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보려다가 끝까지 보지 못했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yi yi>을 봤습니다. 국내에서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작연도가 1999년이라고도 2000년이라고도 나옵니다.

대만영화 감독 중 에드워드 양(양덕창),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이들의 후배인 리안, 차이밍량 감독 등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번에 본 <하나 그리고 둘>은 이제 조금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에서 보려고 했을때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었는데, 이제서야 세 시간의 서사에서 포착한 삶의 흐름에 끄덕이게 된 것 같습니다. 늘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삶에서 중요한 일들이 교차하면서 죽음에 가까이 가기도 하고 죽음과 만나기도 하면서 영화가 마무리가 됩니다. 저마다의 출생과 사랑, 결혼과 커리어, 부모가 되어 다시 만나는 사랑, 그리고 죽음. 여러 명의 삶의 순간들이 교차하며 다양한 무늬를 담아냅니다. 조금은 거리감이 있지만, 지금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글로벌 투자, 유명 자동차 브랜드,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 재즈클럽, 위스키 등이 시대를 잊게 해줍니다.
위태로운 순간들이 삶에서 일어나지만, 마지막에 NJ와 민민 부부가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했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양양의 편지글도 다시 보고 싶습니다.

* 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대만영화 혹은 중국영화의 제목입니다. 특히 <해탄적일천>이라는 제목은 <해변에서 보낸 하루> 정도의 뜻일텐데,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냥 중국영화라고 생각하고 우연히 보다가 대만영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로 인식을 하게 될겁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영문 제목 <A one and a two>을 그대로 가져온 제목입니다. 네이버 중국어 사전에 <一一, yi yi>에 대해 ‘하나하나. 일일이. 낱낱이. 차례대로’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목을 다시 보니, 등장인물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로 짜여진 영화 전체의 구성이 이해가 됩니다.

* 이미 국내에서 자리잡은 한자식 제목을 좀 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제목으로 바꾼다면, 중국어권 영화들을 좀더 잘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imdb에도 ‘중신층 가족’의 이야기라고 나오지만,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음악, 종교, 삶의 의미와 ‘품위’ 등이 묻어나는 문화적인 공통점을 가진 가정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2000년은 우리나라가 IMF를 겪은 후이기도 하지만, 2003년 이전까지는 대만의 GDP가 우리나라보다 높았고, 이후 우리나라가 더 높았는데 20여 년만에 반도체 산업 등을 기반으로 대만 경제가 성장하며 다시 올해 GDP가 역전되었습니다.

* 요즘 나오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보면, 왠지 사업 혹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세상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여기까지 할 수 있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라는 힘의 과시가 느껴지면서 지루해집니다. 스타트업들도 자연적으로 생겨나고 없어지는 과정을 통해 단단해져야 하는데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역량이 부족한 기업이 좀비처럼 살아남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물론 영화도 드라마도 영상도 사업이고 시대별, 국가별 사업의 특성이 강하게 반영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간을 잡아먹기 위한 영상물 제작으로 방향이 정해진 듯한 넷플릭스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예술적인 다양성과 자유가 플랫폼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다양해야할 예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승자독식의 사업전개는 25년 후에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AI는 창작에 혹은 time share, attention share를 높이는데 어떤 역할을 할까요? 과연 예술, 성장은 어떤 의미로 변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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