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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케인
로버트 E. 하워드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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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자에 대한 소개를 통해 청소년기에 보았던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의 원작자'가 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는 미국의 유명 배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연하여 유명세를 얻은 영화입니다. 전작인 '코난: 더 바바리안'보다 못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더랬습니다. 전작인 '코난: 더 바바리안' 역시 저자의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솔로몬 케인'이라는 저자의 작품이 소설과 영화로 나오게 되어 이렇게 먼저 소설로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솔로몬 케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 소설인 줄 알았는데, 단편 에피소드 모음 형식의 소설이더군요. 물론 단편이라기에는 조금 긴 내용도 있었지만, 읽어 나가면서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짧은 내용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조금 어둡기는 했지만, 상당히 짜임새 있고 탄탄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붉은 그림자, 해골의 달, 한 밤의 날개', 이 세 편의 이야기는 그래도 중편에 가까운 분량과 그 짜임새 있는 내용, 그리고 내용의 참신함 등으로 인해 충분히 영화로 만들 수 있을만한 내용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번에 나오는 영화도 이 세 가지 이야기 중에 하나를 다루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 편의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부두교의 주술, 고대의 제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하피라는 괴물,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저자는 이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를 눈 앞에 그려 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무적으로 나오는 그저 그런 소설들과는 달리 주인공의 탁월한 힘과 능력과 더불어 그 또한 한계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적절히 균형있게 다루어 줌으로써 사건의 전개를 한층 사실감 있게 묘사해 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반전의 방식 또한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의외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전혀 통속적이지 않은 환타지 소설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환타지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저자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 통속적이지 않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그저 그렇다거나 평범하거나 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설에 대한 소개의 글을 보면 주인공인 솔로몬 케인이 청교도 전사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 소설에 기독교적인 무엇인가가 녹아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솔로몬 케인이 청교도(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설정은 그저 주인공이 자신과 상관없는 불의한 일들에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 생명까지 걸고 싸우는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불의한 일을 척결하는 일을,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러한 무모한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솔로몬 케인의 모습 속에서 깊은 수양을 거친 종교인의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거부감을 지닌 분들도 무리없이 소화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읽는 즐거움을 주기에 각각의 스토리들이 너무 짧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 외에는 대체로 만족스러운 소설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영화는 소설보다 덜 어두웠으면 하는 마음이고, 소설에서 묘사된 내용들이 잘 표현되어졌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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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고 싶다
김종일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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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울어 보았습니다. 그것도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진 책을 읽다가 울다니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과 더불어 시작된 고모네 집에서의 힘겨운 생활, 그리고 가출. 70년대 경에 가출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터, 구두닦이 생활은 그나마 해 볼 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도 거친 형들 밑에서 쥐어박히며 살아가는 것은 종수에게도 힘든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터에 우연히 만나게 된 혜련이 누나는 종수에게 누나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종수를 위해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기회도 마련해 주고, 마치 친누나와 같이 종수를 위해 이런 저런 신경을 써 주던 혜련이 누나의 죽음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나게 되는데,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혜련이 누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친 구두닦이 형들의 마음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면모를 끌어내었던 것도, 또 구두닦이 형들 중의 왕초인 독사 형으로 하여금 그 거친 세계를 떠날 마음을 갖게 해 주었던 것도 바로 혜련이 누나였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종수가 아닌 혜련이 누나라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혜련이 누나가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습니다. 종수를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같이 몸파는 일을 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었던 누나들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던 혜련이 누나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자존감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던 그 모슥 속에서 과연 세상에 이런 삶도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안타까워 하던 혜련이 누나의 죽음을 보며 내 삶의 마지막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와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누나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종수에게 전해진 누나의 편지와 통장은 종수를 향한 누나의 진실된 사랑을 드러내 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종수와 같은 또래의 동생을 잃어버린 과거라도 있는 것인지, 어째서 친동생도 아닌 종수에게 그와 같이 헌신하였던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고 의지하며 지낼 수 있다면 힘겨운 이 세상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수의 나이를 열 여섯살로 설정해 놓았던 점은 이 소설의 내용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데에 약간의 방해가 되었습니다. 열 여섯살의 나이면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는 나이이고, 그 정도 나이에 그와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애가 어디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정도 나이라면 더 힘든 일을 시키지 겨우 찍새(구두닦이 무리에서 손님들의 신발을 모아 오는 일을 하던 사람) 일 정도 밖에 안 시켰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해 저 역시 그렇게 깊이 알 수 없었기에 아예 틀렸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목에 대해서도 살짝 아쉬움이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언제나 주도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은 혜련이 누나이기 때문입니다. 