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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를 읽는 남자, 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으엑 기분 나뻐 라고 반응할까요. 아니면 그게 뭐야 라고 되물을까요. 마스다 미리의 책이 문고본으로 재출간되기에 까지 이르렀지만 아직도 내 주위에는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아마도 후자의 반응이 예상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마스다 미리를 읽는 남자는 접니다. 하지만 제가 아닌 다른 남자도 해당될 수 있겠지요. 많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출판사의 홍보문구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스다 미리의 여자 만화. 여자의 마음을 아는 작가 등등, 남자라면 선뜻 손을 뻗기가 어려운 표현들이 띠지에 둘러져 있습니다. 이거 재밌는 걸 하고 서가에 서서 읽다가도 막상 계산대에 가져가려고 하면 부끄러워져서 다시 내려놓게 되지요. 덕분에 저도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19금 용품도 아닌데 말이죠.

 

  마스다 미리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여자들은 참 좋겠다입니다. 남자들에게도 마스다 미리 같은 작가가 있어서 만화를 그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같은 책이 많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그런 작가도 별로 없는 듯 하고. 소소하고 일상의 그냥 평범한 얘기 같은 건 남자드로가는 어울리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지만 남자들도 스포츠에 열광하고 낯선 여자와의 만남을 즐기는 타입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처럼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일요일 오후의 산책이 일주일의 최대의 행복인 타입도 있죠.

 

 그런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뭘하며 지낼까하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남자답지 않아 라고 생각하며 좀더 남자다워지기 위해 별 흥미도 없는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헬스장에서 덤벨을 들면서 근육을 키우고 있는 걸까요. 남자다운게 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답지 않은 성향의 '남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남자답다'라는 단어의 정의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수정해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조차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치부되곤 하니까.

 

 저는 소소한 이야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예전엔 페이스북같은 곳에 제 얘기를 적곤 했는데, 회사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곤 하는 통에 접었습니다. 사적인 공간을 침범당하는 느낌이라 이런 블로그가 저에겐 더 안전한 장소로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라고 해도 불과 몇 주전이지만 - 저는 글을 쓸 때면 어떻게 하면 잘 쓸까 라는 부분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걸 스스로 깨닫는 일은 솔직히 쉽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생일날 어떤 사건이 저에게 일어났고 그 사건으로 인해 딸깍 하고 스위치가 불러진 것처럼 뭔가가 변화했죠. 그리고 몇 가지 다른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면서 저는 일종의 깨달음이랄까 결론 같은 것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을 여기 말로 풀어낸다면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왠지 굉장히 시시한 것이 되어버리기에 제 안에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어쩌면 심야서점의 글을 계속 읽어나가는 독자라면 눈치를 챌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나서서 그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고 공표하듯 말하고 싶진 않네요.

 

 아무튼 그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심야서점도 열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저는 구원받은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아주 소중한 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그런 기분을 맛보지 못한 채 살다 가는 사람도 있을테니까요.

 

