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자리를 비워 우대하다.

   虛左以待(허좌이대)

 

전국 시대 위()나라의 공자 무기(無忌)는 인재를 존중하여 그 인재가 어질거나 불초하거나를 막론하고 겸손한 예로 교류했다. 또 자신이 부귀하다고 교만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인재들이 앞을 다투어 위 공자에게 모여드니 식객이 3천에 이르렀다. 이런 위세 때문에 다른 나라가 감히 위나라를 침공하지 못했다. 위 공자가 은자 후영(侯嬴)을 모시기 위해 직접 수레를 몰고 왼쪽 자리를 비워 둔 채 그를 맞이하러 갔다. 이로부터 수레의 왼쪽 자리가 상석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인재나 현자를 대우하는 방법이야 많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격식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위 공자는 격식을 제대로 갖추어 인재를 대했고, 실질적인 대우 또한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기77 위공자열전, 동주열국지94

 

 

 

 

 

중국사의 오늘 :

1055417(북송 인종 지화 23월 병자)

공자의 후손을 연성공(衍聖公)으로 봉하는 조서를 내렸다. ‘성인의 뒤를 이은 사람’ ‘연성공이란 명칭이 이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연성공은 공자 47대손 공종원(孔宗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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