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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서 있는 교회
엄용근 지음 / 대장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오늘날 교회라는 공동체는 공동체로서가 아니라 건물로서 규정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라고 그러면 건물부터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 건물을 소유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건물을 마련해서는 '성전'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러나 교회 건물에 이렇게 이름 붙이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서도 성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건물을 향해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은 결코 성전이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러한 사실을 그와 관련된 성경의 본문을 하나 하나 짚어 가며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는 성경 말씀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의 나의 발등상이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인데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사66:1)"는 성경 말씀 등을 제시하며 '성전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며 사람이 짓는 건물은 결코 성전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솔로몬의 성전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극단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저자가 솔로몬 성전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입장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허용을 통해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하셨던 이유는 훗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되심에 대한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자기 아들 중 솔로몬을 택해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성막에 대해서는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을 하나 하나 모세에게 다 일러 주셨지만, 성전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이 완성된 다음에는 그 안에 영광의 구름이 가득했지만, 성전이 완성된 다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전되신 예수님의 모형으로는 성막으로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그저 인간적인 욕심에서 세워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저 그 마음을 받으시고 성전 건축을 허용하셨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이 상당히 급진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전과 관련된 다양한 성경 구절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신학적인 진술을 담고 있는 성경 구절을 기준으로 삼아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이 성전이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세운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 성전 건축에 관해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다윗이 성신으로 말미암아 성전의 식양을 받았다(대상28:12)는 내용을 역대기의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네 몸에서 날 자식이 성전을 지을 것(삼하7:101-4)"이라는 말씀도 솔로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인데, 훗날 역대기의 필사자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이 구절을 솔로몬을 예언한 것으로 고쳐서 인용(대상22:6-10)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학개나 스가랴, 에스겔 선지자의 글에 대해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기는 했지만, 각각의 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독려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자신의 말씀'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한 성경 자체 내의 해석'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성경 해석 방식인데, 저자는 그러한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서 필사상의 변개까지 염두에 두고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그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성전에 대한 일관된 견해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 위치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저자의 설명 역시 일반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른 해석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예수님의 사역 기간으로 보고 있었고, 세 번의 일곱 재앙을 각각 양심의 시대, 율법의 시대, 마지막 시대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인의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의 순서를 바꾸어 일곱 나팔 재앙이 양심의 시대에 해당되는 재앙으로, 그리고 일곱 인의 재앙을 율법 시대에 해당되는 재앙으로 연결짓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러한 해석이 터무니없다고 느껴지지 않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쯤 살펴 보아야 할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이러한 해석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선까지 받아들여야 할 지 조금은 고민스럽습니다. 너무나 급진적인 해석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을 비성경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저자의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이 보수적인 교단에서 자란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성전'에 대해서, 그리고 '성지 순례'라는 용어나 '목사'라는 용어 등에 대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은 한 번 쯤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내용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