 그런 덕분인지 요즘은 여러가지 경험에 열려있는 편입니다. 우연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려고 합니다. 아마 이전의 저라면 심야서점 같은 별로 돈도 되지 않고 별다른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글을 주구장창 쓰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거 해서 뭐해라고 시니컬하게 말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쓰고 있습니다. 누가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쓰고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이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다는 믿음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 건가 할 정도로 그 기분을 알 것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의 반응이 아니어도, 글을 쓸 때면 저는 느낍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글이 제가 쓰는 건 아니라고도 느낍니다. 제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기 전에 제가 써야할 글이 존재해야할 필연적인 이유 같은 것이 선행되고, 우연히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제가 글을 쓰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이 꼭 제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긴 한데, 아무튼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상당히 묘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 글을 제가 쓰긴 했지만, 저라는 인간의 의식과 손을 빌려 세상으로 나왔을 뿐 이미 다른 곳에 존재하던 글이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제 글이 아닌 셈입니다. 저는 매개체가 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오늘 조금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퇴근 길에 비가 와서 7천원을 주고 서점에서 우산을 샀는데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그쳤더라고요. 어떻게든 마음을 달래보려 했는데 집에 오는 내내 울적했습니다. 제 옆줄엔 만팔천원인 자동식 우산을 산 아주머니도 계셨는데 그 분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잘모르겠지만, 손으로 펴는 것과 버튼으로 펴는 것의 차이에 만천원이나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가 퍼부어주었으면 우산을 잘샀네 라며 자신을 칭찬해줄 수 있는 기분이 들었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제 자신이 조금 한심하기도 합니다. 그런 작은 일에 기분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모습이 도무지 성인 남성 같지가 않거든요. 사실 지금도 제가 이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좀체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스포츠도 싫어하고(수영은 좋아합니다만) 골프도 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술담배도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어른스러운 놀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자연히 그런 어른스러운 놀이를 즐기는 어른과도 친하지 않습니다. 나이 상으로는 충분히 어른이지만 제가 어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스다 미리를 읽는 남자는 확실히 어른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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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마스다 미리 지음, 히라사와 잇페이 그림, 김난주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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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입
마스다 미리 지음, 이연희 옮김 / 라미엔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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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잊어버린 것- 마스다 미리 첫 번째 소설집
마스다 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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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garden 2015-05-2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좋아서 처음으로 타인의 서재에 들어와 글까지 남기고 갑니다^^

민철 2015-05-24 00:08   좋아요 0 | URL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보고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정말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그리고 기분 좋게 읽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해요. 앞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드는 글이 많아질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6-2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글을 읽으면서 여자에게 마스다 미리가 있다면 저에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민철님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할 것 같네요ㅎ

퇴근후책한잔 2023-03-2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마스다미리를 읽는 남자입니다!! 반가워서 댓글까지 남깁니다. 나중에 마스다미리처럼 쓰는 남자 작가가 되고싶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심야서점 마스터 심봉사입니다. 사실, 첨에 심봉사라는 이름을 쓸 때 조금 망설였는데, 왜냐면 심봉사가 앞을 못보잖아요. 물론 심청이가 몸을 던져 눈을 뜨게 되지만, 뭐 저에겐 심청이 같은 딸도 없고, 사람이 이름따라 간다고 심봉사라는 닉네임이 썩 좋아보이진 않더군요. 그래서 일단, 이름은 심봉사라고 지어놨는데, 그냥 마스터라고 불러주시면 - 부를 일은 아직 없겠지만 - 감사하겠습니다.

 

 제목이 좀 거한데. 아무래도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편이 서점으로서의 간지가 산다고 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뭐 크기는 좀 작더라도 말이죠. 근데 제가 사는 동네가 요즘 뜬다고 하는 서촌인데, 임대료가 상당히 비싸더군요. 보증금은 차치하고라도 월 250만원 정도? 자세히 알아보면 좀 더 싼 곳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월 30만원 정도로 뭔가 할 수 없을까 생각하던 저에겐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순진했는지도 모르죠. 월 매출을 250만원 이상 올리는 집들이 그렇게 많은가 싶은데 건물마다 임대료차이가 있고 계약 시점에 그렇게 비싸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집 근처에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려는 계획에 시작부터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슬프네요.

 

 지금 당장 공개할 순 없지만, 심야서점은 일반적인 책을 판매하는 곳은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썼지만 그런 책들은 이제 굳이 동네서점에서 살 필요가 없어졌죠. 헌책방도 인터넷 중고거래때문에 더이상 유용하지 않죠. 일부 전문서적을 중심으로 다루는 곳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러니 그런 책은 팔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심야서점은 심야서점에서만 살 수 있는 책을 팔 생각입니다. 출판도 겸하는 셈이죠. 심야서점에서 판매되는 책을 열 명 중에 한두명이라도 진심으로 좋아하고 기다려주는 독자들이 생긴다면, 뭐 어떻게든 유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목표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겠다, 가 아니라, 버티는 거거든요. 그래서 모토도 "주구장창"입니다.

