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동안 자신이 해야할 몫에 대해서 알게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질문이 바보 같지만, 아마도 답은 제각각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뜻을 세우고 (아마도 알아차리고)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살다보니 알게되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 모르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100세를 살면 오래 산다는 말을 듣는 인생에서, 짧은 생에서 할 수 있는 몫과 오랜 생에서 할 수 있는 몫은 다를겁니다.

최근 다녀온 대만 국립 미술관에는 화가 두 명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짧은 생애를 살다가 갔고, 한 명은 장수를 했습니다. 마침 상대적으로 긴 삶을 살았던 화가의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짧은 중국어로 들었을 때, 긴 삶을 산 화가의 화풍이 변했던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짧은 생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아하’하고 이해가 됐습니다.

어릴 때는 재능이 있는 천재들을 동경하며, 나는 그리 오래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천재가 아니어도 오래 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낸 적도 오래입니다. 그냥 후일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시간을 허투로, 막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몫은 제대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앞으로 올 미래를 위해서 그러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천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몫은 아주 아름다운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정점에선 작품들을 보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동경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쓸 겁니다.

그러나, 이미 천재로서의 생보다 오래 살아남은 이들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예술가는 여러 삶의 굴곡을 겪게 마련이고, 여러 경험들을 작품에 녹여넣게 됩니다. 피카소는 원래 큐비즘 화가인줄 알았다가, 스페인에 갔을 때 알게 된 건, 굉장한 신동이자 천재였고, 그럼에도 젊은 시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시기를 청색시대라고 부르고 이겨낸 점, 그리고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그림의 차별성을 살리기 위해 큐비즘을 만들었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오래 산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의 몫이 있을 겁니다. 희미한것 같지만 언제 인생의 의미, 삶에서 해내야 할 몫에 대해 알게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꾸준하게 하고 있는 그 일이 어쩜 나의 숙제이자 운명이자 해내고, 갚아야 할 몫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가수 김광진씨의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미국에 유학가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도 음악을 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긴 세월 동안 음악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좋은 곡도 많고, 가사를 외우는 곡들도 있었지만, 솔직하게 강렬하게 찾아서 들었던 가수는 아니긴 했습니다. 그런데, 환갑이 지나서도 좋은 가사와 맑은 음색을 전하는 것이 가수 김광진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앞으로도 좋은 곡들을 만들고 즐겁게 음악을 해나가기를 빕니다.

* 젊을 때도, 나이들어서도, 어쩜 함부로 의견을 내곤 했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몫을 알아차리는 게 언제일까라는 생각이 없이, 너무 성급하게 어떤 사람과 작품을 평가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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