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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낼 때 문학이라는 영역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문학소녀, 또는 문학소년들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감수성 풍부한 모습들이 제게는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어떤 한 권의 책에 사로 잡혀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그 책의 문장을 곱씹고 또 곱씹는 일은 저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물론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성경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으며, 중요한 신학(또는 신앙) 서적을 반복해서 읽는 일을 하기는 하지만, 문학소녀(또는 문학소년)들처럼 일개 소설에 불과한 책들을 어떤 종교의 경전처럼 떠받드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공감 가지 않는' 부류에 속한 한 명의 소녀를 만났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소녀로 등장했던 주인공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마땅치 않게 바라보던 그렇고 그런 아줌마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자신이 정말 별볼일 없게 생각했던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아주 어린 나이에 엄마 친구에게 맡겨져 키워지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주인공은 엄마를 모성애가 결여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엄마를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김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릅니다. 엄마가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 행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작가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자신을 작가로 내세워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던 그 글짓기 교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어른들을 위한 글짓기 교실도 함께 운영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하는, 아니 글로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어하는 어른들, 특히 아줌마들이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이 아줌마들의 글을 비웃고, 그 모임을 비웃었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혼과 함께 미국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 이혼한 뒤에 네일 아티스트로 살아가면서 김작가가 운영하던 글짓기 교실과 비슷한 모임을 만듭니다. 장소가 미국이었기 때문에 라이팅 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입니다. 나중에 김작가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온 주인공은 김작가의 글짓기 교실을 자신이 계속해서 이어가기로 결심합니다. 글쓰기가 김작가와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삶의 버팀목이었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문학소녀라고 볼 수 있는 소녀의 삶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제게 있어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왠지 소설에 묘사된 그녀의 삶은 너무나 불행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그런지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뿐 아니라 주인공의 엄마인 김작가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불편함이었습니다.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두 여인은 불행한 삶을 이겨내고 살아남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고, 그들의 글쓰기는 그들을 살아남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아품을 풀어내고, 또 자신의 글을 읽어 주는 이들을 통해 삶의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들처럼 전문적인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김작가의 글쓰기 교실에 나오던 아줌마들처럼만이라도 글쓰기를 통해 삶을 이어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와 비슷한 종류의 작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이 가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인해 마음 편하게 읽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성공적으로 이겨내 왔다는 사실을 밝혀 준 결론에 이르러서는 깊은 연민과 깊은 공감의 반응으로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저자가 자신과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두 여인의 삶을 섬세하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에서 '글을 쓰는데 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소설 속 유명 작가의 말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저자가 실제로 묘사한 소설의 내용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도 이 소설을 통해 얻은 커다란 유익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성보다는 여성 취향의 글이라는 느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남자인 저로서도 새로운 세계를 엿본 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 저자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자에게 이래저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