 

아마 책은 그렇게 많이 못 찍을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이 드니까요. 디자인도 심플하게 가야 할 것 같고.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 컨텐츠만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책을 내놓겠다라는 포부가 있습니다.

 

 요즘 책이 너무 많잖아요. 근데 많은 것처럼 보여도 상당히 폭이 좁은 것 같습니다. 번역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도 하고요. 대형서점이나 출판사의 홍보 전략에 좌우되는 부분도 많고요. 뭐 그런 걸로 충분하다라고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 난 그런 걸로 만족할 수 없다, 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신한 글을 읽고 싶은 갈증을 요즘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매장 구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최악의 경우 이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대료가 싼 쪽으로 가서 매장을 구하고 그곳의 이층이라던가 하는 곳에서 제가 사는 거죠. 물론 최악의 경우입니다만.

 

 서촌은 꽤 살기 좋습니다. 우선 건물들이 높지 않아서(개발제한때문)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고요. 인왕산을 끼고 있어서 산책 하기도 좋고,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많고, 통인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에, 종로 도서관, 구립센터가 가까워서 운동도 할 수 있고 책도 맘껏 읽을 수 있습니다. 광화문이 바로 앞이라 시내에 볼 일이 있으면 부담없이 다녀올 수도 있죠. 서울 시내에 이만한 지정학적 위치를 갖춘 마을이 없어서 가거지라고 할만 하네요. 요즘 유입인구가 늘어나서 살짝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싶을 때도 있지만, 가게들이 9시면 문을 전부 닫기 때문에 금새 또 한산해집니다.

 

 그러니 이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좋은 정보가 있는 분은 공유 좀..

 

 주말에 밥을 사먹는 데, 매일 돈까스만 먹기 지겨워져 다른 가게를 갔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가성비 짱. 런치스페셜을 주문하면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같이 주는데 8,500원 밖에 하지 않네요. 테이크 아웃도 되고. 오늘 가보길 잘했습니다. 내일 점심도 여기서 먹을 듯. 저는 한 번 메뉴를 정하면 주구장창 먹는 성격이라.

 

졸립기도 하고 오늘은 왠지 의욕이 좀 떨어지네요. 수영을 낮에 너무 열심히 한 모양입니다. 심야서점을 방문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물러가지요. 좋은 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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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무라카미하루키를 굳이 한자로 쓰는 이유는 하도 하루키라는 이름이 유명해져서 식상해졌기 때문이랄까요. 이상한 부분에서 참신함을 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심야서점에서는 하루키상을 춘수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춘수씨도 괜찮고요. 제 먼 친척형님이 춘순데..암튼.

 

춘수님의 글을 읽은지가 한 이십여년 되어가네요. 그러다보니 성쇠랄까 그런 것도 느껴지고 오래 같이산 애완견과 주인의 사이처럼 뭔가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 마디로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려운 뭐 그런 복잡 애매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견주인 춘수님은 저의 존재조차 모르니 애초에 이야기가 안되는군요. 암튼.

 

 그래서 제 방에는 한국에 출시된 춘수님의 책을 비롯, 한국에 미출간된 경우는 원서로 구비가 되어 있고, 소위 그에 관한 문학론 서적들도 모두 있습니다. 춘빠라는 거죠.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바로는 제이 루빈의 책 말고는 제대로된 춘수론이 없다는 거죠. 뭐랄까 개를 한번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쓴 애견지침서 같은 느낌? 이렇게 말해도 잘 모르시겠지만.

 

 학자들은 그럴싸한 말을 쓰길 좋아하죠. 그러니까 일상적인 표현보다는 문법적으로 켄타로우스같은 형태를 취하더라도 폼나면 그만, 이라는 식의 사고 구조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알아들을 수 없고 입에 담기 조차 저어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말 쓰지 않기로 약속해요.

