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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진 시민들이여 권리위에 잠자지 말자,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자
문유석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은 후 우리가 합리적 개인주의가 되어야 하는지, 집단주의 문화주의를 탈피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판사님은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세상이라 말하며,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타인을 감싸고 배려해 주는이가 있는반면, 지극히 이기주의로 물든 이들도 많다.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고, 좀더 손해보는쪽 좀더 이익을 보는 쪽은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룰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요즘 공정한 사회 정의로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계속 생각해 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판사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박차오름이라는 여 주인공은 예쁘고 성격도 좋고, 사랑스럽고 약자의 편에 서 있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물도 현실세계에 존재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문유석 판사님이 만들어 낸 거 아닌가 싶다. 여 주인공인 박차오름이 법원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을 목격하고 추행을 당한 여학생에게 이야기 한다.
˝학생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저 같은 목격자가 없더라도 피해자인 학생이 직접 추행범을 분명히 지목하고 신고하면 처벌할 수 있어요. 즉각 신고할 수 있는 앱도 있고요.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난 그랬다. 불의를 보고도 불의를 당하고도 그것이 불의라는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다. 때론 귀찮아서 때론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때론 가만 있지 않으면 뽀족한 수가 있나 싶기도 해서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였다.
˝신고나 해주면 되지 왜 나서서 일을 시끄럽게 해! 여대생이면 지가 알아서 하겠지 무슨 여중생이야? 하긴 그런 짧은 치마나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 당하지. 그런 것들이 공부나 하겠어?
˝생각해보니 부장님 말씀이 맞아요. 여자들이 위험하게 맨살을 내놓고 다니면 안 되죠. 남자는 원래 여자 맨살만 보면 자동으로 폭발하게 되어 있는 불쌍한 존재라면서요. 남자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어요. 인간이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건 정당한 일이니 괜한 욕망을 낳는 죄악의 씨앗들을 박멸해야 해요!. 좋은 물건을 보면 폭도로 변하는 게 당연하니 백화점도 폐쇄하고, 고객 눈앞에서 돈을 세는 은행원은 강도 교사범으로 처벌해야....˝
범죄를 저지르는이의 죄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를만한 계기를 제공한 피해자가 잘못이라는 생각은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펴져 있다.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의 재판 결론이 얼마나 공정한지는 알 수 없지만, 미스 함무라비인 박차오름과 나머지 두 주인공인 한세상 재판장과 임바른판사가 이끌어가는 재판과정과 결과를 보며 아직 세상은 살만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 첫 재판을 마친 후, 재판장의 말씀이다. ˝고생했소. 사람들은 문 판사라는 개인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복이라는 옷을 보고 절을 하는 거요. 그걸 잊지 마시오.˝
* ˝오십 보와 백 보가 어떻게 같은 수 있죠? 오십 보와 백 보 사이 거리는 출발점에서 오십 보까지의 거리와 같아요. 티끌 하나 없이 고결한 사람만 상대방 잘못을 물을 수 있는 건가요? 오십 보 백 보면 백 보가 두 배의 벌을 받아야죠. 그리고 누구 몸에 묻은 게 겨고 누구 몸에 묻은 게 똥인지도 가려야죠. 이런 걸 가리지 않으면 누가 득을 보죠? 백 보만큼 나쁜짓을 한 인간, 몸에 똥 범벅된 인간들 아닌가요? 그런 인간들이 상대방에게도 서너 보 흠이 있으면 이걸 꼬투리 잡아 오십보 백 보 운운하다가 적반하장으로 자기가 겨 묻은 개인 척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요?˝
* 어느 분야나 마찬기지겠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언론에 나오는 거창한 사건들, 튀는 일들뿐이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대다수의 일하는 이들은 화려하지 않고 튀지도 않는 일들을 묵묵히 반복하고 있다. 그러기에 세상은 호들갑스러운 탄식과 성급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묵묵히 굴러간다.˝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우리 쪽팔리지 살진 말자.˝
* 인간의 기억이란 참 묘해서 완결된 것은 곧 망각하고, 미완의 것은 오래오래 기억한다. 해피엔딩을 이루고는 익숙해져만 가는 사랑과 안타깝게 못 이루어 평생 그리워하는 사랑 중 어느 것이 더 달콤한 것일까. 아니, 어느 것이 더 슬픈 것일까.
* 다큐멘터리 속의 그녀는 자기 자신과 동생이 장애인의 자식이기 때문에 비장애인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자랐다고 고백한다. 한 여판사는 이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으며, 소주자이기 때문에 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행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이 있고, 그건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 ˝박 판사님, 상처 입은 치유자 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박판사님은 상처가 많으 사람이어서 누구보다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남의 상처를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줄 아니까요. 그저, 조금만 마음을 쉬게 해주세요. 자신의 사어에 튼튼한 새살이 돋아날 시간만 허락하세요.˝
* 제2호 여성 대법관인 전수안 대법관은 2012년 퇴임사에서 ˝여성 법관들에게 당부한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 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 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헌법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돼야 한다.˝고 위트있게 일침을 가했다.
