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게 옷을 재단하다.
量體裁衣(양체재의)
남조 시대 제나라의 장융(張融)이란 사람은 젊어서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조정에 중용되어 고위 관리가 되었다. 높은 관직에 올랐음에도 장융은 늘 검소한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특히 의복은 늘 헌 옷만 입고 다녔다. 제나라 태조는 이런 그를 두고 “이런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둘도 없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태조가 허름한 옷만 입고 다니는 장융을 위해 특별히 사람을 보내 옷 한 벌을 내렸다. 그러면서 “내가 전에 입던 옷을 한 벌 보낼 터인데 옷은 오래된 것이지만 입어보면 새 옷보다 나을 것이다. 내가 그대의 몸에 맞게 다시 고치게 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입으면 분명 편할 것이야”라는 조서를 함께 전했다. 황제가 내린 옷을 받아 든 장융은 감격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더욱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양체재의’는 원래 키와 몸무게 및 체격 등 몸의 크기에 맞게 옷을 재단한다는 뜻을 가진 성어였다. 그 뒤 이 성어는 구체적인 상황에 근거하여 실제적으로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
중국사의 오늘 :
196년 10월 7일(동한 헌제 건안 원년 8월 경신)
조조(曹操)가 헌제(獻帝)를 허도(許都, 하남성 허창 동쪽)으로 옮김으로써 마침내 이곳이 동한 왕조의 도읍이 되었다. 이에 앞서 원소(袁紹)의 책사 저수(沮授)가 헌제를 업성(鄴城)으로 옮겨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자’고 건의했지만 원소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조조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 조조의 승상부(허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