 

 뭐 제가 여기서 춘수론을 전개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알콜중독자가 나 술없으면 못살아요 라고 결혼하기 전에(혹은 후에?) 아내에게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벗어나기에는 이미 치명적으로 중독된 상태여서 주기적으로 읽어줘야 합니다. 저같은 사람은.

 

 춘수형의 글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이 - 근데, 왜 갑자기 님에서 형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나이로 보아서는 형뻘은 아닌데..-잘 읽힙니다. 것도 아주 잘. 소설 같은 거 안 읽어 하는 사람도 장편 소설 한 권을 뚝딱 읽게 만들죠. 그건 정말이지 대단하다라고 왜 있잖습니까. 태양의 서커스 같은 거 보면 공중에서 몇 바퀴 돌아서 떨어지는 데 완벽하게 착지하는 그런 묘기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춘수형의 글을 읽고 나면 솔직히 왠만한 작가의 딱딱한 글은 읽기가 좀 힘듭니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춘수형의 글빨에 조련당하고 나면 노예가 되는 길 밖에 안 남아요. 다행히 굶어죽지 않을 만큼 부지런히 책을 내주고 있습니다만.

 

 물론 이런 문장은 춘수형만 그런 건 아니고 그 세대의 젊다? 했던 일본 작가들이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죠. 바나나 님이나 가오리 님이나 용(무라카미 류) 형이나.. 추리 소설 쪽에 규오 형(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렇죠. 그래서 소위 '빠'가 만들어집니다. 용 형은 요즘 좀 시들하지만..아 갑자기 눈물이..

 

그러고 보니 용 형의 문장은 썩 친절한 스타일은 아니네요. 초기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점점 다른 스타일로 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빠'들이 떨어져 나간 걸까요?혹시 아직 살아계신 빠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를..안다고 뭐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생사라도 알고 싶어서..

 

가오리 누님은 대체로 여성 분들이 좋아하더군요. 제 예전 여친도 좋아했습니다. 그래요 그런 시절도 있었죠.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이랄까.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 문장은 좋아합니다. 왜 말할 때도 지루하게 군더더기 많은 사람 있잖아요. 이를테면 저 같은.. 그런 사람들의 문장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마침표가 보이지 않으면 마치 마지막 팬티를 끝내 벗지 않는 스트리퍼의 쇼를 보는 기분이랄까. 사실 스트립쇼 같은 건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상상만 해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지 않나요?

 

 바나나님은 오늘 서점에서 새 책이 진열되어 있는 걸 봤는데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잘도 이런 얇은 책을 출판해줬구나 싶게 얇더군요. 150쪽 쯤 됐나? 뭐 짧아서 잘 팔리는 걸지도 모르죠.

 

그게 참 이상한 게. 같은 값을 냈으면 살 때는 두꺼운 쪽이 뭔가 득 본 기분인데, 막상 집에서 읽으려고 하면, 너무 두꺼워서 끝까지 못 읽게 되곤 하지 않나요? 제 방에는 그런 두꺼운 안 읽은 책이 수두룩빽빽입니다.

 

 그런 현대 일본 소설은 얄팍해서 읽을 맛이 안난다는 분도 계시겠지요. 20세기 초의 러시아 소설 처럼 주인공이 등장할 때까지 몇 백쪽이 지나가야 소설이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랑은 좀 취향이 다른 거 겠죠. 주인공의 등장 시점은 모르겠지만, 저도 긴 소설을 읽는 그 맛은 좀 압니다. 무협 소설을 많이 읽었거든요. 두께가 좀 차이가 있지만 기본이 3,4권이고 요즘 나오는 판타지 무협들은 길이가 어마어마 하더라고요. 1부,2부로 나눠지기도 하고. 뭔가 스케일이 어마어마 함.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작가로 마르셀 푸르스트가 가장 유명하죠. 함정은 아무도 완독한 적이 없는 소설을 썼다는 건데, 쓰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고, 뭐 그 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요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책들을 보면, 이렇게 써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글의 효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좀 너무 과해진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냥 노동에 가까워 지는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도..

