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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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의 서재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자기보다 '고수'라 할 만한 분의 서재를 구경하게 될 때에는 그 엄청난 규모와 수준에 넋을 잃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그렇게 흔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기 주위의 어떤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지, 그리고 그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또 소장한 장서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부터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의 서재를 구경한다는 것은 그 분들과 먼저 안면을 터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기에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은 간접적으로나마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이 책에 소개된 열 다섯분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분들입니다. 소위 '명사'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분들 중에 한 두 분 정도는 어떻게 알고 지낼 수 있다고 해도, 이 열 다섯분 모두를 알고 지낸다는 것은 기자와 같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아닌 이상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열 다섯분의 서재를 모두 다 구경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거기에 더해 이 열 다섯분으로부터 책에 관한 자신의 철학에 대해서 소개받거나 읽어 볼 만한 책을 추천받는다는 것까지 더하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어려운 기회를 만들어 그 결과물을 이 책에 담아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책에 소개된 열 다섯분 중에 제가 아는 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금 아는 분이 있다고 해도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았던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와 장진 감독, 이름만 들어 본 조국 교수와 이효재씨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자연과학자 최재천씨와, 솟대 예술 작가 이안수씨를 비롯해 거의 모든 분들이 생소한 분들이었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이 책에 소개된 한 분 한 분이 자기가 속한 영역에서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열 다섯분의 이야기를 읽어 가는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람마다 독서 방법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소리 내어 읽으며 정독을 하는 분(최재천.42쪽)도 있었고, 주로 속독으로 읽는 분(이안수.82쪽/조윤범.392쪽)도 있었고, 책의 가치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읽는 분들(정병규.133쪽)도 있었고,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분들(김진애.215쪽/승효상.299쪽/김성용.328쪽)도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책만 읽는 분(이주헌.251쪽)도 있었고, 책을 남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승효상.299쪽)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굉장히 깨끗이 읽는가 하면(최재천.40쪽), 또 어떤 분은 책에 연필로 체크를 해가며 읽다가 정독해야 할 책을 만나면 책에 깨달같이 메모를 해가며 읽기도 했습니다(정병규.134-135쪽). 또 어떤 분들은 책을 읽은 다음 반드시 그 내용을 독서노트에 정리하거나 메모로 남기기도 하였습니다(박원순.270쪽/김성룡.327쪽).

또 어떤 분은 만화책과 동화책을 즐겨 읽기도 했고(이효재.158-161쪽), 어떤 분은 역사책을 즐겨 읽기도 했고(배병우.188쪽/조윤범.382쪽), 어떤 분은 청소년들을 위한 개론서를 즐겨 찾기도(이주헌.242쪽) 했습니다. 저처럼 어렸을 때 만화책(승효상.302쪽)과 무협지(김성용.318쪽)를 즐겨 읽었던 분들도 계시더군요. 또 저희 가족들처럼 화장실 들어갈 때 꼭 책을 들고 들어가는 가족들(김성용.324)도 있었구요. 또 분들은 책이 너무 많아서 책 분류하기를 포기((이안수.75-76쪽/정병규.126쪽)하기도 했더군요.

