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사두고 이제서야 읽고 있습니다. 새겨지는 내용들이 꽤 있습니다. 언제 다 읽을지 기약이 없지만, 조금 더 일찍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시간 위기는 가속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분산과 해체에 있다. - <가속사회> 중에서
이야기는 선택 작업을 수행한다. 서사의 궤도는 좁다. 오직 특정한 사건만 서사의 궤도 속에 들어올 수 있다. 이로써 긍정적인 것의 마구잡이 증식과 대량화가 방지된다. 오늘의 사회를 지배하는 긍정성의 과잉은 이 사회에서 서사성이 사라졌음을 방증한다. 기억 또한 그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기억은 서사적이라는 점에서 그저 덧붙이고 쌓기만 하는 저장과 구별된다. 기억의 자취는 그 역사성 때문에 늘 재정리되고 수정되는 과정 속에 놓인다. 이와 반대로 저장된 데이터는 늘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다. 오늘날 기억은 긍정화되어 쓰레기와 데이터의 더미로, "고물가게"로, 또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다량의 온갖 이미지와 닳아빠진 상징들이 완전히 뒤죽박죽 꽉 차 있는 창고"로 전락한다. 고물가게의 사물들은 차곡차곡 정돈되지 않고, 그저 나란히 널려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역사가 없다. 고물가게는 기억도 망각도 하지 못한다. - <가속사회> 중에서
계산과는 반대로 사유는 자신에 대해 투명하지 않다. 사유는 예측된 경로를 따라가지 않고 미확정적인 공간으로 나아간다. 헤겔에 따르면 사유에는 일정한 부정성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부정성으로 인해 사유는 자신을 변모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스로 달라진다는 부정적 특성은 사유를 구성하는 본질적 측면이다. 이 점에서 사유는 언제나 동일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계산과 구별된다. 계산의 동일성은 가속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이다. 경험뿐만 아니라 인식도 부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단 하나의 인식이 기존의 인식 전체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정보에는 이러한 부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경험 역시 근원적 변화를 일으키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경험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는 체험과 다르다. - <가속사회> 중에서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 정보의 증가와 축적만으로 진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는 방향, 즉 의미가 없다. - <긍정사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