종수는 결코 스스로 '나는 날고 싶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혜련이 누나가 '너는 날아야 한다'라고 했기에, 종수도 '그렇다면 나도 날아 볼까'라고 생각하고 따랐을 뿐입니다.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소설을 청소년 소설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이런 저런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약간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스스로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종수가 맞지만, 그러나 혜련이 누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모성애와 같은 따뜻한 느낌이 이 소설을 참으로 의미있게 만들어 주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혜련이 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천사같은 여자다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누나의 죽음을 확인한 병실에서 종수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오열하기 시작했을 때,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참 따뜻하게 느껴졌던 소설이었습니다. 이런 소설이 그리웠는데 참 잘 만났다 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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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목숨 걸고 편식하다 - MBC 스페셜
황성수. 정성후. 김은희 지음 / 쿠폰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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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께서 고혈압을 앓으시다가 결국에는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6년 동안 투병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 아버지께서도 고혈압으로 약을 드시고 계시고, 교회 어르신들 중에도 고혈압으로 약을 드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드셔야 하는 고통을 알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고혈압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꼭 확인해 보고 또 그분들에게도 알려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고혈압도 다른 질병들처럼 가족력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 저나 집사람이나 다 위험군에 속해 있지 않은가 라는 염려도 있었기 때문에 미리 읽어 두고 예방할 수 있다면 예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읽어 가는 동안 황성수 박사님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 폭 빠져 들었습니다. 박사님의 주장은 '고혈압이라는 증상은 제 시간 안에 온 몸에 피를 순환시키기 위해 좁아진 혈관으로 피를 무리하게 밀어 붙이다 보니 생긴 증상이며, 고혈압 약을 먹어 혈압을 줄이면 결국 가야 할 곳에 피가 제대로 가지 못하게 되고, 점차 혈관이 막히게 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혈압 약은 치료약이 아니라 증상 완화제에 불과하며, 고혈압 약으로 인한 증상 완화에 따르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풍이라던가 치매와 같은 것도 결국 고혈압 약의 부작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박사님의 말씀대로 동맥경화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고혈압을 고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현미 채식을 통한 고혈압 치료의 놀라운 효능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 분의 지원자들이 박사님의 지도에 따라 현미 채식을 시작하여 한 달이 지난 후의 결과를 보았을 때, 너무나 놀라운 결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 분의 지원자 중에 유일한 남자분의 경우, 비록 고혈압 위험군으로 판정을 받은 정도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한 달만에 혈압을 정상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빼려고 해도 빼지 못했던 살을 한달만에 10킬로그램 이상 뺐다고 하는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두 여자분의 결과도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제가 남자다 보니 남자분의 결과에 더 눈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더군요. 특히 체중 조절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 결과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 말미에 박사님께서 체중감량을 시도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3퍼센트 밖에 안 되며, 이것은 암이 완치되는 퍼센티지보다 낮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서, 역시 현미 채식이라는 방법만큼 체중조절에 효과적인 방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당뇨 환자들의 혈당 조절에도 현미 채식이 효과적이라는 결과 역시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고도 근시로 망막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살다 보니, 당뇨증상이 심해지면 실명하게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민감하게 들어 두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당뇨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현미 채식이 바로 그에 대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중에서 고혈압이 환자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현미 채식을 할 때에라야 현미 채식을 지속하는 데 실패 확율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세 분의 지원자 중에 유일한 주부의 경우를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분이 정리해 놓은 경과 일지를 보면서 현미 채식 식단을 어떻게 짜야 할 지에 대한 팁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맨 뒤에 현미 채식을 하다 질릴 때에 만들어 볼 수 있는 별미의 레시피를 소개해 준 것도 참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고기 중심의 식사를 해 온 사람에게는 채식을 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반찬을 해서 먹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유경험자의 식단과 또 요리 전문가가 제시해 주는 레시피가 함께 실려 있으니 현미 채식을 막 시작하려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유용한 정보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예전에 집사람이 딸내미의 과체중과 고지혈증 문제 때문에 한동안 현미 식사를 하다가 결국에 실패하고 말았던 이유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미를 충분히 물에 물리지 않고 밥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사님의 말씀대로 8시간 동안 충분히 불려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잠깐 동안 불렸다가 전기압력밥솥에 있는 현미취사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게 오산이었었습니다. 뻣뻣해서 씹기 힘들어 점차 안 먹게 되다가 중단하게 되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미밥을 70번 이상 충분히 씹어서 먹고, 백미를 먹을 때처럼 밥과 반찬을 같이 씹지 말고 따로 따로 먹으라는 것 역시 중요한 조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고혈압에 대한 염려가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미 채식을 통해 체중도 좀 줄이고 고혈압도 미리 예방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집사람이 귀찮아 하는 것 같았는데, 틈 날 때마다 책의 내용을 간간히 소개해 주었더니 이제는 마음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현미 밥까지는 해 겠다고 하네요. 