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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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법대로 할 수 있습니까?


 "법대로 해!"라는 말은 '나는 당신과 합리적인 방식으로 타협할 생각이 없고, 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선언이다. 이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법대로 하지 못할 것을 잘 알기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최후통첩을 한다.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일반인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한마디가 "법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일반인들의 삶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원의 모습은 어떨까? 근엄한 차림과 표정의 판사가 높은 재판장석에 자리하고, 일반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법률용어가 오고간 후에 판사가 판결봉을 땅땅땅 두들기는 곳. 이것이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법원의 이미지이다. 또, 판사들은 세상물정을 모르거나 너무 잘 아는 사람들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거나 매우 정치적인 판결을 내놓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이러한 오해 역시 우리가 얼마나 법에 대해 무지한가를 보여준다.
 법 아래 살면서도 법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 사회에서, 법은 소수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법 아래에서 돌아가는 사회에서 법을 모르는 사람은 법을 아는 사람의 좋은 먹잇감이다. 차라리 이 소설에 등장하는 원고, 피고인들은 적어도 "법대로 해결해보려고는 하는", 개중에는 좀 더 나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법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재판정에 판결봉이 없다는 것과 판사가 혼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도 잘못알고 있는 사람이 법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수 있을까?
 <미스 함무라비>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오히려 나는 이 책이 시민을 위한 법률 교양서에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재판이나 법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판결이 어떤 기준으로 내려지고, 판결의 과정이 어떠하다는 것, 그리고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은 단순히 수많은 금기와 처벌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각 조문의 바탕에는 철학적인 고민이 깔려있고, 그 사회의 여러 조건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라는 바다의 수면 밑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 법이 현실세계로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인 판결에만 천착한다. 그렇기때문에 일반대중은 법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때때로 정치적인 사법부 논란을 판결의 근거라고 여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스스로가 모르는 법리적 사실이나 법의 정신 때문이 아니라 부패하고 고집센 법관들의 잘못 때문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덮어놓고 사법부를 혐오하는 방식이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정의가 과연 모두 옳은 것일까.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의는 명쾌해보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법에 이렇게 위험한 방식의 정의관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법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때문에 법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하지만 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룰 수 없기에, 법이라는 복잡한 장치를 다루기 위해서 적어도 사용설명서 정도는 읽어봐야 한다. 그 사용설명서는 헌법, 법과 정치 교과서가 될수도 있고, 이 책과 같은 교양서적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법관과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다. 일반국민들도 모두 입법, 법의 집행 등의 과정에 참여해야한다. 따라서 법을 위한 사용설명서는 일부 전문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지침서이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

 내가 <미스 함무라비>를 읽으면서 느꼈던 또 다른 점은 이 책이 소설로서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박차오름이라는 인물의 성격이나 설정이 과하다고 느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박차오름 판사의 캐릭터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또, 임바른 판사나 한세상 판사도 어딘가 정이가는 캐릭터들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부분의 그 반전(?)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웬만하면 책을 읽으면서 웃거나 하지 않는데, 마지막 반전을 알게된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전체적인 감상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후속작을 읽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래도 400쪽이 채 되지않는 분량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등장인물들과 깊이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아무쪼록 문유석 판사께서 후속편을 한 권이라도 좀 내주십사 할 뿐이다. 44부 판사들과 정보왕 판사를 이렇게 떠나보내기에는 마지막 반전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겠지만,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비긴스부터 라이즈까지 총 3부작이었다. 박차오름 비긴스가 44부 트릴로지의 첫번째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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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도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Postumus 2017-01-22 21:07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좀 이상하지 않을까 했는데, 굉장히 재밌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