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사귀지 않는 우정과 친구는 겉으로만 우정이고 친구다.

   朋而不心, 面朋也. 友而不心, 面友也(붕이불심, 면붕야. 우이불심, 면우야).

 

우정과 친구에 대해 양웅이 던지는 경구이다. 친구라면 진정이란 씨앗을 뿌려야만 우정이란 과일을 맺을 수 있다. 진정이란 먼저 친구에 대해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내야만 가능한 경지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겠지만 우정만큼 고귀한 경지의 관계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관중은 포숙의 우정을 두고 날 낳아 주신 분은 부모지만, 날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해관계가 모든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우정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

 

『법언』학행

 

 

 

 

 

중국사의 오늘 :

187744

청나라 조정이 처음으로 해군 학생을 유럽으로 보내 선진 기술과 무기 및 군대 조직을 배우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 번 나아가고 세 번 물러나다.

   三爲三去(삼위삼거)

 

춘추 시대 초나라의 손숙오(孫叔敖)는 세 번이나 영윤(재상)이 되었음에도 이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았고, 또 세 번이나 그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근심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 그 까닭을 묻자 손숙오는 내가 세 번 나아가고 세 번 물러난 것이 나 때문인지 다른 연유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연유라면 기뻐하거나 우려할 일이 없고, 나 때문이라면 당연한 것이니 내가 기뻐하거나 걱정할 일이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손숙오는 작위나 자리 그리고 녹봉이 높아질수록 몸과 마음을 더욱 낮추고 더 많이 베풀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세 번 재상 자리에 오르고 물러남에 있어서 전혀 심경의 동요가 없었던 것이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내면은 형편없고 스펙만 화려한 자들이 고관대작을 넘보니 세상이 시끄럽고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장자』 「전자방(田子方), 열자』 「열부(說符)

 

 

 * 도판은 손숙오.

 

 

 

 

 

중국사의 오늘 :

197943

산동성 곡부(曲阜)의 춘추 시대 노()나라 고성과 공자의 주요 유적인 공묘(孔廟, 사당), 공부(孔府, 고택), 공림(孔林, 무덤)이 새롭게 정비되어 원상을 회복했다. 동시에 공묘에 2천여 개의 진귀한 비각이 진열되어 또 하나의 비림(碑林)이 형성되었다.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되었던 문화유적에 대한 보호와 정비가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섯 말의 쌀

   五斗米(오두미)

 

유토피아 무릉도원을 노래한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남긴 시인 도연명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간 사람이었다. 자는 원량(元亮)이고 송나라가 들어선 다음 이름을 잠()으로 고쳤다. 집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를 오류선생이라 부르기도 했다. 시상(柴桑, 지금의 강서성 구강) 사람이다. ()의 좨주를 시작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참군을 거쳐 팽택령에 임명되었으나 쌀 다섯 말’(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 전원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살았다.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썼다. 이후 오두미는 아주 박한 녹봉을 가리키는 단어이자 도연명의 정신을 기리는 대명사 같은 비유가 되었다.

 

소동파는 도연명은 벼슬하고 싶으면 벼슬하고, 은퇴하고 싶으면 은퇴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고상하다고 자랑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살림이 펴면 닭을 잡고 술을 빚어 손님을 불렀다는 말로 그의 삶을 요령 있게 표현했다.

 

송서(宋書) 93 도잠전(陶潜傳)

 

 

 

 

 

* 도판 위는 도연명, 아래는 도연명의 시집.

 

 

 

 

 

중국사의 오늘 :

197542

중국의 혁명가이자 공산당 창시자인 동필무(董必武)가 북경에서 죽었다(1885년생, 향년 90) 동필무는 중화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 등을 지내고 장정(長征)에 참가하였다. 중일전쟁 때 국민참정원으로 중경에서 국공 교섭에 관여하였고, 2차 세계대전 후 화북인민정부 주석, 최고인민법원장, 중앙정치국위원, 국가부주석 등을 역임하였다.

 

* 도판은 동필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문인은 서로를 무시한다.

   文人相輕(문인상경)

 

삼국 시대 위나라 문제 조비(曹丕, 조조의 셋째 아들)전론이란 글에서 문인은 모름지기 자기야말로 일인자라고 자부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상대를 깔본다. (중략) 이를 통해 문인들이 서로 경멸하는 풍조는 일찍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이는 한서를 남긴 반고가 부의(傅毅)라는 문장가를 깔본 데서 비롯되었는데, 훗날 문예 평론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식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풍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상대방의 글이나 주장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반박하고 깔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글이나 주장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풍조는 학계뿐 아니라 언론계 등 사회 전반에 두루 퍼져 있어 사회적으로 아주 나쁜 기풍을 형성한다.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기풍이다.

 

전론(典論)

 

 

* 도판은 조비.

 

 

 

 

 

중국사의 오늘 :

108541(북송 신종 원풍 83월 무술)

북송의 6대 황제 신종(神宗) 조욱(趙頊)이 죽었다(1048년생, 향년 38). 신종은 개혁 정치가 왕안석(王安石)을 기용하여 신법(新法) 개혁에 나섰으나 구법파로 불리는 수구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개혁을 놓고 신법파와 구법파의 다툼은 결국 당파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송나라는 국운의 쇠퇴를 면치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대림사의 복숭아꽃

 

백거이(白居易, 772~846)*

 

속세는 사월이라 꽃이란 꽃 다 졌는데

산사의 복사꽃은 이제 한창 만발했네.

가신 봄을 찾을 길 없어 한탄하고 있었더니

어느 사이 이곳으로 들어왔었네.

 

 

* 도판은 백거이.

 

 

 

 

 

 

大林寺桃花

 

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 당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 스토리를 묘사한 장편시 장한가(長恨歌)로 유명한 백거이는 중당(中唐) 시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다섯 살 때부터 시를 지었으며, 불교에도 심취하여 향산거사’(香山居士)라는 호를 쓸 정도였다. 그의 작품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민중 속에 파고들어 소 치는 아이나 말몰이꾼의 입에까지 오르내렸다. 또한 절의 기둥이나 벽에도 나붙었고, 멀리 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널리 애송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