 

 애시당초.(전 이말을 참 좋아합니다만) 글을 쓰려고 한 것. 자, 지금부터 글이란 걸 써볼까 라고 마음을 먹게 되는 건 사실 상당히 내면적인 동기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연애 편지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자기 안에서 원유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는 감정의 분출을 억누룰 수 없어 종이에 혹은 모니터에 옮기는 것. 그게 글 쓰기의 원시적인 형태가 아닐지.

 

 그러므로 글을 쓰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요즘의 책들은 일면 공감이 되면서도, 반대쪽 지점에 있었으면..하고 바라게 되는, 글을 쓰는 내면적 동기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책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불평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네요. 부정적인 사람은 컵의 빈부분만 본다고 하는데, 무좀 걸리지 않은 발가락이 걸린 발가락보다 많다고 해서 발에 무좀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까 있는 걸 있다고 하는 건 딱히 불평이라고까지 비난할 필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좀이 있으니 연고를 바르든, 습한 곳을 피하든, 모냥이 안나지만 발가락 양말을 신 듯 할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야서점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자꾸 밤 늦게 글을 쓰고 싶어지네요. 온라인 상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상에서도 서점을 오픈하기 위한 저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근데 언제 그런 노력을 한다는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겸사겸사 그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회사를 가고 밤에 퇴근해서 서점을 여는 거지요. 근데 야밤에 서점에 오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네요. 대형서점들은 10시면 문을 닫더라고요. 전 일단 12시까지는 열 생각입니다. 문은 그때그때 봐서 열어야 겠지만.

 

일단은 임대료도 문제고 현실적으론 돈이 걱정이네요. 일단 공간만 확보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암튼, 종종 오픈 관련 진행상황도 블로그에 공유할 생각입니다. 관심과 응원은 안주셔도 되고 오픈하면 놀러오세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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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서점. 일본어로 신야쇼텐. 중국어로는 모르겠다. 영어로는 미드나잇 북스토어. 줄여서 MB. 뭔가 좀 찝찝하네. 왠지 삽질이 될 것 같다는 강렬한 계시가 느껴진다.

 

 암튼 잘 오셨습니다. 요오꼬소. 이랏샤이마세. 웰컴투더 북스토어.

 

 제 꿈은 책방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나인투 식스 회사원 생활을 십 년 째 하고 있네요. 내 가슴이 뛰어본 적이 언젠가 가물거립니다. 그러다 문득 책방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되고, 자리랑 임대료랑 인테리어랑 어떻게 해야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일단 온라인으로 열면 되잖아, 라는 생각에 도달, 원래 써먹던 알라딘을 활용하면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어 이곳에 이렇게 먼저 책방을 엽니다.

 

 저는 만화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예의 상 취미는 음악 감상이고요, 하는 수준이 아니라 없으면 못삽니다 라는 수준으로 좋아합니다. 딱히 이런 걸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게 이런 것들인 걸요. 돈이 안되어도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누가 책방을 갑니까. 누가 동네 서점엘 갑니까. 저만 해도 인터넷으로 책 슥 보고 주문하고, 중고서적은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는데(이건 홍보가 아니라 불평입니다) 동네 서점은 다 죽었죠.

