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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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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_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 등으로 알려진 오가와 이토 작가의 신작이다. 잔잔하고 사람 냄새나는 무자극 소설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제목과 같은 예쁜 정원의 표지처럼 말이다. 내 생각과 달리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 궁금해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토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로 엄마와 단둘이서만 살아간다. 엄마가 정원에 심어 놓은 향기나무들로 계절의 변화를 알고 '수요일의 아빠'가 오는 것으로 일주일이 흐름을 알고 새들의 울음소리로 아침저녁이 오는 때와 날씨의 변화를 아는 토와다. 읽는 나도 후각과 청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오감으로 읽는 책.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금목서 나무를 꼭 한 그루 심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토와의 정원에는 금목서가 있다. 읽는 내내 금목서 향기가 나는 듯했다. 금목서 향이 나는 가을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까?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토와가 고립되고 생존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하는 그 긴 과정을 너무 단숨에 읽어버렸다. 충격적이고 끔찍하다가 마구마구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주로 사람이나 세상에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때가 많은 사람이다. 나도 조금은 희망을 품고 싶을 때, 읽고 또 읽고 싶을 책이다.



그 원피스가 내 몸에 맞지 않게 될 무렵부터 엄마는 이따금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장 난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 P67

시간이란, 강의 흐름과 닮은 무언가가 아닌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 혼돈한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위에 등을 맡기고 아무런 저항 없이, 온몸에 힘을 뺀 채 그저 흔들거리는 것이었다. - P71

엄마를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도 금방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원망하는지 사랑하는지, 엄마를 둘러싼 물음에는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 P151

언제부터인가 내게 사람의 존재란 꽃다발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냄새가 있지만 모두 다르다. 그것은 여러 꽃들이 모여 하나로 꾸려진 꽃다발 같은 것으로, 강렬하고 화려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도 있고 살짝 시든 듯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은 복잡한 냄새를 뿜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냄새일지라도 그곳엔 수많은 냄새가 뒤섞여 있어, 그 냄새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오직 그 사람만의 꽃다발이 된다. - P202

많은 사람들이 앞이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앞이 보였다면 궂은일이나 무서운 일과 조우할 확률은 줄어들었을 터다. 하지만 앞이 보인다고 해서 꼭 궂은일이나 무서운 일을 겪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앞이 보이기에 궂은일이나 무서운 일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P207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또다시 여기로 되돌아왔다. 내 인생의 끄트머리과 끄트머리가 묶여 둥근 모양의 화환이 된다. 찌그러졌지만 아름다운 그 동그라미 한가운데 나, 그리고 엄마의 삶이 있다. 엄마를 끌어안고 싶다. 내 두 손으로 다정히 끌어안아 주고 싶다.

- P280

나는 이 시를 읽어주던 엄마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한 것처럼 엄마도 나를 사랑해 주었다. 도중에 그 사랑이 길을 잘못 들었을 뿐 처음에는 엄마도 나를 순수하게 사랑했었다.

- P281

앞을 못 보는 나일지라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잔뜩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내 작은 손바닥으로 사랑해 주고 싶다.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니까.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밤하늘에는 나만의 별자리가 쉼 없이 생겨난다.

- P282

금목서 향기가 났다. 누군가에게 몸을 기대어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무방비한 향기다. (...) 나는 한낮의 별을 찾는 듯한 기분으로 금목서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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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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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_ 여성은 왜 원하는가 - 캐럴라인 냅(정지인 옮김)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욕구'다. 욕구라고 하는 것은 내 통제력이 완벽히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에 알고 싶은 거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로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은데 나 역시 인상적이었던 작가라 북하우스에서 보내주신 가제본을 감사히 받아보게 되었다. 작가는 식욕/욕구(appetite)를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허기와 갈망의 근원에 있는 개인적, 사회적 요구들에 의한 치열한 자기 제한들을 말이다. 나는 절제하기 힘든 식욕, 그 허한 느낌, 그러니까 순수한 배고픔의 결과가 아닌 '거짓 배고픔' 그 존재에 대해서 아주 잘 느끼고 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한탄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이 문제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 책은 식욕이라는 것이 그저 식욕 그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극단적이지 않다 해도, 만족을 모르는 헛헛함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식욕의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문제들, 상처들을 말이다. 캐럴라인 냅은 아주 꾸준하게 책 한 권을 통째로 이용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도 못 하게 촘촘한 사유들 때문에 나 역시 몇 번씩 곱씹어 읽어야 했다.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내 안의 욕구들이 적절한 선을 찾아 자기 자신을 책망하거나 징벌하지 않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평생 함께 가야 할 내 안의 욕구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계기가 많아질수록 조금은 더 균형을 잘 맞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는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일인데도 겉보기에 너무 평범하고 무해해 보여서 좀처럼 그런 일로 인지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 P19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따라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에서 반드시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 P33

