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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과 싸우는 법 - 벤처신화 아이리버의 끝나지 않은 혁명
이기형 지음 / 링거스그룹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미디어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항상 뒷북만 치며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때에는 워크맨으로 테이프를 듣고 다녔고, 다른 사람들이 mp3 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때 그제서야 CD를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mp3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mp3 플레이어로 세계를 석권한 레인컴이라는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성공시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기업이 이루어 내었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를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본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은 대기업을 제치고, 그리고 무수한 mp3 플레이어 생산업체들 중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이 기업의 역사를 레인컴의 창업자인 양덕준 사장의 입을 통해 직접 듣기 위해 이 책을 손에 잡았습니다. (이 책은 기자 출신의 저자가 양덕준 사장과의 인터뷰, 그리고 나름대로의 취재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쓴 책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성공시대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플의 아이팟과 싸우며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커다란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레인컴의 성공에 대해 분석해 놓은 내용을 보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창업자인 양덕준 사장의 리더쉽이었습니다. 양덕준 사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사람을 품을 줄 아는 덕있는 보스'로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러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에 대해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창업자들이 회사를 상장한 뒤에 주식을 팔아 치우고 회사를 나몰라라 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상장 후에도 끝까지 책임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회사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는 끝까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퇴사 후에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 주식을 매각한 그의 태도말로 그러한 면모의 분명한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레인컴의 성공을 오로지 양덕준 사장 개인의 리더쉽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리버의 성공은 양 사장의 리더쉽에 반해 모여든 비범한 인재들이 가지고 있던 창의적인 사고방식과 탁월한 기술력이 이루어낸 합작품이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품 개발에 매어달린 엔지니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엔지니어들이 고객과 직접 소통하면서 제품의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해 가면서 쌓은 노하우가 아이리버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고개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형성된 서포터즈의 존재가 아이리버의 계속적인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도 잠시, 아이리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서 나락으로 추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양 사장은 레인컴이 무너지게 되었던 이유를 아이팟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아이리버 고유의 철학을 버리고 아이팟의 짝퉁 제품들을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애플의 가격경쟁력을 뛰어 넘을 수 없었던 것이 레인컴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애플이 삼성으로부터 낸드플레시 메모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대신 단가를 최대한 낮추어 공급받음으로써 다른 모든 mp3 생산업체를 고사시킬 수 있는 초저가 물량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뢰할 만한 품질에다가 제품 생산 단가까지 낮추었는데, 나름대로의 유통망을 무기로 유통업체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유통단가까지 낮춤으로써 다른 기업들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양 사장의 성품도 레인컴의 몰락을 불러 온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양 사장의 사람을 품고 가는 리더쉽이 레인컴의 성공을 가져온 것도 분명하지만, 레인컴이 정상에 올라간 뒤에는 그러한 리더쉽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공과를 엄격하게 구별해서 상벌을 주어야 할 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을 외부에서 높은 연봉과 직급을 주고 데려오면서 창업 공신들이 서운함을 느끼고 떠나가게 되면서 기업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러한 와중에 벌어진 이래환 부사장의 퇴사는 레인컴에 치명적인 손해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양덕준 사장과 그가 끝까지 손을 잡고 일했다면 레인컴이 그렇게까지 무너졌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었습니다.
저자는 레인컴의 몰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커다란 성공 뒤에 얻게 된 지나친 자신감을 꼽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감 때문에 기본적인 리스크조차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과연 그러한 설명이 옳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레인컴이 기본적인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했던 것은 회사의 풍토 자체가 경직된 분위기를 거부하는 풍토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려면 누군가가 살림살이를 조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양덕준 사장이 온화한 아버지의 역할을 맡았다면 반대로 무서운 어머니의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있었어야 했는데, 레인컴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래환 부사장이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가 레인컴을 떠남으로써 이 회사는 마치 방임형의 아버지가 이끌어 가는 대책없는 가정과 같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레인컴이 무너진 이유는 균형 감각이 결여된 한쪽으로 치우친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런 기업이 또 다시 세상에 등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양덕준 사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맞서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대기업이 가진 기술력을 뛰어넘는 것이 벤처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한 가지 기능만 가지고 출시되는 제품들이 아니라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대세인 요즘에는 그 어떤 벤처기업일지라도 아이리버가 거두었던 것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한 가지 기능을 가진 제품에 있어서라면 벤처기업이라도 대기업과 맞서 싸워볼 만하지만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디바이스(기기)가 아닌 플랫폼(콘텐츠 네트워크?)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양덕진 사장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애플과 같이 디바이스를 통해 거대한 인프라망을 가진 통신사들을 굴복시킨 경우도 있지만, 구굴과 같이 디바이스 생산업체들을 자신의 휘하로 모으는 것이 벤처기업이 대기업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기업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오는 생산업을 버리고 위험천만한 플랫폼 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만큼은 벤처기업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니라는 거인을 쓰러뜨리고 휴대용 음악기기 생산업체로서의 최정상에 올랐던 레인컴이 또 다른 거인인 애플에 의해 무너진 것을 보면서, 기업들의 세계는 치열한 전쟁터이며, 끊임없는 혁신과 자기 관리가 없이는 그 어떤 기업도 오래갈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기업인들이 레인컴의 성공과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이 이끄는 기업을 거인들과 맞서 싸울만한 단단한 기업으로 세워가는 데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