 

 근데 뭐 요즘 책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쏟아지는 책을 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만큼 많습니다. 로쟈님의 서재에만 가봐도 주 단위로 쏟아지는 책들이 어마어마하죠. 로쟈님의 책이 살짝 아카데믹한 취향에 치우쳐 있음에도 그러니, 전체 출판되는 책을 대상으로 어떤 책을 보아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암담합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게, 어떤 책을 보면 좋을지, 더 나아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지 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그런 걸 다른 사람보다 좀더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취향이 나와 얼추 비슷하면 그 사람의 초이스를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MD추천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인터넷 서점에도 깔려 있기는 하지만, 별로 신뢰가 안가고, 네이버 지식인 서재라는 건 재밌기는 한데, 그 분들이 주구장창 책 소개를 해주고 계시는 건 아니라서 뭔가 아쉽고. 그래서 명사도 아니고 하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쓸어담고 읽을만하다 싶은 책을 수집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콜렉션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게 요즘 같은 시대에 동네 서점이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뭐 물론 돈은 안됩니다.  동네서점에서 안 사고 인터넷에서 살 테니까. 그래도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뭐랄까. 그런 동네 서점이 많아지면, 뭔가 책을 읽고 사고 하는 지형에 뭔가 자긍 ㄴ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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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가 쓰는 글이 인터넷으로 읽기에 길다. 사진도 없다. 라고 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어쩌면 많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근데 사진을 갖다가 예쁘게 편집하고 이런 걸 제가 잘 못해서 앞으로도 이런 편집은 변함없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솔직히 말하면, 사진이 있는 글도 좋지만 사진이 없는 글도 좋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진이 없으면 아무래도 글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말이죠. 사진이 있으면 아무래도 이런거 사진으로 이렇게 한방에 보여주면 되지, 하는 안이함 같은 게 생겨 나서 글을 게으르게 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쓸 것 같습니다. 혹시나 사진이 없어 아쉬워, 라고 생각해주신다면 그럼, 글을 좀더 잘 써보겠습니다. 글이 짧아 아쉬워라는 말을 들을 때 까지요, 라고 답하고 싶네요.

좋은 밤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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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중 2015-05-1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

민철 2015-05-24 00:10   좋아요 0 | URL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응원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 같습니다. 독려라든가 하는 다른 유사한 상황에 사용하는 어떤 말보다도 힘이 나는 기분이 듭니다.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로 힘이 되는 말입니다. 또 응원해주세요.
 



가추법이 뭐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글을 클릭도 하지 않을 것.

 

이라고 일단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어디선가 가추법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궁금함을 못 이겨 몇 시간의 웹서핑 끝에 의식의 허기를 느끼며 쓰러져 가는 조난당한 자를 위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입니다.

 

 가추법이란, 찰스 샌더스 퍼스가 어덕션adduction 이라고 이름한 인간의 인지 과정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아마 생소할 텐데 퍼스가 죽은지 백년 쯤 되었는데도 아직 그리 널리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고 일부 기호학자들이 사용하긴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추정법인지 뭔지 하는 번역을 쓰기도 하는 등 용어의 통일조차 요원한 듯 보이지만, 일단은 가추법이라는 단어로 많이 쓰는 듯 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용어는 '넘겨짚기'인데요. 일상 생활에서 야, 넘겨 짚지마라고 핀잔 줄 때 사용하는 그 넘겨 짚기. 맞습니다퍼스라는 미국인은 백년전 쯤에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완전무결한 전제에 따라 도출되는 결론(연역)이나 무수한 경험적 증거들이 대명제를 완성할 때까지 주구장창 시간이 걸리는 방식(귀납)이 아니라, 대충 한 두개 보고 아, 그런거지? 라고 넘겨 짚은 다음에, 맞으면 고! 틀리면 어라, 아닌 갑네. 하는 식으로 변증법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고 주장했지요.

 

 넘겨 짚으면, 오류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효율은 극대화 되지요. 선입견이나 편견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꼭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대낮에 술에 취해 칼을 들고 길거리를 비틀대고 다니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라는 것처럼요. 어쩌면 그 사람은 요리사인데,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잠깐 나왔다가 뺑소니 차에 치여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후자처럼 생각해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 보다 일단 피하는 편이 안전하겠죠?