섹스에 대한 욕구,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욕구, 육체적 쾌락에 대한 욕구,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어리벙벙하게 만들 수 있고 그 때문에 여자들은 일상의 가장 평범한 결정을 앞에 두고도 헷갈려한다. 당신이 한 그릇 더 먹는 건 배가 고파서인가, 아니면 슬퍼서인가? 운동을 평소보다 30분 더 하는 건 건강과 안녕을 위한 필요성을 의식해서인가, 아니면 또 한바탕 자기를 벌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멋진 재킷에 600달러를 쓰는 것은 자신의 수고에 충분히 자격 있는 호사를 허락하는 것인가, 아니면 통제력 상실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인가? 만족과 과잉을, 자제와 탐닉을, 쾌락과 자기 파괴를 구분하는 선은 어디일까? - P37

그게 여자들의 가장 주된 목표일까? 욕구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 P41

칼로리와 지방에 관한 이 지루한 수다와 징징거림, 표피에 대한 이 얄팍한 집착은 대부분 여자들의 허영이라는 말로 일축되고는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일들이 통렬하게 느껴지고, 은근하지만 고질적인 고통으로 여겨지며 또 꽤 많은 속내를 드러내주는 것으로 보인다. - P61

욕구들은 가능성과 제약, 힘과 무력함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겨지는 대단히 모호한 맥락 속에,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P81

선택의 급증은 기대와 불안을 계속 끌어올리고 정신에 과부하를 건다. 소비자는 너무 많은 선택에 직면할 때 압도당하는 느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느낌, 우유부단함으로 마비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그보다 덜 일반적이로 더 사적인 영역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 어느 곳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원하고 무엇에 이끌려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 ㅡ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것 또는 제대로 모르는 것 ㅡ 에 대한 부담이다. - P95

선택할 자유는 바꿔 말하면 실수할 자유, 더듬거리다 실패할 자유, 자신의 결점과 한계와 두려움과 비밀과 정면으로 대면할 자유, 자아의 파괴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끔찍한 불확실성을 견디며 살아갈 자유다. - P95

영혼보다는 몸에 관해 걱정하는 것이 더 쉽고, 문화가 여자들에게 제시하는 좁은 정체성의 틈새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처음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쉬우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욕망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것이 모든 열정의 표현과 모든 욕구의 만족까지 고려하는 자신만의 제단을 건설하는 것보다 쉽다. - P108

소비주의는 정서적 공허감을 먹고 번성한다. 허하거나 자기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거나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상태를 외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힘은 매우 유혹적이며, 나는 그 미끼를 물 완벽한 낚싯감이었다. 나는 젊고 확신이 없었으며, 욕망은 내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으니까. - P289

"뚱뚱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게 일시적인 상태인 척해요."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사라지듯 뚱뚱함이 사라지고 진짜가 나타날 거라는 듯이. 그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 사고방식의 일부예요. 모두가 자기 안에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는 날씬한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 P226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 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 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 P335

육체적 욕구들이란 항상 감정적 맥락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시간이 욕망을 죽이기보다는 부추기는 역할을 더 많이 할 거라고 믿고 싶다. 나를 더욱 안달하게 하는 문제는 우선 ‘제대로 해내는 것‘의 문제다. 이런 걸 보면 나는 허기와 만족 사이에 성취할 수 있는 어느 수준의 균형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그 분투가 마침내 끝나고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어떤 평정의 장소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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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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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_ 에밀리 기핀 (문세원 옮김)


표지를 보면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진다. 언뜻 추.미.스 장르처럼 보이기도 해서 재미를 기대하게 된다. 한 권의 책에 담고 싶은 많은 말들이 느껴진다. 계층 간의 차별의식, 기득권의 보수적 성향 문제, 데이트 폭력(강간), 인종차별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이야기 속에 버무린 느낌이다. 중산층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결혼으로 상류층의 삶을 살게 된 니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느끼지만 별 문제의식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인물인데 아들 핀치와 라일라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계기로 정신이 번쩍 든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아들, 역시나 중요한 건 제쳐두고 지위와 돈을 이용하려는 남편,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어린 시절 니나에게 일어났던 사건의 기억과 함께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냥 그렇게 순응하면서 살던 니나가 문제를 의식하고 제대로 살기 위해 행동하는 이야기다. 내가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라면 좀 더 복잡한 심경으로 읽었을 것 같다. 어떤 상태에선 아주 명확해 보이던 일들도 어떤 상황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감정 문제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는 편이지만 분명 재미가 있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늘 이슈가 되는 사회 문제들을 한 권에 모아 둔 책이라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저자를 검색해봤는데 변호사의 이력이 있었다. 그런 이력이 다양한 문제를 스토리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소개에 '칙릿'소설 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생소해서 검색해봤다. 칙릿이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영어 속어 ‘chick’과 문학을 의미하는 영어 ‘literature’의 줄임말인 ‘lit’을 합쳐 만든 신조어이고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시작, 미국을 거쳐 2000년대 국내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20대 싱글 직장(주로 광고·잡지·패션 등의 업종) 여성의 성공과 사랑을 다루는 소설이며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칙릿의 시작이라고 본다고 한다. (출처 : 나무위키)

