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콘서트>만 그랬을까요? 아니면 다른 개그 프로그램들도 그랬을까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당시 <개그 콘서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 즐거운 화제였습니다. 월요병을 느끼는 직장인들에게 일요일 밤에 웃음으로 치료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개콘에 나온 에피소드나 유행어를 따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화제의 프로그램, 시청률 확보에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PD의 인터뷰가 실려 본 적이 있습니다. 유명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방송국에 들어와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극적인 커리어 변화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잘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기사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이십 년이 지나서, 당시 프로그램의 대표 개그맨인 황현희 씨의 책을 읽다가 놀랐습니다. 결국 PD는 자신이 못 견디고 떠나온 직장의 논리를 다른 쪽에 똑같이 적용했던 건 아닐까요? 물론 당시엔 화제를 일으키고 성공을 했지만, 개그맨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세상을 떠난 고 박지선 씨도 떠오릅니다.
방송국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PD의 권한이 막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책임도 크겠지요. 그러니, 프로그램이 아래와 같이 운영됐다는 것은, PD의 결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PD만의 방침이 아니었을 수도, 또 원래 그런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사람들에게 웃음과 쉼과 휴식을 준 프로그램으로 돈도 벌고 명성도 얻었지만, 동료가 아닌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살면서 웃음을 고안했을 개그맨들의 삶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역시 웃음은 고통 속에서 나오는 보석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참 웃기기도 하다. 전국에서 제일 웃기고 끼가 많다는 친구들을 매년 열 명씩 뽑아놓고, 그들이 편의점 알바나 우유 배달이나 일용직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끔 기본적인 안전장치 하나 없는 환경에서 경쟁하도록 몰아세우니 말이다. 이거야말로 코미디다. 그만큼 치열한 세계였다.
하지만 더 잔인한 것은 따로 있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선의의 경쟁이라고 포장하기 민망할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내 코너가 통과되어 방송에 나가려면 다른 코너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다 함께 잘되자’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먹고살기 위해 더 뛰어야 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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