 

 이러한 넘겨 짚기의 효율성은 유지하면서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추리'입니다.

 

 셜록 홈즈나 소년탐정 김전일이 사용하는 그거요. 제가 서두에 소개한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이란 책은 참 드물게도 그런 추리와 가추법과의 연관성을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파헤쳐 들어간 재미난 책인데, 아쉽게도 절판이 되어버려서 도서관에서 밖에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방면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귀중한 자료이니 만큼 빌려본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요.  

 

움베르토 에코가 저자 이름에 들어가 있던가 할텐데, 전체가 에코의 글은 아닙니다. 에코의 글이 한 편 들어가 있긴 하지요. 그리고 서문인가 썼을 겁니다. 기호학자로서 퍼스의 사상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더군요.

 

영드 셜록이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에도 셜록 홈즈처럼 생각하기라든가 뭐 추리 관련 서적이 양적으로 살짝 늘어난 듯한 느낌은 드는데, 질적으론 별로 우수하지 못하다, 깊이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뭣보다 그런 책을 읽어서 정말 추리를 잘할 수 있게 될까라는 의구심부터 드는 군요. 추리기법 따위의 책을 읽고 명탐정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명탐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없지 않나요?

 

아무튼 명탐정이 되려면 형법이나 수사 기법이나 여자 스타킹 사이즈나 뭐 잡다하게 알아야할 것들이 많겠지만, 우선이 되는 것은 사고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이야기의 전개를 종합해서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고 범인을 밝혀내는 안락의자탐정이야말로 탐정의 궁극적인 이데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해리 케멀먼의 9마일은 너무 멀다 같은 책은 참고로 읽어볼 만 합니다. 단편집인데, 첫 단편인 9마일은 너무 멀다만 읽어도 좋습니다. 책을 살 수 없다면 서점에서 대충 서서 읽어도 삼십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아마 첫문장을 읽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을 거라고..생각합니다. 그만큼 단순하면서도, 추리의 본질. 즉 사고 능력을 이용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라는 부분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언뜻 전해들은 문장," 9마일은 너무 멀다, 그것도 빗속에서라면" 이 문장을 들은 것 만으로 주인공..아마 탐정이었던 듯..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하지만.. 암튼 그는 모든 것을 추론해냅니다. 보면서 내내 감탄했던 기억이.. 

 

리스트에 있는 다른 책들도 추리에 관심이 있다면, 소위 말도 안되는 드라마적인 추리가 아니라 현실에서 정말로 활용할 수 있는 추리, 사고 능력 개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들입니다.

 

 성격과 관련된 책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사람의 행동은 일괄해서, 무릎을 만지니까 불안한 거다. 즉 범인이다. 라는 식으로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심리 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뭐 개나 고양이는 대충 들어 맞지만 사람은 내면의 동기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상대방이 대화 도중에 자신의 몸을 감싸는 행동을 했다면 물론 범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줄안해서 였을 수도 있지만, 단지 그런 대화가 불편해서 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냥 원래 수줍은 사람이거나. 그러니 그런 류의 책..판매고를 위해 특정 책 제목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종류의 책은 멀리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비웃음을 살 확률이 더 높겠죠.

 

 성격과 관련해서는 사실 참 할 말이 많은데 이건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서 글을 써야겠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흔히 성격이 좋아 나빠 라는 식으로 말하는 데 뭐 그런 가치 판단 이전에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는 어떤 행동의 경향성 혹은 의식의 경향성이라고 일단 애매하게 정의하기로 하죠. 사실 성격을 깊이 이해하면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추정해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라고요. 그러니 강력 범죄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유추하는 데 있어서는 꽤 유용한 지식이 되겠죠.