책에 대한 생각들도 다양했는데 한 분 한 분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깊이가 있어서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열 다섯 분이 각각 추천해 주신 도서들도 상당히 시선을 끌었는데, 두 분 이상의 추천을 받은 책은 토지(박경리.나남/김용택,김진애 추천) 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각각 한 분의 추천을 받았지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언급되었던 책들은 사마천의 사기, 니코프 카찬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노자의 도덕경, 이렇게 세 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합쳐 백 여권 정도 되는 추천 도서 중에 제가 읽어 본 책이 채 열 권도 되지 않더군요. 게다가 듣느니 처음인 책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추천도서들 중에 많은 책들에 대해 읽어 두어야지 라는 표시를 해 두었는데 언제나 손에 잡게 될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개된 책들마다 정말 좋은 책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책들의 존재 자체를 알아 둔 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읽기 시작한 책들이 몇 권 더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두꺼운 책이었던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 버렸던 것은 이 책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저와 동일한 느낌을 받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유익과 재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표현을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 만화를 평할 때 자주 사용해 왔는데, 인문학 도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에 그와 같은 표현이 가장 훌륭한 표현이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올 해들어 읽은 인문학 도서 중에 최고로 재미있고 유익했던 책이었습니다.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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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믿음, 크신 하나님 - 톰 라이트의
톰 라이트 지음, 배응준 옮김 / 두란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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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에는 설교집인 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설교집이더군요. 그런데 성공회 사제의 설교집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읽어 본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집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설교들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설교가 약 10-15분 정도 분량의 길이였습니다. 가장 긴 설교도 20분 정도 분량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성만찬에 관한 강조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만찬을 강조하는 내용의 설교를 보면서 저자가 성공회 사제라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주일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성공회의 특성을 기억하면서 짧은 분량의 설교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설교의 전체적인 강조점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다른 교단 목회자분들의 설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교 내용 중에 칼빈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저자가 어떤 신학적 입장에 동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들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할 만한 어떠한 잘못된 주장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을 문맥에서 벗어나 불쑥 읽는 독자들이,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교리를 폐지하고 대신 '순종으로 말미암은 칭의'교리를 확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경고를 해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115쪽)."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하듯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의 영광스러운 점은 이런 것들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에는 완벽한 삶을 살지 못했다가 지금은 완벽한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한 삶에 대한 환상은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율법주의에 불과하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 덕택이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그 사랑을 알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164-165쪽)."

또한 이렇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이루었다'는 말에 들어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절반만 수행하시고 나머지는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해 구원을 하셨다. 예수님은 그 값을 온전히 치르셨다..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은 우리 구원을 위한 값이 이미 완전히 지불되었음을 의미한다(81쪽)." 저자의 이러한 말을 볼 때 그가 '행위 구원'을 말하고 있다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제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저자가 믿음에 대해 정의해 놓은 다양한 설명들이었습니다. 믿음에 관한 저자 자신의 정의가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서술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와서 부딪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믿음에 관해 설명해 놓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설명은 서문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크심'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크심'을 파악하는 우리의 작은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깨달음이나 믿음이나 웅변이나 순례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그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9쪽).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이라고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대해 설명해 놓은 저자의 설명을 살펴볼 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믿음에 대해 설명해 놓은 내용 가운데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았던 설명 몇 가지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우리 자신의 처지와 연약함을 보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미래를 보는 것이며, 해를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33쪽)."

"믿음은 비록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작다고 해도 하나님을 아는 것을 기초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자발성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믿고 의지하는 자발성이다(36쪽)."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BAT성경은 히브리서 11장 1절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번역했다(39쪽)."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시간 안에서나 영원 안에서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덕택에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40쪽)."

"두 여인(나오미와 룻)은 우리에게 성경적인 믿음에 관한 멋진 그림을 보여 준다. 그것은 암담했던 과거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고 말하는 믿음이며,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현재를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다'라고 말하는 믿음이다. 또한 그것은 전망이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믿음이다(169쪽)."

이 책에서 저자가 믿음에 관한 설명을 책의 처음부터 끝가지 계속해서 풀어 놓은 이유는 저자가 '사랑'이나 '소망'을 '믿음'의 다른 모습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힘이 나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부에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설명한 다음에, 2부에 가서는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3부에 가서는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 가운데 몇 가지는 상당히 중요한 깨달음을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들어오실 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 특히 순종을 요구하시고, 징계를 가하시는 일들에 대해 설명한 내용들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마음을 사로잡았던 내용 한 가지는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 '순종'에 대해 저자가 설명해 놓은 부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물고리를 해변으로 가져오라고 명하셨던 것처럼 우리 삶과 우리가 성취한 것들을 가져와 자기 앞에 놓으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실 때도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그러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그 때, 제자들이 자신들은 예수님의 도움 없이 물고기를 잡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예수님은 자기들의 도움이 없이도 그들을 먹일 수 잇다는 점을 부수적으로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이 우리가 가진 것들이 필요해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72족)."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기 전에 이미 예수님께서는 조반을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잡은 고기를 가져오라 하셨지만 이미 불 위에는 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도움 없이도 그들을 먹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귀한 조언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이 사실을 깨닫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글을 통해 제 자신의 깨달음이 저 자신만의 깨달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완전한 능력이나 힘을 느낀 적도 없고 깨달은 적도 없다면,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154쪽).. 하나님을 자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사랑을 증명하셨다. 또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셨다.. 만일 당신 마음과 뜻과 힘이 당신을 위해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의해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한다면, 생명과 사랑을 주시는 성령을 선물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155-156쪽)"

