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 어렴풋이
신유진 지음 / 시간의흐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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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신유진은 서문이다. 다른 책의 서문을 읽을 때도 나는 매번 신유진을 떠올린다. 이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작가의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 을 산 날이다. 빨리 읽고 싶어 꾸역꾸역 일을 끝낸 밤에 <열다섯 번의 밤>을 펼쳤다. 그때까지 나에게 책의 서문이란, 지금 꼭 읽어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어야 할까? 고민하게 하는 조금 귀찮은 것이었는데 그날 읽은 책의 서문은... 뭐라 설명할 수도 없다. 나는 서문만 여러 번 읽다 책을 덮었고 아직까지 펼치지 못했다. (여기저기 읽어보라고 하고, 노트에 옮겨 적어도 보았는데 책은 못 읽겠더라) 그때부터였다. 작가님을 좋아한 게. 

다정스럽다. 조금 서늘할 때마저 다정스럽다.('다정하다'가 아니라 '다정스럽다'라고 하고 싶다) 서문과 함께 나는 작가의 집을 천천히 둘러보고 이 창, 저 창에 드는 색색의 빛을 느껴본다. 그 빛은 독단적으로 들어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을 테고, 그 흔적은 작가의 눈과 마음과 손으로부터 글이 되었음을 느낀다. 허락 하에 나는 작가의 많은 기억을 들여다보았다. 서문의 글을 빌려 말하고 싶다. 창가에서 보는 모든 풍경이 그렇듯 적절한 거리를 두고 알맞게 그리웠습니다. 라고.

<창문 하나, 기억> 속 글들이 참 좋았다. 바로 얼마 전에 읽은 박연준 작가의 <여름과 루비>로 내가 아직 유년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그런 걸까. 다 좋았다. <엄마의 창문>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이 글 속에서 작가는 '나는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여러 번 쓰고 있다. 이 애매모호한 표현이 글에서만큼은 무책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정말... 좋았다.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나는 잘 알겠다'라고 표현하는 글이 있다면 나는 읽지 않겠다.

자두주는 어떤 맛일까? 자두나무, 체리나무, 노간주나무, 사과나무의 향기를 나도 맡고 싶다. 프랑스, 마르땅과 이안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작가의 정체성과도 같은 연극과 글쓰기, 뒤라스와 한트케까지, 그녀를 이루는 조각조각을 따라 함께 여행했다. 아, <창문처럼 나를 열면>의 표현대로 우리는 글을 읽음으로써 신유진이란 창을 열고 사랑한 것, 외로운 것, 슬픈 것, 기쁜 것, 얻은 것, 잃은 것들을 들여다본 것이겠다. 그렇겠다. 그렇지만... 창을 열어 보아도 자두주만큼은 먹어보지 않고는 어떤 맛인지 모르겠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자두주의 맛이 아니라 그냥 자두의 맛이라서 혀 양 옆에서 자꾸만 침이 솟아난다. (아쉬운 대로 자두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너무 비싸서 내려놓았다. 내가 아는 그 자두가 아닌가 봐, 금두인가 봐.) 서문만 읽고 덮어둔 책은 이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아끼지 않을 거다.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얼룩 없는 하얀 세상보다 누군가 통과한 흔적이 남은 얼룩진 세계가 좋습니다. 표백되지 않은, 무늬 가득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P13

좋다‘라는 말,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어울리는 온도인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우리가 여전히 좋아하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게, 무언가를 더 유연하게 꾸준히 좋아하고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 P56

지영이는 배시시 웃었고 나는 여기, 우리가 마주한 이 시간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그러나 현재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모호한 어디쯤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56

엄마는 웃었다. 아이 같기도 하고, 노인 같기도 했다. 나와 닮기도 했고, 나와 다르기도 했다. 엄마는 내게 가장 어려운 타인이다. 아주 타인일 수도 완전히 나일 수도 없어서 힘든 사람.
- P65

어떻게 늙고 싶어?