 

범죄자들의 심리추적 프로파일링은, 제가 보건대 국내에 몇 안되는 괜찮은 프로파일링 안내서 입니다. 번역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저자들 이름이 전부 홈즈여서(로날드 홈즈, 스티븐 홈즈) 이게 진짜 본명인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내용은 좋습니다. 장정이 조금 투박해서 그렇지..이걸 읽고 나면 아 프로파일링이 아무데나 적용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정형태의 강력범죄에만 적용할 수 있지요.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인간의 행동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요인이나 동기, 상황 따위가 복잡하기에 모든 범죄에 같은 수사 기법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한 번 읽어두면..저는 샀습니다만..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스눕이라는 책은 발상이 상당히 흥미로운데요..가추법을 실제 현실에 적용시킨 예..물론 저자는 가추법이란 용어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만..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의 방 사진만 보고 그 사람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유추한다거나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유추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요. 지금으로서는 가장 실현가능한 형태의 셜록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밌게 읽었고 흥미로운 시사점들이 많습니다만, 더 나아가진 않더군요. 방법론적인 측면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말이죠..아무래도 이런 분야가 뭔가 결론을 내려면 좀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변인 통제도 수월하지 않고..

 

그래서 그냥 제가 책을 하나 쓸까 합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제 가설에 오류가 있다고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것도 아니니까..근데 이걸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가 4,5년 된 것 같은데 아직 개론만 주구장창이니.. 각론으로 들어가면 너무 방대해져 버려서...뭔가 집약적인 단순한 해결책..오컴의 레이저처럼 말이죠..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떠오르지 않네요..아무튼 작업 중이고..언젠가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간간히 그 단상을 내 보이게 될 것도 같구요..굳이 어거지를 쓴다면 이런 리뷰 글도 나름 개론적인 성격을 띄는 거니까..

 

뭐 아무튼 지금까지 제가 도달한 결론은 일상적인 범죄(라는 표현이 좀 조심스럽지만)의 경우에는 프로파일링은 시시할 정도로 별 게 없습니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지요.

 

다만, 제가 흥미를 갖는 건 오히려 일상에서 제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프로파일링하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억양만 듣고 그 사람의 출신지를 알아 맞추는 것도 일상적인 프로파일링이죠. 암벽등반을 즐기면, 아, 활동적인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것들을 좀 정교하게 가다듬으면 괜찮은 추리방법론을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네요. 근데, 그런 걸 만든다고 누가 보기나 할 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시간이 되는 대로 또 업데이트를 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

다 쓰고보니 얼굴의 심리학에 관해 쓰질 않았네요. 라이투미라는 미드가 있는데 거기 나오는 ..그 박사의 실제 모델이 된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폴 에크먼입니다. 사실 이 책 보고서 완전 흥분해서 더 굉장한 책을 써 주겠지? 라며 기대했는데, 마음의 행복과 평안을 찾는 뭐 그런 쪽으로 아예 진로를 변경하셔서 더 굉장한 책은 안 나올 것 같네요.

 

 폴에크먼 박사팀이 발견한 마이크로 익스프레션, 미세표정이라고 번역하는데 그걸 읽을 줄 알면 사람들의 거짓말을 귀신같이 알아낼 수 있다. 는 건데, 솔직히 그 연습을 할 시간도 없거니와 프로그램이 미국에 있어서..온라인으로도 수강이 되는 진 모르겠는데 뭘 그렇게 까지 해서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것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터라 시시해 졌습니다만, 그래도 일독할만 합니다. 특히 상대방의 감정을 잘 캐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마이크로 까지 갈 것 없이 매크로 익스프레션에 대해, 아 이런 표정은 이런 뜻이구나 라고만 알고 있어도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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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심리학- 우리는 어떻게 감정을 드러내는가?
폴 에크먼 지음, 이민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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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탄생- 뇌과학,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성격의 모든 것
대니얼 네틀 지음, 김상우 옮김 / 와이즈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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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스눕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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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들의 심리추적 프로파일링
이웅혁, 김성문 지음 / 수사연구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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