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은 서로를 무시한다.

   文人相輕(문인상경)

 

삼국 시대 위나라 문제 조비(曹丕, 조조의 셋째 아들)전론이란 글에서 문인은 모름지기 자기야말로 일인자라고 자부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상대를 깔본다. (중략) 이를 통해 문인들이 서로 경멸하는 풍조는 일찍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이는 한서를 남긴 반고가 부의(傅毅)라는 문장가를 깔본 데서 비롯되었는데, 훗날 문예 평론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식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풍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상대방의 글이나 주장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반박하고 깔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글이나 주장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풍조는 학계뿐 아니라 언론계 등 사회 전반에 두루 퍼져 있어 사회적으로 아주 나쁜 기풍을 형성한다.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기풍이다.

 

전론(典論)

 

 

* 도판은 조비.

 

 

 

 

 

중국사의 오늘 :

108541(북송 신종 원풍 83월 무술)

북송의 6대 황제 신종(神宗) 조욱(趙頊)이 죽었다(1048년생, 향년 38). 신종은 개혁 정치가 왕안석(王安石)을 기용하여 신법(新法) 개혁에 나섰으나 구법파로 불리는 수구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개혁을 놓고 신법파와 구법파의 다툼은 결국 당파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송나라는 국운의 쇠퇴를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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