나는 그냥 얻고 잃은 것이 잘 흘러가면 좋겠어. 흐르는 걸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고.
- P88

빈 마음이 텅텅 소리를 낼 때면 걸었던 길들을 곱씹어본다. 그 기억을 풍경처럼 바라본다. 그러니 나를 열면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사랑한 것, 외로운 것, 슬픈 것, 기쁜 것, 얻은 것, 잃은 것 모두.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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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핑 - 그대, 패들링을 멈추지 말아요 아무튼 시리즈 51
안수향 지음 / 위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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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선 모든 게 분명하지 않아서 좋다. 버텼던 마음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끝은 다시 시작이 될 수도 있으므로. 나는 오늘도 바다에서 나이를 먹고도 울 수 있는 마음과 처음과 끝 사이를 오가는 길을 배운다. p.11 <아무튼, 서핑>

<아무튼, 뜨개> 이후로 오랜만에 읽는 시리즈다. 한여름에 딱 맞춰 나온 <아무튼, 서핑>. 물빛 서프보드를 들고 햇볕에 탄 건지 상기된 건지 모를 붉은 뺨을 한 뾰쪽 뾰족 젖은 머리의 남자가 인상적인 표지는 사진을 찍고 글도 쓰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언젠가부터 바닷가에 가면 서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서퍼들은 외국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백사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서프보드만 봐도 이국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와 가까웠던 저자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서핑에 대한 예찬을 기록한 글들을 읽으니 그동안 궁금했던 서퍼들의 마음이 생생히 다가온다. 바다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데 얼마 서보지도 못하고 물에 빠지길 반복하는 것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가 내심 궁금했다. 나는 수영도 못하고 어릴 때 여름휴가로 해수욕장에서 튜브 타고 노는 게 다였던 사람이니까 궁금할 수밖에.

여름에 하는 서핑, 겨울에 하는 서핑, 바다마다 날씨마다 다른 파도들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서퍼들만의 예의나 규칙 같은 것들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뭐든 좋아하게 되고 잘 하고 싶다면 어렵더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웻수트를 벗으며 씨름하는 작가나, 겨울 서핑을 즐기는 사람으로 뉴스에 보도된 일화들은 피식거리게 만든다. 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만이 알려줄 수 있는 장비를 구비할 때에 대한 팁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게 쓰여있어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바다 사용료'에 대한 언급이다. 서퍼들 사이에서 쓰는 말인데 바다를 대가 없이 자유롭게 이용한 만큼 서핑을 마친 뒤 해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사용료를 대신한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우리가 공짜로 누리는 바다라는 자연 속에서 파도를 이용해 즐기는 스포츠인만큼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과 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인데, (당연하겠지만) 환경과 관련한 책이 아니라도 이젠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 환경문제로 연결된다는 거다. 고사해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들, 그리고 산호의 백화현상을 찍은 항공 샷을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기억한다. 여름이면 해변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것도, 환경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나무나 해변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에 나라는 인간이 전혀 무관하지 않으니까. 인간에 대해선 유난히 회의적인 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브랜드를 보면 나 같은 인간도 가슴속에 간질간질 거리는 조그마한 희망이 느껴진다. 자연에 이로운 쪽으로 살아가는 일이 우리 시대의 교양이라고 믿는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적극 동의한다.

아무튼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는 대상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루는 내용은 저마다 다 다를지라도 <아무튼, 00> 에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을 넣어보면 바로 내 마음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서핑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무언가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그 마음과 여러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잠시 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서핑은 선을 긋지 않는 스포츠다. 프로 서퍼가 아닌 이상 경쟁자도, 시간제한도 없다. 그저 파도를 만나거든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서핑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불안 역시 이 ‘선 없음‘에 있다.
- P9

무엇보다 비를 맞으며 서핑을 하면 연약하고 보드랍던 시절의 마음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물과 모래는 움켜쥘 수 없기 때문일까, 쉼 없이 흔들리기 때문일까, 서핑을 할 땐 모든 것이 물렁물렁해진다. 세계가 흐트러진다.
- P50

평범한 일상을 살며 파도를 기다릴 수 있을 때, 기다리던 파도가 왔을 때 곧장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마음을 품고 살 때, 우리는 여전히 서핑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조급함을 버리는 순간 파도는 온다.
- P65

그저 재미 삼아 하는 운동이라기에는 내 삶을 너무나 크게 뒤흔들고,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하기에는 아드레날린으로 나를 너무나 쉽게 휘두르는, 서핑은 너무나 까탈스러운 상대다. 그러나 무엇이어도 좋고 무엇이 아니어도 좋다. 언제라도 좋으니 그저, 나는 바다에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 P69

나는 여러 운동을 경험한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 덕에 마음이 열린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겐 다양한 게임의 룰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다른 조각들로 채워지고 세워질 우리의 세계는 꽤 근사할 것이다.
- P98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취해온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에 이로운 쪽으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 시대의 교양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자연을 아낄 때, 자연도 여전히 우리를 아끼고 품어줄 것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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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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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드디어 읽어보게 된 파친코. 사실 이전에 출간되었을 때 나는 전자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절판이 되었고 다행히 인플루엔셜에서 발 빠르게 개정판을 내어주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2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급한 건 출판사일 테니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기로 한다.