저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에 대해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방법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찾은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했고, 또 그 길을 부지런히 가야겠다는 결심을 더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구절들, 특히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다 준 구절들을 전부 모아 보았더니 한 스무 곳 정도가 되더군요. 그 중에서 약 1/3 정도를 이 글에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에서 소개해 드리지 못한 2/3 정도의 내용이 아직 이 책의 여러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구절들은 여러분들이 직접 찾아 보시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 실려진 설교들이 대부분 감성적인 자극을 주기보다는 지적인 깨달음을 자극하는 스타일의 설교라서 어떤 분들에게는 별로 감동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적인 자극과 깨달음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참으로 많은 도전과 감동, 그리고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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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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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마이 리틀 레드북'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까 싶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팬티 그림을 보면서 '성'에 관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기는 했는데, '초경'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섹스'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었습니다. 왠지 청소년기에 '빨간책'이라고 부르던 책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루어진 파격적인 시도를 염두에 두고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모택동이 문화혁명 당시 펴냈던 '리틀 레드 북'이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책도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빌려서 '마이 리틀 레드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책을 읽는 일에 부담을 느꼈더랬습니다. 왠지 중년에 접어든 남성이 여성의 '초경'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변태같은 짓'은 아닐까 싶은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초경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딸에게 읽어 보도록 해야 할 것도 같았고, 또 우리 딸이 초경을 경험하고 난 뒤에 아버지로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이 책을 펼쳐 들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월경'에 관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생리혈의 색깔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빨간색이 아니라 갈색에 가까운 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서양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패드보다는 탐폰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결혼 전까지만 해도 탐폰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패드 광고만 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양 여성들은 패드를 사용하면 자신의 생리주기가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탐폰을 더 선호한다는군요. 하지만 결혼 전까지 처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교육받는 동양 여성들에게는 아무래도 탐폰을 사용하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주디 블룸의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라는 책이 초경에 관한 교과서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오늘날의 상황과는 별로 맞지 않는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더군요.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사연 가운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주디 블룸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습니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월경을 '저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엄마가 초경을 한 딸의 뺨을 때려 주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은 '월경'에 대한 성경이나 코란의 규정을 오늘날에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생리대를 구입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질 정도로 생리대가 귀하고, 따라서 가난한 집 여자아이들은 월경이 시작되면 학교에 갈 수조차 없다고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물이라도 넉넉하면 면 생리대라도 만들어 사용할텐데 그럴 여건도 안 되고, 일회용 생리대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남자인 저로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이 그런 지역의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데에 쓰여진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그런 곳을 후원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다양한 책을 읽어 두고, 학교에서 미리 교육을 받아 두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두고, 모든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초경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그것은 남성의 입장에서도 비슷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정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처음 몽정을 하게 되면 당황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매달 겪게 되는 그 일은 불편하기 그지 없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월경이 시작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이 모든 여성들의 동일한 반응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시작했는데 자기 혼자 시작하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초조하게 기다렸던 경험담을 자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월경을 시작했을 때 뿌듯하게 생각했던 사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딸 가진 아빠로서 가지게 되었던 생각은 딸 아이로 하여금 월경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준비하도록 도와 주어야겠다는 것과, 딸이 초경을 경험하게 되면 딸이 원하는 방식으로 축하해 주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니 자신이 월경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엄마가 가족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 경우도 있었고, 뿌듯하게 느낀 경우도 있고,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더군요. 그런 이유로 초경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는지 엄마를 통해 먼저 물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경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어 보도록 하는 것이 그러한 준비에 있어서 중요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훗날 이 책을 선물해 준 것에 대해 딸 아이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생깁니다. 다른 아빠들도 한 번 쯤 자신의 딸에게 선물해 볼 것을 고려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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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서 있는 교회
엄용근 지음 / 대장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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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라는 공동체는 공동체로서가 아니라 건물로서 규정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라고 그러면 건물부터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 건물을 소유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건물을 마련해서는 '성전'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러나 교회 건물에 이렇게 이름 붙이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서도 성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건물을 향해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은 결코 성전이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러한 사실을 그와 관련된 성경의 본문을 하나 하나 짚어 가며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는 성경 말씀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의 나의 발등상이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인데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사66:1)"는 성경 말씀 등을 제시하며 '성전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며 사람이 짓는 건물은 결코 성전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솔로몬의 성전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극단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저자가 솔로몬 성전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입장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허용을 통해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하셨던 이유는 훗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되심에 대한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자기 아들 중 솔로몬을 택해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성막에 대해서는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을 하나 하나 모세에게 다 일러 주셨지만, 성전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이 완성된 다음에는 그 안에 영광의 구름이 가득했지만, 성전이 완성된 다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전되신 예수님의 모형으로는 성막으로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그저 인간적인 욕심에서 세워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저 그 마음을 받으시고 성전 건축을 허용하셨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이 상당히 급진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전과 관련된 다양한 성경 구절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신학적인 진술을 담고 있는 성경 구절을 기준으로 삼아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이 성전이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세운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 성전 건축에 관해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다윗이 성신으로 말미암아 성전의 식양을 받았다(대상28:12)는 내용을 역대기의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네 몸에서 날 자식이 성전을 지을 것(삼하7:101-4)"이라는 말씀도 솔로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인데, 훗날 역대기의 필사자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이 구절을 솔로몬을 예언한 것으로 고쳐서 인용(대상22:6-10)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학개나 스가랴, 에스겔 선지자의 글에 대해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기는 했지만, 각각의 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독려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자신의 말씀'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한 성경 자체 내의 해석'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성경 해석 방식인데, 저자는 그러한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서 필사상의 변개까지 염두에 두고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그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성전에 대한 일관된 견해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 위치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저자의 설명 역시 일반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른 해석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예수님의 사역 기간으로 보고 있었고, 세 번의 일곱 재앙을 각각 양심의 시대, 율법의 시대, 마지막 시대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인의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의 순서를 바꾸어 일곱 나팔 재앙이 양심의 시대에 해당되는 재앙으로, 그리고 일곱 인의 재앙을 율법 시대에 해당되는 재앙으로 연결짓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러한 해석이 터무니없다고 느껴지지 않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쯤 살펴 보아야 할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이러한 해석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선까지 받아들여야 할 지 조금은 고민스럽습니다. 너무나 급진적인 해석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을 비성경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저자의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이 보수적인 교단에서 자란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성전'에 대해서, 그리고 '성지 순례'라는 용어나 '목사'라는 용어 등에 대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은 한 번 쯤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내용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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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여정 - 하나님이 함께 걸으시는 든든한 순례길 천국 연대기 2
진 에드워즈 지음, 최요한 옮김 / 터치북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진 에드워즈의 5부작 시리즈 천국연대기의 두 번째 책입니다. 첫 번째 책인 사랑의 시작을 읽지 못한 채로 읽기 시작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소설 형식으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성경 그대로 읽었을 때보다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이후 야곱은 불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된 불구였다. 더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왕자, 이스라엘은 노년이 되자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다." 다리를 절었다는 말 대신 불구라는 말을 사용하니 그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오더군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 역시 불구가 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복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였습니다.

