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하나가 공을 세우려면 만 명의 희생이 따른다.

   一將功成萬骨枯(일장공성만골고)

 

당나라 때 사람 조송(曹松)이 쓴 시의 한 대목이다. 큰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큰 희생이 따른다는 뜻이지만, 한 사람의 성공과 명예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을 치러야 하는 불합리한 경우를 가리키는 때가 많다. 이렇게 세운 공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다수 국민의 혈세를 들여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사람을 위한 무익한 사업을 벌일 때 이 구절을 인용할 수 있다. 더욱이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기는 지금 같은 경제 체제에서는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 부가 극소수에게로 집중될 뿐 수많은 사람이 빈곤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에, 군사 방면보다는 오히려 경제 방면에 더 어울리는 말이 되고 있다.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가 이익을 보는 그런 구조가 필요한 세상이다.

 

기해세(己亥歲)

 

 

 

 

 

중국사의 오늘 :

1928419

일본이 만주(滿洲)로 불리는 동북 3(요령, 길림, 흑룡강성)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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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밭, 배나무 밑

    瓜田李下(과전이하)

 

오이 밭에서 신발 끈 매지 말고, 배나무 밑에서 갓끈 매지 말라는 속담의 출전이다. 원문을 풀이하자면 군자는 미연에 방지한다. 의심을 살 만한 곳에는 처하지 않는다.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고, 배나무 밑에서는 의관을 정제하지 않는다가 된다. 요컨대 의심을 살 만한 장소에는 가지 말고 또 그런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이 밭과 배나무 밑은 의심을 사기 쉬운 장소가 되는 셈이다. 옛사람들은 이렇듯 처신에 있는 주의 없는 주의를 다 기울였다.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으나 충분히 새겨 둘 만한 대목이다.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의 처신이 워낙 형편없는 세상이라 더 그렇다.

 

악부시집(樂府詩集) 상화가사(相和歌辭) 7, 군자행(君子行)

 

 

 

 

 

중국사의 오늘 :

1952418

중국 공산당 중앙정부가 탐관오리 징벌 조례를 비준하여 421일 공포 시행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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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자리를 비워 우대하다.

   虛左以待(허좌이대)

 

전국 시대 위()나라의 공자 무기(無忌)는 인재를 존중하여 그 인재가 어질거나 불초하거나를 막론하고 겸손한 예로 교류했다. 또 자신이 부귀하다고 교만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인재들이 앞을 다투어 위 공자에게 모여드니 식객이 3천에 이르렀다. 이런 위세 때문에 다른 나라가 감히 위나라를 침공하지 못했다. 위 공자가 은자 후영(侯嬴)을 모시기 위해 직접 수레를 몰고 왼쪽 자리를 비워 둔 채 그를 맞이하러 갔다. 이로부터 수레의 왼쪽 자리가 상석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인재나 현자를 대우하는 방법이야 많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격식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위 공자는 격식을 제대로 갖추어 인재를 대했고, 실질적인 대우 또한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기77 위공자열전, 동주열국지94

 

 

 

 

 

중국사의 오늘 :

1055417(북송 인종 지화 23월 병자)

공자의 후손을 연성공(衍聖公)으로 봉하는 조서를 내렸다. ‘성인의 뒤를 이은 사람’ ‘연성공이란 명칭이 이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연성공은 공자 47대손 공종원(孔宗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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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믿음(약속)

   尾生之信(미생지신)

 

미생이란 남자가 한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나기로 한 날 비가 내려 시내에 물이 넘쳤다. 다리 밑으로도 물이 차올랐다. 여자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생은 다리 밑을 떠나지 않았고 다리를 끌어안은 채 물에 빠져 죽었다. 여기서 미생지신이란 유명한 고사성어가 나왔다. 이후 이 성어는 변통을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되었다. 무익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는 답답한 사람에 대한 야유의 의미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한번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 신의 있는 사람을 비유한다. 약속을 밥 먹듯 저버리는 세태에서는 차라리 미생과 같은 사람이 귀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장자(莊子) 도척(盜跖)

 

 

 

 

 

중국사의 오늘 :

583416(수 문제 개황 33월 정사)

수 문제가 우홍의 건의를 받아들여 천하에 남아 있는 책을 구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책 한 권에 비단 한 필을 내렸다. 오랜 전란 통에 도서가 많이 유실된 관계로 이런 조서가 내려간 것이다. 당시 책을 바치면 베낀 다음 원본을 돌려주었기 때문에 민간에서 열렬히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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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낮추는 예로 현자와 인재를 대한다.

   禮賢下士(예현하사)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은 고대부터 제시되었다. 당나라 때 사람 이면은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늘 자신의 몸을 낮추고 시종 진심으로 갖은 예를 다하여 인재를 대했다고 한다. 그보다 훨씬 앞선 전국 시대 연나라 소왕은 나라를 중흥시키기 위해 인재를 갈망했다. 현자 곽외(郭外)는 인재 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소왕은 비신후폐’(卑身厚幣)의 방법으로 각국의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낮추고 후한 예물로 인재를 우대했던 것이다. 그러자 인재들이 앞을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왔다고 한다. 여기서 사쟁추연’(士爭趨燕)이란 멋진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자존심을 먹고 사는 인재들을 유인하기 위한 지혜가 번득이는 성어들이다.

 

구당서』 「이면전(李勉傳)

 

* 도판은 연나라 소왕.

 

 

 

 

 

중국사의 오늘 :

1977415

모택동선집5권이 출판되었다. 5권에는 19499월부터 195711월까지 쓴 70여 편의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날 상해 - 난주 - 우루무치를 잇는 전장 3,600km 항공 노선이 개항되었다.

 

 

* 도판은 모택동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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