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신을 흔들다 - SHAKESPERE SHAKES PERE
오순정 지음 / 매직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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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알기에 집어든 책인데도, 이 책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원작의 내용을 흐릿한 파란색으로 인쇄하는 바람에 색약이 있는 저로서는 읽는 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을 하나도 모르겠다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자의 논리가 참으로 논리적인가 하는 것에 의문이 들었고, 또한 저자의 글투가 자신의 지식을 현란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과시하는 듯한 스타일이어서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입니다.

저자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숨겨진 의미를 설명해 놓은 것은 그럴 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설득력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문제는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내용을 설명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내용을 더 어렵게 꼬아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철학자가 말한 개념을 가지고 풀어 가려다 보니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문학 작품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 역시 내용을 더 복잡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중세의 우상(잘못된 사고)들을 비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우상이 제대로 파괴되었을 때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해피앤딩으로 끝나지만(베니스의 상인 처럼), 그 우상이 제대로 파괴되지 않고 잔존할 때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역시 비극으로 끝나게 되더라(햄릿 처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선'으로 여겼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대충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설명이 그럴 듯하게 맞아 떨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숙고해 볼만한 가치는 많은 부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저자가 회계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논리가 떨어지는 분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에, 저자의 논리를 따라잡기에 저 자신이 많이 부족해서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천재들은 과정을 뛰어넘어 결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논리적 비약에 익숙하다는데, 그런 점에서 저자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에게 있어서는 저자의 설명이 명쾌하거나, 친절하거나, 충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좋은 점수를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저자에게는 미안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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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동안에 - 사랑으로 세상을 움직인 감동 실화
게리 채프먼 지음, 서현정 옮김 / 예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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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이드 포스트라는 영한대역 월간지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잘 모르는 기독교잡지라고나 할까요.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그 잡지를 읽으면서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들을 여러 차례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에 만났던 그런 가슴 따뜻해 지는 사연들을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33편의 사연들 모두가 그와 같은 사연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차가운 가슴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불어 넣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내용들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감동적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깨달음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실천을 통해서, 자신이 변하고, 다른 가족이 변하고, 그래서 가정도 변화되었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변화되기 전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소망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기적에 가까운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놀라운 기적이 작은 노력 하나 하나가 모여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는 결단과 작은 실천을 통해 일어난 그 기적들을 보면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소망에 다시금 한 걸음 다가설 용기를 얻게 됩니다.

33편의 사연 중에서 가장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던 사연은 막내 아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깨어졌던 가정이 회복된 사연이었습니다. 그 성추행의 피해자가 바로 조카(큰 아들의 딸)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회복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둘 중의 어느 아들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했지만, 그녀의 어떤 노력도 작은 아들과 결별하기를 요구하는 큰 아들과 큰 며느리의 마음을 돌려 놓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일기 쓰기.. 어머니는 그 일기에 큰 아들 내외가 느꼈을 고통에 대해 기록하고, 또 자신의 아픔에 대해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읽은 큰 며느리의 변화를 통해서 시작된 회복의 흐름은 결국 그 사건의 당사자들을 한 가족으로 다시금 모이게 하였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외에도 대 여섯 가지의 사연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 내용을 하나 하나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연도 감동적이지만, 사연의 마지막 부분에 그 사연으로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해 놓은 부분을 통해서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병원이나 미용실 같은 곳에 비치해 놓으면 기다리는 동안 읽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문제로 마음이 아프거나 감동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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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규장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16
A. 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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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저의 설교는 언제나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줍니다. 강렬한 어투와 거침없는 선포에서 가슴이 시원해지다가도, 그 말씀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한동안 토저의 설교에 빠져 지내다가 꽤 오랜 공백기를 거쳐 다시 토저의 설교로 돌아온 이유는 여러 설교자들의 설교집을 섭렵해 보았어도 토저의 설교만큼 가슴에 와 닿는 설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채워 주는 설교는 많았지만 가슴을 치게 하는 설교는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씨름해 오던 저에게 이 책의 제목은 특별한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토저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아니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토저의 음성을 통해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영문판 편집자인 제임스 스나이더의 서론에서부터 이 책은 제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 전체에 걸쳐서 토저는 자신의 독자가 진정으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전제하에서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회심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볼 때 회심은 끝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와 행함으로 충만한 삶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회심의 확신'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어온 바 있었기에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만약 '회심의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저 역시도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회심'이라는 그 놀라운 체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놀라운 회심 이야기'라던가, '아이들의 회심 이야기'와 같은 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면, 자신의 회심을 확신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회심을 신앙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그 시작점조차 거치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것이 가당키는 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임스 스나이더는 토저가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기보다는 '행함 장'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는데, 책 소개에 인용된 그 내용을 보면서 저는 이 책이 히브리서 11장에 관한 설교집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 기록된 설교 중 단 한 편의 설교 중에서 잠시 다루고 있는 내용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이 책을 읽어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오히려 베드로전서와 유다서를 설교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자는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서신에서 수신자들을 향해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베드로 사도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또한 예수님의 형제 유다가 수신자들을 향해 어떻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분명하게 그려 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마음이 그 진리에 설득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저자의 설교는 그 점에 있어서 상당히 탁월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저자 특유의 방식은 뭔가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아무런 깊이도 없는 내용을 포장만 잘해서 내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설교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점에서 그의 탁월함을 발견합니다.