유월절 사건에서 의인화 된 '죽음'이 장자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잘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조차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묘사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삼호실의 죄수'라는 저자의 다른 작품에서도 '죽음'이라는 존재를 무척이나 강력한 존재로 그려 놓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저로서는 저자의 이런 묘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태초부터 내가 모르는 죽음은 없어. 이런 죽음은 없어.. 이 죽음은 내가 모르는 죽음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엡3:9]'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던 점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그 때 죽음은 죽음을 맞아 죽을 것이다. 이후로 죽음이 그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선언 역시 마음 깊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역시 진 에드워즈의 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명문장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마라의 쓴 물을 변화시킨 나뭇가지가 생명나무의 가지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의 발 앞에 던져 주셨다는 설정도 기발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바위에서 나온 물을 간헐천으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물에서 기포가 터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간헐천이라기 보다는 광천수라고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70인 장로들이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을 보면 먹고 마신 사건에 대한 묘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저자는 마치 그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때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을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알겠지만 조금은 불편한 묘사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진 에드워즈의 글은 소설로서는 보기 드물게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어 준다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 내용들이 대체로 성경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한 것 아닌가 라는 느낌을 받게 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할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봐 줄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중간 중간에 박혀 보석처럼 반짝이는 멋진 문장들을 통해 많은 감동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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