이전부터 읽어본 사람들로부터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읽기 시작하니 엄청난 속도감에 푹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책이란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가 어찌 돌아가든, 정치가 어떻게 되든 그보다 지켜야 할 생과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좋은 이유다. 부산을 터전으로 하고 있는 선자네 이야기는 일제 식민지 하의 조선인의 삶을, 북으로부터 내려온 백씨 집안이나 경희, 창호 같은 인물들로 남북의 이념 문제까지, 역사적 배경이 이야기 속에서 굉장히 유려하게 흐른다는 점이 좋았다.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벗어나 오사카에서 억척같이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냈던 이야기에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선자와 경희의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단연 돋보였다. 가족들의 생계 앞에서 그녀들은 누구보다도 현명했다. 생의 위기 앞에서 백요셉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답답하기는 했지만 가족을 책임지려는 그 마음만은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드라마를 볼 때 나는 일부러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은 젊은 선자를 맡은 배우, 나이 든 선자를 맡은 배우, 그리고 한수를 맡은 배우 딱 이것만 아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 한수와 선자의 러브스토리에 흠뻑 빠졌다가 급 실망했다. 한수라는 남자가 러브스토리의 정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수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바닥에 대한 치떨림, 정치나 이념에 대한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거진 책 <끼니 너머의 세계>에서 파친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음식을 주제로 쓴 글이었는데 그 글을 읽고 파친코가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보리차, 흰쌀밥, 보리밥, 떡, 뽀얗게 우려낸 설렁탕, 김치와 장아찌 같은 것들이 파친코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한다. 선자가 백이삭과 결혼을 하여 어떻게든 쌀밥 한 그릇 먹이고자 했던 모친 양진이 조 씨에게 찾아간 장면은 눈시울이 시큰했다. 양진의 간절한 마음도 그랬지만 시대가 그렇다 보니 떡을 한다는 소리가 반가워 쌀을 내어주러 가는 조 씨도 마음 아리긴 매한가지였다. 또 한 번 마음이 쓰렸던 장면은 오사카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선자가 리어카를 끌고 장에 나가 처음으로 '김치 사이소'를 부르짖을 때였다. 부끄러움과 서러움과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선자의 어린 시절에 자갈치 시장에 다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어릴 때 토성동에 살았기 때문에 매일 할머니 손잡고 자갈치 시장에 따라다녔다. 때문에 어린 선자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어간다 싶더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였다. 2권에서는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듯해서 너무 궁금하다. 창호의 이야기도, 또 한수의 이야기도 더 궁금하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참고 견뎠다. - P18

중국이 항복을 하든 대갚음하든, 채소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했고 식구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려면 짚신을 삼아야 했고 몇 마리 안 되는 닭을 훔치려고 하는 도둑들을 쫓아야 했다. - P30

어딜 가든 사람들은 썩었어. 형편없는 사람들이지. 아주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을 상상 이상으로 성공시켜높으면 돼.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 P74

오사카에서 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다 나아지기 마련이었다. 가진 것이 돌멩이와 쓰디쓴 고난뿐이라도 얼마든지 맛있는 국을 끓여 낼 수 있을 것이다. - P171

넌 내 밑에서 일하면서 잘 먹고 잘 벌었어. 그래서 이런저런 이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지. 당연한 일이야. 애국심은 그저 이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잊게 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그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을 이용하지. 넌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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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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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장의 지도와 77장의 도판과 함께 떠나는 사라져가는 장소들로의 여행