* ˝난 평소 궁금한 게 있어. 한국 사람들은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만이 귀한 것이고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건 부당한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데 전지현, 김수현 같은 타고난 외모에 대해서는 우월한 유전자라며 숭배하지. 김연아, 류현진 같은 스포츠 천재도 여신이나 영웅 취급하고, 물론 이들도 노력은 했겠지만 과연 타고난 재능이나 극히 예외적인 미모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지능은 물론 인내심이나 집중력같이 노력에 필요한 기질조차 거의 절반 정도는 유전되는 거야. 슬프게도 대자연은 원리적으로 불공평해. 그런데 왜 사람들은 유독 타고난 것 중에 부에 대해서만 이를 갈고 저주하는 거지?˝
* ˝선배, 나도 평소 갖는 의문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왜 우리 나라는 상장회사에도 기업‘오너‘라는 말을 쓰는 거지?˝
˝회사법 어디를 봐도 주식회사에는 출자자인 주주가 있고 집행기관인 이사, 대표이사는 있지만,‘회장‘‘창업자‘에 관한 규정은 없더라고. 선배네 집안이 창업자이고 회사 주식을 꽤 갖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백 퍼센트 갖고 있는 건 아니쟎아? 저번에 신문 보니 다 합쳐서 5퍼센트도 안 되는 것 같던데.˝
MJ그룹은 글로벌 기업이니 주주가 전 세계에 걸쳐 엄청 많지? 물론 선배네 집안이 지배 주주인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회사 재산이 주주 중의 하나인 선배네 집안 소유가 되는 건 아니지. 저 비행기도 선배네 집 비행기가 아니라 회사 소유라고, 민법 공부할 때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자연인과 법인의 구분이거든.
˝그건 너무 단순 논리다. 자본주의의 엔진은 기업가 정신이야. 창업자에게는 단순 투자자와 다른 인센티브가 주어져야지.˝
˝물론이야. 그 인센티브는 기업 공개 후 발생하는 막대한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 대주주로서 이익 배당을 받을 권리, 그리고 경영자인 등기 이사로서 받는 보수겠지. 그게 글로벌 스탠다드 아니야? 미국은 창업주 가문도 경영에 참여 안하면 이익 배당을 받을 뿐이고, 전 세계에서 온 탁월한 인재들이 최고경자로서 막대한 보수를 받는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권 때문에 주식을 팔지는 않고, 회사에 이익이 생겨도 미래 투자를 위한 자금이라면서 배당은 안 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 이사로 이름을 올리지도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 난 도대체 무슨 수입으로들 사시나 걱정했어. 요즘 뒤늦게 좀 알겠어.˝
* 취하기라도 해야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노인의 행동은 악이라기보다 나약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강인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나약함과 강인함조차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 판사로 일하다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밑바닥, 어둠을 많이 보게 된다. 처음엔 분노하고 우울해하거나 냉소적으로 되는데, 계속보다 보면 그 사람들이 이상하고 나쁜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상황이 나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쁘거나 추한 사람들이 있는게 아니라 나쁘거나 추한 상황이 있는 거다.
* 국민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면 늘 옳다고들 행각하는 거야? 진짜로? 유대인은 열등한 인종이니 살처분해야 한다는 것이 독일 국민 다수의 뜻이었고, 흑인은 백인과 같은 버스를 타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라는 나라 국민 다수의 뜻이었지. 여자아이를 강제로 할례하고 민간인을 납치해서 참수하고 고대 유적을 파괴하는 행위들도 진심으로 옳은 일이라 믿으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지지 위에서 벌어지지. 난 말이야, 소수의 악마들이 선량한 국민들을 총칼로 위협해서 인류의 어리석은 악행들이 벌어졌다는 식의 얘기는 모두 사기라고 생각해. 실은 선량하고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동참했었다고, 권력은 언제나 부패하니까 분리하여 서로 견제해야 한다는 권력분립론은 누구나 얘기하지만, 실은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있어. 국민 역시 견제 받아야 한다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철저한 불신 위에 국민, 의회, 정보, 법원,언론, 정당 모두 서로가 서로를 결제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인 거야.˝
* 계속 높아져만 가는 오해와 불신의 장벽을 부수려면 이제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신전에서 내려와 시민들이 오가는 광장에서 함께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서투르기 짝이 없는 소설 역시 입을 떼는 옹알이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 마지막을 국민참여재판 이야기로 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시민들이 직접 법대 위에 앉아 그동안 신비의 베일 속에서 이루어졌던 과정에 직접 참여해보는 것처럼 장벽을 부수는 확실한 방법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