  저자가 구약 시대 선지자들과 함께 일하셨던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그 점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성령님과 관련된 구절들에 있어서 전치사의 의미를 중요하게 다루는 해석'에 관해 언급하면서,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선지자들의 '위'에만 계셨다는 잘못된 해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1절('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에 나오는 '속에'라는 전치사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없었다. 성령은 오직 그들 '위에' 계셨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황당한 신학을 무너뜨린다.. 나는 성령께서 구약의 선지자들 위에, 또 그들 안에 계셨다고 믿는다. 나는 성령께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위에 임하셨고, 또 그들 안으로 들어오셨다고 믿는다. 나는 성령께서 구약의 선지자들 안에 계셨다고 믿는데 그것은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난무하는 이유에 대해, 지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혀 실천을 망각하거나 무리한 성경해석에 집착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가장 쉽고 평범한 해석이 옳은 해석이며, 하나님의 본 뜻과 아무 상관없는 기상천외한 의미를 성경 구절에서 끄집어내기 위한 현학적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이미 깨달은 성경 구절을 실천하는데 힘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스나이더가 언급한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내용 역시 저자의 탁월함을 드러내 주고 있는 본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자는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믿음의 사람들이 왜 믿음의 사람으로 불리웠는가에 대해 상기시켜 주면서 그들의 행위, 곧 그들의 순종이 그들의 믿음을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믿음에 따른 행동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들을 순종으로 행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성경의 진리가 모든 이들에게 자동적으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을 만족시킨 이들에게만 진리가 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베드로전서 2:3절의 말씀(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문장 앞에 붙어 있는 만일(if)라는 단어의 의미는 '너희가 그분이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지 못했다면, 너희는 처음으로 돌아가 먼저 그분이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전진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수준에 따라 먼저 해야 할 일과 다음에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인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자는 또한 '신앙을 전할 때에는 신앙에  따르는 고난도 함께 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절반의 기독교만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오늘날 '절반의 복음'만을 전하고 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고난을 당할 때에 상대와 다투지 말고 도리어 침묵하라'는 저자의 권면에서는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기 때문에,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에게 증오의 마음을 품지 말고, 악의를 키우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만 하면 세상에 그 무엇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저자의 설명에 커다란 도전을 받았습니다. 

  또 저자가 자신이 '보편구원론을 믿지 않는 이유'를 성경 말씀을 근거로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설'에 대한 저자의 설명 역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 뭐라고 말할 만한 수준이 못 되지만, 저자의 설명은 충분히 논리적이고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 저래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로 풍성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토저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로 지내면서 다른 누군가의 설교를 듣거나 읽으면서 은혜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와 같이 귀한 설교자의 설교를 왜 한동안 잊고 지냈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래간만에 감동과 도전을 주는 설교집을 읽은 기쁨이 큽니다.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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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의 재발견
제임스 패커 지음, 장인식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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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거룩에 대해 종합적으로 개괄하고 있는 책입니다. 거룩의 의미, 거룩의 중요성과 필요성, 거룩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과정들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거룩에 관해 공부하고자 할 때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들은 거의 다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다양한 신학적인 입장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풍성한 내용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특히 4장에서 다루고 있는 거룩함의 여섯 가지 특징들(또는 거룩에 이르는 여섯 가지 통로들)은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거룩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익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다섯 번째 특징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회심한 후에 하나님의 자비로 중대한 경험을 하는 신자들이 있는데,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말하면서도, 이를 하나님께서 '일부 자녀들'에게만 허락하시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완전성결 교리, 또는 제2의 경험(또는 축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잇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누구라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하면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경험은 '마음에 할례를 행한다'는 성경의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죄에 대해 이전보다 더 더욱 민감해지는 경험으로써, 거듭난 자라면 누구라도 구해야 하고 또 누려야 할 경험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은사의 사용에 대해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의 7장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저자가 7장을 기록한 이유는 성령의 사역 가운데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이 '은사를 통해 일하게 하시는 사역'보다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자신의 거룩을 먼저 이루고 나서야 사역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지 가치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저자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이 의식하는 약점 속에서 완벽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은사주의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역시 조금은 치우친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입장 차이가 있는 몇몇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어 가면서 조금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은 절 제목에 번호를 붙이지 않아서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조금은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원저에 없는 것을 붙이는 데에 부담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절 제목에 번호를 붙여 주었더라면 내용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오른쪽 페이지 하단에 장 제목을 적으면서 번호도 함께 붙여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 자신은 자신이 어떤 신학 전통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했지만, 저자가 개혁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개혁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분들이 읽기에 가장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완전성결이나 제2의 경험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룩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이에게는 주 교재로서, 어떤 이에게는 보조 교재로서, 다양한 유익을 안겨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패커라는 저자의 편향된 성향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의 책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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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은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 개정판
