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의 곧은 붓(사관의 직필)
董狐直筆(동호직필)
『좌전』 선공(宣公) 2년(기원전 607년), 진(晉)나라의 권신 조천(趙穿)이 포악한 영공(靈公)을 죽였다. 이에 앞서 조천의 집안 형님뻘인 조순(趙盾)은 여러 차례 영공에게 바른말을 올렸으나 듣지 않자 나라를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국경을 벗어나기 전에 영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순은 길을 돌려 되돌아왔다. 기록을 담당하고 있던 태사 동호는 “조순이 그 국군을 시해했다”고 기록했다. 조순이 이를 부인하자 동호는 “그대는 정경(正卿)이란 최고 자리의 신하로서 국경을 넘어 망명하지도 않고 돌아와 국군을 죽인 자를 토벌하지도 않았으니 그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오”라고 응수했다. 공자는 동호에 대해 사실을 감추지 않고 직필한 훌륭한 사관이라고 평가했다. ‘동호직필’은 권력이나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쓰는 사관의 정신을 칭찬하는 표현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언론들, ‘동호직필’의 의미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좌전』
* 〈동호직필〉
중국사의 오늘 :
697년 6월 26일(당 무측천 신공 원년 6월 정묘)
무측천이 악명 높은 혹리이자 간신이었던 내준신(來俊臣)을 주살했다. 내준신이 죽자 그동안 그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서로 몰려들어 그 살을 물어뜯고 눈알을 파내고 배를 갈라 심장을 들어내는 등 시체를 마구 짓밟아 진창으로 만들었다. 역대 간신들 중 그 최후가 가장 처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