반찬만 제가 가려 먹으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올려 놓아서 마치 스포일러가 된 느낌인데, 다시 한 번 책을 훑어 보니 제가 표시해 놓은 중요한 정보들이 아직도 넘치게 많은 것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동물성 식단이 왜 불필요하고 해롭기까지 한지, 또 현미 채식이 간질에도 어떤 좋은 영향을 주는지와 같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분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BC에서 참 좋은 책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고 고혈압 약에서 해방되고, 혈당 조절도 하고, 더 건강한 삶을 사시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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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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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과장이려니 했다. 1억원이라는 고료를 지불해야 했던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이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본전이라도 건지려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이 책을 띄우려 하는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도 이 작품은 띠지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주적 상상력이나, 댄 브라운의 방대한 스케일을 넘보는 그런 종류의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은 전혀 우주적인 상상력이나 방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 조금도 밀리지 않을 정도 수준의 작품이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단지 그들의 작품과 분위기가 달랐을 뿐. 이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찾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정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소설을 손에서 놓아왔던 만큼 기대감을 가질 법도 하지만, 그동안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이런 류의 작품에서 느껴온 실망감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의 첫 장편이라니. 그런 몇가지 이유들로 인해 기대감을 반쯤은 접고서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탁월한 내용 전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문장의 전개에 아무런 걸리적 거림이 없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미련맞게도 마음 속으로 소리를 내어 읽어가야만 하기에, 문장의 전개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어색함도 마뜩잖아 했던 나인데도, 그런 거슬리는 부분을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내용의 치밀함은 더욱 완벽했다. 과연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더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뿐 아니라, 수 년 동안 이 작품 하나를 위해 준비하며 씨름해 온 결과물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품 속에서 현자가 이루어낸 학파라는 세계는 오늘날 지성의 산실이라 불리우는 대학이라는 세계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현자의 모습은 제자들의 발견을 자신의 발견인양 발표하는 대학교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고, 학파의 불문율을 깨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상징적인 죽음은 대학교수들의 비리를 폭로한 학생들이 더이상 그 세계에 발붙일 수 없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현자의 모습 속에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탐하여 온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또한 그의 자리를 넘보았던 제자 히파소스의 모습 속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을 죽여서까지 권력을 손에 쥐고자 했던 현자였지만, 그러나 그에게도 순수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나이들어 가면서 그와 같이 변질되어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럼에도 작가는 현자에 의해 살해당한 제자 디오도로스의 동생 아리스톤을 그 수렁과 같은 탐욕의 굴레 밖으로 밀어내 주었다. 그와 같은 존재가 있어야만 진실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독자가 생각했던 간결한 결말과는 완전히 다른, 허를 찌르는 듯한 의외의 결말은 언제나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참주 킬론이 과연 자기 아들의 아기를 가지고 자신을 이용해 보려는 코레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 내내 궁금했다. 모든 계획이 마무리 된 후 단순하게 살해해 버리는 데에서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죽음까지도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참주 킬론의 모습에서 작가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그려낸 참주는 작가의 설정에 너무나 충실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현자 못지 않게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어찌 그리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주인공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히파소스가 역사적 기록과는 달리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작가의 치밀한 반전에 의해 완벽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히파소스가 당연히 역사적 기록에서처럼 비참하게 죽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글을 읽어 갈수록 작가는 끊임없이 그를 살리려고 하는 듯이 보였고, 행복한 결말을 주려는 듯이 보였다. 정말 그렇게 믿고 싶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더니 예상외의 반전으로 그 기대를 배신해 버렸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인해 한편으로는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하지 않은 마무리에 감사했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허를 찌르는 반전의 결말로 인해 이 책은 자신이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의 전개상 꼭 필요했던 수학에 관한 내용은 읽는 내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대충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었을텐데,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그럴 수 없게 했고, 덕분에 단단히 고생을 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다가 수학에 관한 내용을 만날 때마다 멈추어 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일까. 하지만 오랜만에 머리 복잡하게 지냈던 청소년기의 수학 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이 던져 준 선물이라면 선물일지 모른다.

책을 덮으면서 궁금한 것 몇 가지가 숙제로 남았다. 작가는 왜 현자의 자녀가 셋이었다고 했을까. 책의 내용 중에는 단지 두 명의 자녀만이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는데. 혹시 내가 중간에 놓친 것은 아닐까. 또 왜 작가는 현자의 딸 다모가 아리스톤과 맺어지게 했을까. 다모는 아리스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궁지로 몰아넣었음도 알고 있었을텐데, 과연 무슨 이유로 그에게 접근해 그와 결혼하고 그의 아기를 가졌던 것일까. 그녀가 단지 어머니 테아노의 정염을 그대로 물려 받았기에 과거에 한눈에 반해버린 아리스톤에게 접근했다고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은 결코 이 소설의 구성이나 내용 전개가 제대로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니다. 그저 사적인 궁금증일 뿐. 

이 책은 내게 있어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오랜만에 읽은 치밀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특별한 교훈과 도전과 감동을 목적으로 쓰여진 신앙 도서를 위주로 독서해 오던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인간의 더러운 본성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기회를 주었고, 소설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탐욕스러운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 역시 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신처럼 군림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귀한 통찰의 기회를 던져준 작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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