 살면 오래 산다는 말을 듣는 인생에서, 짧은 생에서 할 수 있는 몫과 오랜 생에서 할 수 있는 몫은 다를겁니다.

최근 다녀온 대만 국립 미술관에는 화가 두 명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짧은 생애를 살다가 갔고, 한 명은 장수를 했습니다. 마침 상대적으로 긴 삶을 살았던 화가의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짧은 중국어로 들었을 때, 긴 삶을 산 화가의 화풍이 변했던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짧은 생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아하’하고 이해가 됐습니다.

어릴 때는 재능이 있는 천재들을 동경하며, 나는 그리 오래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천재가 아니어도 오래 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낸 적도 오래입니다. 그냥 후일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시간을 허투로, 막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몫은 제대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앞으로 올 미래를 위해서 그러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천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몫은 아주 아름다운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정점에선 작품들을 보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동경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쓸 겁니다.

그러나, 이미 천재로서의 생보다 오래 살아남은 이들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예술가는 여러 삶의 굴곡을 겪게 마련이고, 여러 경험들을 작품에 녹여넣게 됩니다. 피카소는 원래 큐비즘 화가인줄 알았다가, 스페인에 갔을 때 알게 된 건, 굉장한 신동이자 천재였고, 그럼에도 젊은 시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시기를 청색시대라고 부르고 이겨낸 점, 그리고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그림의 차별성을 살리기 위해 큐비즘을 만들었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오래 산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의 몫이 있을 겁니다. 희미한것 같지만 언제 인생의 의미, 삶에서 해내야 할 몫에 대해 알게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꾸준하게 하고 있는 그 일이 어쩜 나의 숙제이자 운명이자 해내고, 갚아야 할 몫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가수 김광진씨의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미국에 유학가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도 음악을 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긴 세월 동안 음악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좋은 곡도 많고, 가사를 외우는 곡들도 있었지만, 솔직하게 강렬하게 찾아서 들었던 가수는 아니긴 했습니다. 그런데, 환갑이 지나서도 좋은 가사와 맑은 음색을 전하는 것이 가수 김광진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앞으로도 좋은 곡들을 만들고 즐겁게 음악을 해나가기를 빕니다.

* 젊을 때도, 나이들어서도, 어쩜 함부로 의견을 내곤 했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몫을 알아차리는 게 언제일까라는 생각이 없이, 너무 성급하게 어떤 사람과 작품을 평가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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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잇달아 ‘전생’을 이야기 하거나 떠올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당신의 전생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예전에 갔던 외국이 낯설지 않았던 경험, 그리고 지금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혀 놀랍지 않은 점들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부모와 자식은 전생에 갚아야 하거나 받아야 할 관계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려봤지만, 딱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마도 주는 쪽이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최근에 만난 어떤 분은, 태어나서 갚아야 할 일들을 모두 치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사는 게 편해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럴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주셨습니다.

살다보면,전생이 있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모르는 무지의 상태이기도 합니다만,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더욱 명확해 집니다. 회사일의 경우도 초년병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연차가 쌓이면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하긴 합니다.

아무리해도,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경제•문화•시대•가정 환경에서 태어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더 나누며 사는 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태어난 이후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개인의 선택으로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쩜 맞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운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겸손해야하고 주변을 살피고 나누는 것이 마땅한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내가 어떤 노력을 하기 전에 더 나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셈이니까요. 동시대의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아마도 역사 속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면, 그래도 물질적으로는 이 시대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생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생의 개념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여럿이긴 합니다.

전생에 고생을 많이 하셨던 분들은 이번 생에서 좀 더 편안하게 지내시길, 전생에 갚아야 할 은혜가 있다면 갚으시길, 전생에 누군가에게 많이 베풀었다면 이번 생에는 자신을 위해 좀 더 많이 쓰시기를 바랍니다.

* 작년에 본 일본 드라마 <브러쉬업 라이프>가 생각납니다. 어쩜 전생을 떠올리게 된 출발점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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