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얼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메모입니다.


최규석 만화가의 «지옥»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해 영화로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김이경 작가의 추천(«마녀의 독서처방»)으로 알게된 최규석 만화가의 만화를 좋아해 대부분 읽었지만 «지옥»은 낯설었고,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신작을 찾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 속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좋다고 추천받아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만, 영화가 매우 불편합니다. 지나치게 폭력적입니다.

영화를 보는건 내가 가보지 못한 혹은 가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역사의 고증이란 혹은 시대상이란 그때를 잊지 않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겠지요. 1970년대에 20대 초반 혹은 10대 말에 집나온 예쁘지 않은 외모와 지적인 능력도 약한 어떤 여성의 죽음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되는 방식도 그렇고, 당시의 사람들 간에 보이는 상하관계 뿐 아니라 40년 후 가족들이 보이는 태도, 언론의 자극과 재미를 탐하는 태도 등 모든게 너무 폭력적이어서 영화를 계속 보는게 쉽지 않습니다.

영화를 볼 시간이 2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유사한 영역, 유사한 패턴,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를 찾아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영화들을 덜 찾아보고 잘 챙겨보지 않은지 오래입니다. 마치 어떤 정해진 레시피 같이 도입 부분에 왁자지껄 웃거나 행복한 일화가 나오고, 어떤 트리거로 갈등이 나오고 욕설과 폭력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비장하게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식으로 욕설과 나르시시스트적인 애정과 의리와 배신 등으로 구성된 영화는 아주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간혹 색다른 영화라고 하더라도 크게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화 <얼굴>이 끝나고 얼마나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를 본적은 없습니다. <얼굴>은 불편한 영화입니다. 블록버스터급의 예산에 비하면 저예산 영화라는 점과 표현 방식이 더 날 것에 가깝다고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만, 일단 보기 시작했는데도 중간에 끄고 싶어집니다.

왜 안동환은 어머니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었을까요? 어떻게 이진숙은 아들과 며느리 옆에서 그런 일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정영희씨는 이진숙씨를 위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이 세밀하지 않고 거친 영화들이 불편합니다. 욕구와 욕망과 탐욕은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갖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추구하느냐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정영희씨는 집을 떠나기 전에 본 어떤 장면을 입 밖으로 내었다는 이유로 겪었던 어려움과 피복공장에서 한 행동은 분명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한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1970년대에 피복 공장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영화가 끝났을 때, 폭력적이라는 전반적인 느낌이 어떻게 다르게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역시 연상호 감독의 영화를 보는 건 무리입니다.

* 영화 도입부를 다시 확인해봐야겠습니다만 임영규는 몇 세까지 볼 수 있었을까요? 글씨를 새긴다는 건 글씨의 형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도장은 점자로 파는 건 아닐테니까요.

* 시각장애인은 시각 대신 청각, 후각 등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빌딩에 설치하도록 되어있는 화재경보기에는 일반인은 듣지 못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폭력적인 성향을 띤 여럿이 다가오고 있는데 발소리와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 영화를 끝까지 봤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이 말로 표현됩니다. 여전히 얼굴은 여성에게 기대하는 덕목인가 봅니다. 뭔가 비장하게 구성이 되어 있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인생에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 편견을 강화시킬 여지가 더 커 보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사진 한 장이, 이 영화를 이끌고 갈 만한 외모라는데 공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존했던 엘리펀트맨의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영화의 취향 문제일 수 있겠지요. 사랑 앞에서 두 가지의 다른 선택이 나옵니다. 임영규와 정영희의 선택. 평소에 잘 다루지 않는 소재나 배경이더라도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폭력적이기만 하고 섬세하지 않은 영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가 굳이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못보던 세상을, 잊고 지내던 세상을 만나게 해주면 좋겠다는 바램은 변함이 없습니다.

* 그럼에도, 박정민 배우의 연기는 볼 만 합니다. <휴민트>에서도 봤지만, 앞으로도 좋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로 만나기를 기다립니다.