동서양의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곳곳의 사라지거나 사라져가는 장소들로 함께 떠나보는 책이다. 자연의 놀라운 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던 장소를 드러내기도 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완전히 사라지게도 한다. 그런 식으로 발견된 장소들은 고대 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훼손되기도 한다. 쓰나미로 인해 자취를 드러낸 곳도 있는가 하면 홍수 등의 자연재해나 해수면의 상승으로 수몰되기도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어떤 곳은 너무 정보가 없기도 해서 기대했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내가 모르는 곳이라도 흠뻑 빠질 수 있었을 텐데. 1부에서는 시우다드 페르디다의 토착 원주민 부족인 코기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환경과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려고 애쓰는 코기족은 나머지 인류를 근심스럽게 바라본다. "세상을 돌보는 법을 모르는 어린아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은 지금의 상황에서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로어노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사실 정말 들어보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 실존하는 곳이 아닌 신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1부 이후의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사라지고 있는 장소들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의 '기후 위기'다. 개발은 인간의 삶을 이롭게 만들었지만 이제 그 개발들로 인해서 인간의 삶에 위기가 왔다. 인간 중심적인 무분별한 개발과 그로 인한 오염, 전쟁으로 인한 파괴, 또 기후 위기는 우리가 아는 많은 장소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사해와 베네치아라든가, 만리장성, 야무나강, 콩고분지의 열대우림은 정말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특히 콩고의 열대우림은 탄소 저장고로서 기후를 조절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고 있지만 팜유 생산 등 삼림 파괴의 가속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환경 잡지를 통해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언급되어서 이해하는 데 수월했다. 사실 하니포터로서 신간을 고를 때 그저 신비로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며 이 책을 골랐다. 물론 그런 느낌도 있었지만 결국 또 환경과 기후 위기로 연결되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직접적으로 와닿는 느낌이다. 당장 올여름 날씨만 해도 나는 매일매일 한숨을 쉬고 있다. 햇빛 알러지와 씨름하면서.


* 하니포터 3기 지원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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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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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향인인 작가가 일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상황에서 조금은 더 보장된 개인적인 일상들에 대한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지난 2년여의 시간을 생각해 보게 됐다. 나도 내향형 인간이다. mbti를 어떻게 해도 항상 infp 가 나오는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완전히 외향형 인간이었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 점점 내향형 인간이 된 경우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쓸 수 있는 외향성 수치라는 게 있다면 난 아마 분명 어릴 때 다 써버린 거다. 지금도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어른들과도 서슴없이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나를 외향형 인간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비해서 내향형이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외향적인 활동을 한 이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원기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과 신나게 교류를 했다 치면, 낯가림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니 다른 사람들은 꼭 다음을 약속하려고 한다. 난 그다음을 미리 약속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 지금은 나도 즐거운데 나중엔 집에서 나오기 싫을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한 3일은 집순이 확정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작가의 글들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다만 정도의 차이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말이다. 반대 성향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나와 다르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이해해 보려고 상상해 보는 것. 참 재밌지 않나. 코로나로 인해 어느 정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의 집단행동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게 계속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어떤 '상황' 과 별개로 집단적인 행동이든 개인적인 행동이든 그냥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밥 먹는 것과, 여럿이 밥을 먹는 것. 그게 대체 뭐가 중요한가. 같이 먹다가도 혼자 먹고 싶은 날이 있을 수 있고 그런거지. 그걸 그냥 존중하고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이면 참 좋겠다. 뭐 대단한 일을 얘기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냥 밥 먹는 거니까.


* 하니포터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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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뭐가 됐든, 사라지는 사람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해독제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일과의 한복판에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여백을 만든 사람들이다.
- P19

핫플레이스나 배달 어플은 확실히 욕망을 팽창시킨다. 매우 즉각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그러나 사실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낳는다. 그러나 단골집은 그렇지 않다. 지근거리에 있고 별스럽지 않은 메뉴를 팔며 언제 찾아가도 새로울 것이 없는 단골집은 욕망을 부추기기보다는 일상을 다스리고 하루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동네 카페, 동네 술집, 동네 밥집과 빵집이 소중한 이유다.
- P82

나는 여전히 이메일을 아끼고 또 아낀다. 다소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이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 P108

그가 좋아하는 것과 견디지 못하는 것, 자잘한 일상의 규칙들과 한편에 마련해둔 자유, 소중하게 돌보고 있는 것들과 어쩔 수 없어 방치하고 있는 것들, 그 사이사이에 적절히 자리 잡고 있는 좀 더 잘 살기 위한 노력과 체념의 흔적들. 집주인은 이 모든 것을 나에게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P129

도무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밖에 없고, 내가 구축한 질서 안에서 안심하고 늘어져 있는 것처럼 실체가 분명한 행복도 없기 때문이다.
- P130

농담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재치 있는 말로 돋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 멈춰야 할 때 꼭 한 발 더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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