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읽히는 책을 도대체 며칠째 붙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읽힐 이유가 없는데 안읽힌다. 안읽힐 이유가 없는데 안읽힌다? 정말이다.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 그럼 집어치우고 다른 걸 읽든가. 물론 그러면 깨끗이 끝나는데 그게 안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걸 뛰어넘지 못하면 난 또 한번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아 그럴 수는 없다.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모를 이 느닷없는 오기가 날 점점더 비뚤어지게 한다. 안읽히는 책 한권이 나에게 불러일으킨 이 전투력이란 것이 폐병 환자 수준이라니. 난 약점 잡힌 게 분명하다.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다. 이러다 아주 된통으로 당할 것 같다. 아무 짓도 안하고 숨만 쉬고 살아도 빠른 속도로 늙기 시작한 지가 언제인데 이런 걸로 두통치통된통산통 다 겪게 될 줄이야..ㅠㅠ
이제 4시간 남았다. 그전에 잠들면 안된다. 어치피 잠이 안온다. 밤이 깊고 깊었는데 마음껏 안자도 되는 이런 일이 아주 오래 전에도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어렸지만 세상의 밤하늘이 나를 향해 입김을 내뿜고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차있던 날이었다. 그날에 비하면 오늘은 어떤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날의 일이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을 보면 난 여전히 기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