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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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드디어 읽어보게 된 파친코. 사실 이전에 출간되었을 때 나는 전자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절판이 되었고 다행히 인플루엔셜에서 발 빠르게 개정판을 내어주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2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급한 건 출판사일 테니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기로 한다.


이전부터 읽어본 사람들로부터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읽기 시작하니 엄청난 속도감에 푹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책이란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가 어찌 돌아가든, 정치가 어떻게 되든 그보다 지켜야 할 생과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좋은 이유다. 부산을 터전으로 하고 있는 선자네 이야기는 일제 식민지 하의 조선인의 삶을, 북으로부터 내려온 백씨 집안이나 경희, 창호 같은 인물들로 남북의 이념 문제까지, 역사적 배경이 이야기 속에서 굉장히 유려하게 흐른다는 점이 좋았다.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벗어나 오사카에서 억척같이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냈던 이야기에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선자와 경희의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단연 돋보였다. 가족들의 생계 앞에서 그녀들은 누구보다도 현명했다. 생의 위기 앞에서 백요셉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답답하기는 했지만 가족을 책임지려는 그 마음만은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드라마를 볼 때 나는 일부러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은 젊은 선자를 맡은 배우, 나이 든 선자를 맡은 배우, 그리고 한수를 맡은 배우 딱 이것만 아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 한수와 선자의 러브스토리에 흠뻑 빠졌다가 급 실망했다. 한수라는 남자가 러브스토리의 정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수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바닥에 대한 치떨림, 정치나 이념에 대한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거진 책 <끼니 너머의 세계>에서 파친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음식을 주제로 쓴 글이었는데 그 글을 읽고 파친코가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보리차, 흰쌀밥, 보리밥, 떡, 뽀얗게 우려낸 설렁탕, 김치와 장아찌 같은 것들이 파친코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한다. 선자가 백이삭과 결혼을 하여 어떻게든 쌀밥 한 그릇 먹이고자 했던 모친 양진이 조 씨에게 찾아간 장면은 눈시울이 시큰했다. 양진의 간절한 마음도 그랬지만 시대가 그렇다 보니 떡을 한다는 소리가 반가워 쌀을 내어주러 가는 조 씨도 마음 아리긴 매한가지였다. 또 한 번 마음이 쓰렸던 장면은 오사카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선자가 리어카를 끌고 장에 나가 처음으로 '김치 사이소'를 부르짖을 때였다. 부끄러움과 서러움과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선자의 어린 시절에 자갈치 시장에 다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어릴 때 토성동에 살았기 때문에 매일 할머니 손잡고 자갈치 시장에 따라다녔다. 때문에 어린 선자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어간다 싶더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였다. 2권에서는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듯해서 너무 궁금하다. 창호의 이야기도, 또 한수의 이야기도 더 궁금하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참고 견뎠다. - P18

중국이 항복을 하든 대갚음하든, 채소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했고 식구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려면 짚신을 삼아야 했고 몇 마리 안 되는 닭을 훔치려고 하는 도둑들을 쫓아야 했다. - P30

어딜 가든 사람들은 썩었어. 형편없는 사람들이지. 아주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을 상상 이상으로 성공시켜높으면 돼.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 P74

오사카에서 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다 나아지기 마련이었다. 가진 것이 돌멩이와 쓰디쓴 고난뿐이라도 얼마든지 맛있는 국을 끓여 낼 수 있을 것이다. - P171

넌 내 밑에서 일하면서 잘 먹고 잘 벌었어. 그래서 이런저런 이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지. 당연한 일이야. 애국심은 그저 이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잊게 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그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을 이용하지. 넌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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