그렇구나, 난 이제 알았다.


*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입니다.

(집을 나간지 5년이 지나 딸의 생일날 갑자기 돌아온 엄마) 타이밍이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나는 전국의 무책임한 부모들에게 갑자기 찾아오려면 아이의 생일 전이나 후에 오라는 권고안을 공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 생일과 같이 특정한 기념일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자기도취적이며 파괴적인 행위다. 특히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 P69

아빠로서 딸에게 이보다는 더 나은 것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 P81

핀치 같은 놈들은 언제나 빠져나갈 방도를 찾는다. 그렇게 평생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지 않고 사는 인간들이 있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란 말이다. - P113

"브라질 사람도 어떤 인종일 수도 있는거요. 커크."나는 바보를 대하듯 천천히 말했다. 나는 실제로 바보와 대화 중이었다. "어느 인종이든 미국인인 것 처럼요." - P152

결혼 생활에서도 관계를 중요시 두었던 우리의 우선순위가 정확히 언제부터 흐트러진 건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누적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 것들이 잠재적으로라도 핀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P184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더는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 P198

언제까지나 아들 곁을 지켜주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아들이 죄를 자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 용서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 P221

그렇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가장 가까운 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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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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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_ 사만타 슈웨블린(조혜진 옮김)


읽고 나서 생각이 너무 복잡했다. 생각하게 되는 건 많지만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고 정리할 수 없어서 읽고 나서 바로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생각은 더 복잡해졌다.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 머릿속이 복잡했다. 먼저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아도 뜬구름만 잡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했다.


다비드와 아만다의 무슨 말인지 모를 대화로 시작하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어떻게 되는 건가? 생각하게 하면서 불친절하게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질질 끌고 간다. 뭔가 명확하게 결론을 말하지 않으면서 대략적으로 소개를 하기엔 너무 무모한 일이며 흥미를 유발하기도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얘기해보자면 사만다와 니나 모녀는 남편의 일 때문에 잠깐 어느 마을에 내려와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고 있다. 거기서 카를라를 알게 되고 그의 아들 다비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사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로 진행되니 궁금할 수밖에. 둘의 내용도 끝도 모를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사만다의 시선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만다는 다비드에게 자꾸만 니나는 어디 있는지 묻고 다비드는 자꾸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이들은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일까.


/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건가요?

- 응, 다비드.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


/ 독은 항상 있었죠.

통증은 사라졌다 다시 오죠. /


결국 다비드와 아만다가 대화 속에서 계속 찾으려는 그것은 유독 물질에 중독이 되는 그 순간이다. 더 이상 못 본 척하고 넘길 수 없는 그 지점. 즉 사람들이 방관해왔던 사실 자체를 일깨워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지 않은 척하는 게 더 쉬운 문제들 말이다.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환경문제이다. 환경을 생각지 않은 유독물질의 폐기 등으로 땅과 물이 오염되고 가축과 야생동물 모두 남아나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일로, 태어나는 대부분의 아이가 기형아일 정도로 심각하다. 멀쩡한 사람도 중독되어 살아갈 수 없는 이야기. 그것을 이체(移體)라는 영적인 소재와 함께 버무려 전체적으로 으스스 한 궁금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 디스토피아 미스터리 스릴러 중편 소설이랄까.


분량이 길지 않다. 150페이지 조금 넘는 중편인데 미스터리한 느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것도 대단한데, 아,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거구나, 이체는 그저 장치일 뿐이야, 하고 마무리를 내려 할 때쯤 다시 한번 이게 다가 아니야! 하고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느낌이 대단하다. 왜 2021년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될 예정인지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서 서평단 신청을 해보았는데 기대한 것보다 더, 굉장히 빨려 들었던 책이다.

그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P108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건가요?
응. 다비드. 난 아무것도 안할거야.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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