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서전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3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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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참 오랜만에 책 리뷰를 쓰네. 지금 동시에 읽고 있는 두 권이 더 있는데 마음 먹고 끝장 안내면 질질 흐지부지 완독 못할 것 같아서 겨우 끝장냈다. 상편에서 속도는 느렸지만 흥미를 크게 느끼면서 좋은 문장들도 많이 찾으며 읽었는데 하편에서는 속도가 확 떨어지고 지루하기까지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상편에서 카잔차키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릴적 교육을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믿고 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하게되면서 겪는 의심과 혼란을 보여줬다고 한다면, 하편에서는 기존의 보편적으로 믿어지는 것을 깨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재정립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나와. 그래서 상편에서 읽을 때는 지금의 나와 같이 `그렇지 그렇지! 곧이 곧대로 들을 일이 아니라니깐?`했던 것이 하편을 읽으면서는 `거참 좋으면 믿고 별로면 버리지 왜 저렇게 괴로워하고 집착하며 끝장을 내려하는거냐. 참 피곤하게 산다.`로 바껴서 하편 그러니까 카잔차키스의 서른즈음부터 공감이 어려웠어. 그러니 지루하고 피곤하고 안궁금하고. 하의 뒷편에 조르바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부터 다시 흥미가 붙어서 재밌게 읽고 끝낼 수 있었어.

하를 읽고 나니까 이 책의 제목은 `영혼의 자서전` 외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겠다 싶더라. 말 그대로 참 고민 많고 참 진지하고 또 순수한 한 사람의 영혼의 자서전이야. 살며 겪는 사람들, 그들과 겪은 시간과 인생에서 몇 되는 사건이 있지만 그 숱한 이야기들은 흘러가는 배경일 뿐 주인공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영혼이야. 인간, 인생이라는 느낌보다는 정말 부숴질 것 같은 영혼의 이야기.

비록 지루해서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이야기이고 치열하게 끌어내 옮긴 글이라 경외감을 느꼈다. 신의 존재와 종교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80% 이상이라 아마 이건 나중 언젠가 읽었어도 감상은 같을거야. ˝하이고 이 사람 차아암 생각 많네. 대단하네.˝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비중이 컸다면 이 깊이에 이 진지함과 이 아름답고 진정을 담은 문장에 홀렸을텐데 관심사의 어긋남으로 이 정도로 밖에 못 느낌이 아쉽다.

발췌

침묵은 유령처럼 내 주변과 위로 솟았고, 나는 캄캄하고 말라붙은 우물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침묵은 갑자기 음향이 되었고, 내 영혼은 전율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너무나 까다롭고 부드러우며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웃는다. 비록 어느 날 저녁 흙을 한 줌 먹고 만족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우리들은 만족을 모르는 우리들의 욕망에 웃는다.

고뇌는 격력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다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는 단순히 특정한 교의를 위한 신비가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이다.

젊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만큼 겸손하지 않고, 능력은 적지만 추구하는 바가 많다.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유일하게 확신하는) 현세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상과 벌을 심어 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젊은이의 두드러진 속성일 뿐 아니라 성숙함의 두드러진 속성이기도 한 몰입 속에서 나는 몇 해를 파리에서 보냈다.

신을 죽여 버린 니체를 위해 만세를 부른다. 내가 원하던 바는 그것이라고 말할 용기를 나에게 주었던 사람은 그였다!

따뜻한 목욕탕에 들어가 혈관을 자르듯 차분하고 지극히 자비롭고ㅡ 죽음이란 이렇겠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녹아 버려서 몸을 들거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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