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서핑 - 그대, 패들링을 멈추지 말아요 아무튼 시리즈 51
안수향 지음 / 위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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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선 모든 게 분명하지 않아서 좋다. 버텼던 마음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끝은 다시 시작이 될 수도 있으므로. 나는 오늘도 바다에서 나이를 먹고도 울 수 있는 마음과 처음과 끝 사이를 오가는 길을 배운다. p.11 <아무튼, 서핑>

<아무튼, 뜨개> 이후로 오랜만에 읽는 시리즈다. 한여름에 딱 맞춰 나온 <아무튼, 서핑>. 물빛 서프보드를 들고 햇볕에 탄 건지 상기된 건지 모를 붉은 뺨을 한 뾰쪽 뾰족 젖은 머리의 남자가 인상적인 표지는 사진을 찍고 글도 쓰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언젠가부터 바닷가에 가면 서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서퍼들은 외국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백사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서프보드만 봐도 이국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와 가까웠던 저자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서핑에 대한 예찬을 기록한 글들을 읽으니 그동안 궁금했던 서퍼들의 마음이 생생히 다가온다. 바다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데 얼마 서보지도 못하고 물에 빠지길 반복하는 것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가 내심 궁금했다. 나는 수영도 못하고 어릴 때 여름휴가로 해수욕장에서 튜브 타고 노는 게 다였던 사람이니까 궁금할 수밖에.

여름에 하는 서핑, 겨울에 하는 서핑, 바다마다 날씨마다 다른 파도들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서퍼들만의 예의나 규칙 같은 것들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뭐든 좋아하게 되고 잘 하고 싶다면 어렵더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웻수트를 벗으며 씨름하는 작가나, 겨울 서핑을 즐기는 사람으로 뉴스에 보도된 일화들은 피식거리게 만든다. 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만이 알려줄 수 있는 장비를 구비할 때에 대한 팁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게 쓰여있어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바다 사용료'에 대한 언급이다. 서퍼들 사이에서 쓰는 말인데 바다를 대가 없이 자유롭게 이용한 만큼 서핑을 마친 뒤 해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사용료를 대신한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우리가 공짜로 누리는 바다라는 자연 속에서 파도를 이용해 즐기는 스포츠인만큼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과 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인데, (당연하겠지만) 환경과 관련한 책이 아니라도 이젠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 환경문제로 연결된다는 거다. 고사해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들, 그리고 산호의 백화현상을 찍은 항공 샷을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기억한다. 여름이면 해변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것도, 환경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나무나 해변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에 나라는 인간이 전혀 무관하지 않으니까. 인간에 대해선 유난히 회의적인 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브랜드를 보면 나 같은 인간도 가슴속에 간질간질 거리는 조그마한 희망이 느껴진다. 자연에 이로운 쪽으로 살아가는 일이 우리 시대의 교양이라고 믿는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적극 동의한다.

아무튼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는 대상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루는 내용은 저마다 다 다를지라도 <아무튼, 00> 에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을 넣어보면 바로 내 마음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서핑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무언가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그 마음과 여러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잠시 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서핑은 선을 긋지 않는 스포츠다. 프로 서퍼가 아닌 이상 경쟁자도, 시간제한도 없다. 그저 파도를 만나거든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서핑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불안 역시 이 ‘선 없음‘에 있다.
- P9

무엇보다 비를 맞으며 서핑을 하면 연약하고 보드랍던 시절의 마음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물과 모래는 움켜쥘 수 없기 때문일까, 쉼 없이 흔들리기 때문일까, 서핑을 할 땐 모든 것이 물렁물렁해진다. 세계가 흐트러진다.
- P50

평범한 일상을 살며 파도를 기다릴 수 있을 때, 기다리던 파도가 왔을 때 곧장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마음을 품고 살 때, 우리는 여전히 서핑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조급함을 버리는 순간 파도는 온다.
- P65

그저 재미 삼아 하는 운동이라기에는 내 삶을 너무나 크게 뒤흔들고,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하기에는 아드레날린으로 나를 너무나 쉽게 휘두르는, 서핑은 너무나 까탈스러운 상대다. 그러나 무엇이어도 좋고 무엇이 아니어도 좋다. 언제라도 좋으니 그저, 나는 바다에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 P69

나는 여러 운동을 경험한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 덕에 마음이 열린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겐 다양한 게임의 룰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다른 조각들로 채워지고 세워질 우리의 세계는 꽤 근사할 것이다.
- P98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취해온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에 이로운 쪽으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 시대의 교양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자연을 아낄 때, 자연도 여전히 우리를 아끼고 품어줄 것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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