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아날로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오십대의 출발을 알려준 만화 <동경일일>
- 직장인이 본 사실적 묘사를 중심으로 2 / 5
시오자와씨의 이름 모를 입사 동기, 현실에서 낯설지 않은 동료
18화를 보면 시오자와씨의 동기가 하는 말을 통해, 어떻게 사실이 왜곡되고 윤색되는 지가 잘 보입니다. 또, 각자의 입장을 어떻게 담아내는 지도 보입니다.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을 종종 마주합니다. 처음에는 ‘그게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진심으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아, 저 사람이 저렇게 받아들인다는 선언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18화에 잠시 등장하는 동기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시오자와씨의 입사 시점부터 잡지 폐간까지의 서사를 풀어놓는 동기는 이름이 없습니다. 몇 마디 하지 않는 택시 기사도 이름이 있습니다. (‘타카다’입니다.) 아마도 어느 회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원이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말로 직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강하든 약하든 이런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을 해내는 역량을 가진 구성원은 언제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런 인물들에 의해 끌어내려질 험지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실력있는 사람, 그러니까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늘 견제를 당하고 뽑혀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누가봐도 명확하게 콘텐츠에 대한 실력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다는 이유가 큰 것 같아요. 동기의 욕망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관리직으로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관리직에게도 어느 정도의 콘텐츠 역량은 필수입니다. 동기는 언론사와 출판사를 같은 선상에 놓습니다. 출판사에 입사한 후에 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만화광인 시오자와씨에게 질투를 느꼈습니다. 본인이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 대해 ‘수완이 좋거나 득실을 따지는 데 밝은 인간이 아니’라고 하며 ‘출세가도에서 일찌감치 낙오됐’다고 합니다. 의미는 ‘관리직으로 가지 않을‘ 사람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겠지요. 같은 단어지만 맥락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물론 모든 직장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각 회사마다 사용하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의미가. 회사에서는 ‘탁월한 성과’라고 했을 때 ‘만들어진 성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과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성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새로 쓰는 성과인 것이지요. 라인을 타고 이익을 공유하기로 결의한 소집단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조직 내에서 관리직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시장에서 즉 외부를 향해 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는 관점에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소규모 이익 집단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즉, ‘나의 생존이 회사의 생존’이라는 이유를 붙여서 대의로 만드는 경우가 아주 자주 있습니다.
동기는 오랜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삼십년 만에 기회를 잡았습니다. ‘업계 평판도 좋고’ 유관부서에서도 접자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담당자도 계속하겠다고 의지를 보이는데, 입사 동기가 끝을 냅니다. 입사 이후 차근차근 확보한 의사결정권으로 폐간하자는 의견을 내고, 굳이 거기에 반대하면서 책임을 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로부터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을 것 같습니다. 동기에게 시오자와씨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던 겁니다. 그게 입사 시점에 느꼈던 “열등감” 때문인지, 혹은 이번 폐간을 활용해 입지를 다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시오자와씨의 존재가 상대를 기분 나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본인보다 뭔가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스스로 더 열심히 노력하거나 혹은 상대와 일을 잘 해나가기 보다, 나를 작게 느끼도록 만드는 그 사람이 없어지는 걸 속편하게 여기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기가 <코믹 던(dawn)>을 꼼꼼하게 보고 있는 장면과 그에게 줄을 서는 후배가 나옵니다. “뭐, 창간호 매상은 축의금 같은 거니까요. 진짜 승부는 2호부터죠.”라고 동기의 기상을 읽는 대사를 합니다. 삼십년간 만화계에서 일하면서 동기에게도 이제 안목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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