* 개인의 평은 감독이나 배우, 영화의 만듦새와는 무관합니다. 모든 영화가 명작이기를 바라지도 않고, 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와 욕망이 투입되는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좀 더 만나기를 원하고, 만듦새가 좋고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어떤 관객에겐 밋밋한 영화가 어떤 관객에겐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일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 감독, 배우, 스탭들의 영화 사랑과 관객들의 시선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들인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영화, 감독, 배우, 촬영, 음악감독에게 넘을 수 없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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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
사람은 문제가 ‘자기 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이야기를 듣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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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왠지 일본의 다양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넉넉하다고 하긴 어려운 용돈을 잘 활용해 좋아하는 걸 연구하면서 용돈쓰는 생활을 즐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왠지 서울이나 도쿄에서 지내는 생활은 안정적이라기보다 가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화에 도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도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용돈을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략 환산하면 20만원 안팎입니다. 많은 돈이 있다면 좋겠지만, 쪼들리기보다 예산 내에서 궁리하면서 좋아하는 걸 키워가고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일본에서는 코로나 시기에 나왔는데, 어서 요즘의 이야기가 출간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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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문정혁 배우가 출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인성 배우나 류승범 배우와는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가끔은 가수들도 음색을 잘 살리는 곡을 만나지 못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릴 때가 있습니다. 가수에게 알맞은 곡은 가수와 만든 사람 뿐 아니라 두고두고 듣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아주 오래전 <데이지>의 소극장 콘서트에서 가수 김건모씨가 피아노를 치며 불렀던 윤상의 곡 ‘한여름 밤의 꿈’이나 소극장 콘서트에서 가수 김종서씨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불렀던 레드 제플린의 ‘Babe I‘m gonna leave you now‘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모든 생활은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예술을 좋아하지만 창작은 나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즐기면서 지내왔습니다. 감독이나 배우, 어쩌면 가족이나 친구들의 일부 모습 밖에 모르더라도, 어떤 순간이, 장면이, 감정이 나에게 들어오게 되면 나만의 기억이 됩니다.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는 노력은 나를 보호할 때나 필요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호의를 가장한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킬 때 말입니다. 어쩌면 문득 드는 생각들이 어떤 축적된 시간의 작용으로 떠오르는 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얘기하는 연애 뿐 아니라 모든 것에는 ’운대가 맞아야지‘하는 말이 해당될 겁니다. 주변에서 강요하는 혹은 강조하는 운대와 내 인생의 운대는 다르더라도 어떤 시점, 시기, 때는 무슨 일에나 있을 겁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편히 살아가기 보다 차근차근 의미를 찾고 쌓아가는 일상이 중요할 겁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액션을 고민하고 추구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만났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에게서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배우 문정혁이 나오는 우연이 이루어질까요? 류승완 감독이 조명하는 배우 문정혁의 모습과 액션이 어떨까요? 대중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연기에서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잘 꺼낼 수 있는 감독과 배우의 호흡은 어떨지, 상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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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책들을 만드신 임재철 영화평론가께서 3월 22일 별세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영화를 보기 힘들었던 시절, 다양한 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하시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극장에서 상영하시고 책도 많이 내셨습니다.

포르투갈 페드로 코스타 감독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 및 초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베르 브레송, 루이 브뉘엘, 오손 웰즈, 잉마르 베리만, 스즈키 세이준, 우디 알렌의 국내 미개봉작,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와 재즈 O.S.T,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코미디, 유명한 감독들을 많이 배출한 일본의 로망 포르노 제작시스템 등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영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 김봉두>에 나오는 차승원 배우의 연기에 대해 높게 평가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영어책 외에도 일본책과 프랑스어책들도 많이 읽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론서 뿐 아니라 만화, 특히 축구도 엄청 좋아하시는데, 영국에서 귀족 자제를 교육시키는 목적으로 축구를 시켰다는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지적으로 재미없는 걸 매우 지루해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무비판적으로 남의 의견을 따라가는 걸 지적하시면서도 새로운 콘텐츠에는 누구보다 먼저 관심을 가지고 보셨습니다.

필름포럼과 시네마테크를 운영하실 때,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해외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은 OTT로 쉽게 영화를 보는 세대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뉴욕의 영화잡지,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등과 영화학자들 등 좋은 글까지 다양하게 많이 소개해주셨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좋은 영화와 글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홍성남씨를 만나셨을까요? 그곳에서 영화 이야기를 실컷 나누고 있을까요? 영화의 매력에 빠져 영화를 알고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경험과 지식을 나누었던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약력:
중앙일보 기자
뉴욕대 영화학과 석사(확인 예정)
필름포럼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서울 시네마테크 대표
광주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한나래 출판사, 이모션 북스 대표

부고:
https://samga.co.kr/obituary/indv/2603220347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50625.html

씨네21 대담 기사 (2001):
임재철, 리처드 포튼, 페드로 코스타

“내가 바란 게 있다면 시네필들의 커뮤니티를 위해 좀더 확실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이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가 확실시되면 아르헨티나로나 이민 갈 생각이다.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웃음)”

https://cine21.com/news/view/?mag_id=6211


* 추가: (3/24)
* 새록새록 재미있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영화 <His Girl Friday>가 재밌었어요. 우아한 복장을 한 주인공들의 코미디 영화도 선생님의 추천으로 알게됐습니다. 마스터 키튼 감독의 영화와 두기봉 감독의 <매드 디텍티브>는 홍성남씨가 추천한 건지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건지 가물가물합니다. 또,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에 대해 늘 안 됐다고 여기셨는데, 축구실력이 좋은데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이야기만 해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프랑스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에 관한 다큐멘터리에는 지단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직접 카메라를 부착하고 찍었기 때문인데, 당시로서는 참 신선했습니다. 축구선수 지단도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 이런저런 기억들이 툭툭 떠오릅니다. 홍성남씨 빈소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래도 자유롭게 영화를 좋아하는 삶을 살았고 무뚝뚝하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고 사람들도 많이 아꼈다는 걸 새삼 떠올렸어요. 오늘도 이런저런 글들을 보니, 같은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사랑하고 후배들을 잘 챙기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떤 책을 쓰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여러가지 의견도 주시고, 참고도서도 챙겨주셨는데, 진도가 절반도 못 나갔습니다.

* 이대후문 필름포럼에서 판매하던 도서 중 «백화점의 탄생»과 «돈까스의 탄생»을 산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2000년대라, 지금처럼 이런 주제의 책들이 드물었는데, 뭔가 재밌을 것 같아서 골랐던 기억이 납니다.

* 나스메 소세키의 «그 후»와 «마음»도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일본 소설을 많이 볼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매이션도 대학교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시청각자료를 원내 대여해서야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이문열 작가가 낸 일본문학 선집 같은 10권짜리 책을 통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알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아는 작가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이 출간됐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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