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에 '마이 리틀 레드북'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까 싶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팬티 그림을 보면서 '성'에 관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기는 했는데, '초경'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섹스'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었습니다. 왠지 청소년기에 '빨간책'이라고 부르던 책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루어진 파격적인 시도를 염두에 두고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모택동이 문화혁명 당시 펴냈던 '리틀 레드 북'이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책도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빌려서 '마이 리틀 레드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책을 읽는 일에 부담을 느꼈더랬습니다. 왠지 중년에 접어든 남성이 여성의 '초경'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변태같은 짓'은 아닐까 싶은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초경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딸에게 읽어 보도록 해야 할 것도 같았고, 또 우리 딸이 초경을 경험하고 난 뒤에 아버지로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이 책을 펼쳐 들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월경'에 관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생리혈의 색깔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빨간색이 아니라 갈색에 가까운 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서양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패드보다는 탐폰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결혼 전까지만 해도 탐폰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패드 광고만 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양 여성들은 패드를 사용하면 자신의 생리주기가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탐폰을 더 선호한다는군요. 하지만 결혼 전까지 처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교육받는 동양 여성들에게는 아무래도 탐폰을 사용하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주디 블룸의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라는 책이 초경에 관한 교과서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오늘날의 상황과는 별로 맞지 않는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더군요.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사연 가운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주디 블룸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습니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월경을 '저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엄마가 초경을 한 딸의 뺨을 때려 주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은 '월경'에 대한 성경이나 코란의 규정을 오늘날에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생리대를 구입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질 정도로 생리대가 귀하고, 따라서 가난한 집 여자아이들은 월경이 시작되면 학교에 갈 수조차 없다고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물이라도 넉넉하면 면 생리대라도 만들어 사용할텐데 그럴 여건도 안 되고, 일회용 생리대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남자인 저로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이 그런 지역의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데에 쓰여진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그런 곳을 후원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다양한 책을 읽어 두고, 학교에서 미리 교육을 받아 두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두고, 모든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초경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그것은 남성의 입장에서도 비슷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정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처음 몽정을 하게 되면 당황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매달 겪게 되는 그 일은 불편하기 그지 없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월경이 시작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이 모든 여성들의 동일한 반응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시작했는데 자기 혼자 시작하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초조하게 기다렸던 경험담을 자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월경을 시작했을 때 뿌듯하게 생각했던 사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딸 가진 아빠로서 가지게 되었던 생각은 딸 아이로 하여금 월경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준비하도록 도와 주어야겠다는 것과, 딸이 초경을 경험하게 되면 딸이 원하는 방식으로 축하해 주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니 자신이 월경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엄마가 가족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 경우도 있었고, 뿌듯하게 느낀 경우도 있고,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더군요. 그런 이유로 초경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는지 엄마를 통해 먼저 물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경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어 보도록 하는 것이 그러한 준비에 있어서 중요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훗날 이 책을 선물해 준 것에 대해 딸 아이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생깁니다. 다른 아빠들도 한 번 쯤 자신의 딸에게 선물해 볼 것을 고려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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