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포핸즈>를 봤습니다. ‘연탄’은 알고있었는데, 피아노 연주자 두 명이 한 대의 피아노를 같이 치는 연탄이 바로 포핸즈라고 합나다.
선생님 블로그에서 보고,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클래식 연주를 보는 것도 좋았고, 확실히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인기도 이런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드라마가 나오는 데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가. 여로모로 좋은 일 입니다.
살면서 사람들이 숭고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른 드라마와 다른 점입니다. 예술, ‘가까이 다가갔다 싶으면 또 저 멀리 사라지는 예술’, 미혼모와 아들, 나의 자식이 아닌 부인의 자식, 응원과 짝사랑, 온 시간과 마음을 다하며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추구하는 음악, 빚쟁이의 아들이지만 어린 동생을 챙기는 형과 실장, 거장을 존경하고 영재를 발굴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 이사장 등 한 면으로만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친구와 예술을 아끼는 사람들의 교감도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드라마도 본 사람들의 해석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우정 혹은 상대에 대한 존중을 ‘BL‘ 코드로 해석한 글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존재와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사귐과 친교를 이어가는 것도 디지털 시대에는 희미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전해주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응원과 희생. 그런 가치들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TV 드라마. 점점 옅어져가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나 교감, 그리고 우정이라는 가치.
어쩜 비오와 정요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들었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외부로도 책임지는 행동을 했던 비오, 어떤 환경에서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음악을 놓지 않은 정요.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성장하고 키워나가던 동료. 어른들의 개입으로 멈춰버리고 달라진 운명과 나빠진 관계. 그렇지만, 본질을 보고 본질은 놓지 않았던 혹은 놓을 수 없었던 기저에 흐르고 있던 아끼는 마음.
* 끝끝내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지혜. 모든 걸 아버지 탓으로 돌리기만 하는 어린 지혜. 그래도 지혜는 자신에게 온 선물인 아들 비오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비오를 지키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이었을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많이 불편했지만, 지혜의 모습은 생존과 직결된 어떤 상황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우리 안에 있는 어두음 혹은 불안 혹은 흐느끼는 어린아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들 모자 관계는 어린 아이가 어린 아이를 보호하는 관계일지 모르겠습니다.
** 나중에 더 써보려고 합니다. 궁극의 예술을 추구한 음악가 강승운, 자신을 사랑하고 단단한 재인이, 험한 업계에 있지만 누구보다 정요를 아끼는 형 현철이, 속을 알 수 없는 현수 등
*** PD와 작가에 대해 찾아보려고 했지만, 별다른 기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신문에 숨은 연주자 두 명의 인터뷰는 나왔는데, PD와 작가에 대한 안터뷰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