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공정함’에 굳이 희구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떤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재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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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 독자와의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내가 생활의 기반을 안정시키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질 높은 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을, 많은 독자들은 분명 환영해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설가로서의 나의 책무이며 최우선 사항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관념적인 인간관계이다. 그러나 나는 일관되게 그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관계를,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정해서 인생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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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적어도 나로서는, 소설가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소설을 계속 써오면서,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여간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증오를 받거나 경멸을 당하는 그런 쪽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된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하면 안도하게 된다, 라고까지 말할 생각은 없다. 나라고 해서 타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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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되도록이면 그 모습이나 형태를 크게 변화시켜)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붓기 위해 노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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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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