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도 있고,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얼마전 세상을 뜬 안성기 배우를 ‘착한 사람’이라고 하고, 본인도 아들에게 어릴 적부터 착하게 살라고 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만 있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인 척도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 모두가 착하게 대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는 면도 있을 겁니다.
우연히 신문 기사를 통해 가톨릭 사제이신 홍성남 신부님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서울 가좌동 사제 시절에, 재개발과 관련해 ‘철거 용역 및 천박한 자본가들’과 5년 동안 대치해서 이겼다는 내용을 보고, 신부님이 펴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아래 문장은 두루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 내가 노력해서 이 정도는 된다. 그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그래, 내가 책읽고 공부해서 이 정도는 된다. 그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종교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도 신분이 강조되던 조선시대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남들 눈에, 남들에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착하고 마음이 평온한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라는 단어가 있는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문구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반증일 겁니다.
무작정 강요당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남에게 공평한 착한 사람이 되는 것 등 기존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들을 짚어주어 흥미롭습니다.

"그래, 내가 성당에 다녀서 이 정도는 된다. 그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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