문희곤 지음 / 예수전도단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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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콘서트가 아닙니다'라는 저자의 첫 번째 책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뒤이어 '얼음냉수'라는 책이 나왔을 때에 꼭 읽어야지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읽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한 동안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진 채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확대 개정판으로 다시 발간이 되었다는 소식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드디어 손에 넣어 읽게 되었습니다. 첫 제목인 '얼음냉수'에서는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개정판에서는 제목 자체가 책의 주제를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충성'에 대한 책이라.. 그렇지 않아도 성화에 대해, 그리고 성령의 열매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였는데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한 요소인 '충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을 만나니 좋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읽어 가면서 '충성'에 대한 성경적이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내용들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가장 먼저 몇몇 가지의 예를 들어 충성스럽게 보이기는 해도 실제로는 춛성이 아닌 것들이 있음을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바를 수행하지만, 자신의 노고를 알아 주지 않는 지도자와 공동체에 대해 섭섭함과 원망함이 있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만 열심히 한다.', '상황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 일의 성격에 따라 임하는 태도가 달라진다.'와 같은 태도들에서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진정한 충성에 대해 배우고 또한 실천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저자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었는데, '당신은 대가를 받지 않고도 충성할 수 있는가?', '당신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충성할 수 있는가?', '당신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상황에서도 충성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충성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 앞에서 자신있게 "예 그렇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충성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찾으시는 이유는 그와 함께 일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와 예수님을 들어 하나님께 순종한 대표적인 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보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또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또는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또는 완벽주의 기질 때문에, 튀고 싶어서 충성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충성은 진정한 충성이 아니며, 진정한 충성은 바른 동기에서 비롯된 충성이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들은 바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 충성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충성애야 할 세 영역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다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물과의 관계에서 충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 절반을 이 세 영역에 대해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충성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따른다는 점에 대해서도 성경을 근거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충성의 방법에 대해 소개하면서 '작은 일에, 그리고 남의 일에 충성해야 큰 일도 맡겨 주시고, 나만의 일도 맡겨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거룩과 정결함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기에 이러한 면에서부터 충성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남의 허물을 떠벌리고 다니거나, 반드시 지적해야 할 잘못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 것이 충성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에 필요한 원칙들도 소개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실제적이고 유용한 원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특히 'I' 메시지로 대화하는 법은 예전에 DTS를 받을 때 배운 바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많이 반가웠습니다. 또 '권위자의 잘못된 명령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공동체의 지체를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생각하는 충성의 행위와 모습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나'와 같은  실제적인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재물에 충성하는 것이나, 직장에서 충성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특히 직장에서 충성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직장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라도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다루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충성의 두 기반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첫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충성이 시작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충성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충성된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 내가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얼음 냉수를 들이키신 것처럼 시원해 하신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두근거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충성되지 못한 일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돌이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예를 들어 돌이키는 데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앞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다루고 있었는데 바로 다윗의 경우였습니다. 수많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그 죄에 대해 철저하게 통회하고 돌이켰다는 데에 있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충성에 관한 내용을 읽다가 자신의 불충성을 발견하고 낙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 준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도전이 되었던 부분은 저자가 직장에서의 충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종교 행위와 업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이었습니다. '업무 시간 중에 전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것은 믿지 않는 상사와 동료에게 거부감만 주는 지혜롭지 못한 행동일 뿐이라'는 저자의 지적에서 제 자신의 잘못된 태도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개척교회를 목회하면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목회 업무에 집중해야 할 시간과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야 할 시간을 지금까지 잘 구별하지 못한 채로 지내왔는데, 이것이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교역자로 여러 교회를 섬겨오면서 제대로 충성하지 못했던 점도 돌아보게 되었고, 교회를 개척하게 된 동기 가운데에 마음에 안 드는 권위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힘들어서 내 원대로 목회하고자 했던 잘못된 동기도 없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충성스럽지 못한 제 모습을 이제는 바꾸어 보리라는 강한 도전도 받았는데, 앞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얼음냉수와 같은 시원함을 안겨 드리는 존재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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