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때 일본 센코쿠시대의 전쟁 양상에 대한 발표문을 작성하면서 별로 궁금하지 않던 사실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그게 이후의 내 지적인 관심사의 행로에 적잖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지루시‘라고 하는 병사들이 등에 꼽고 다니던 깃발인데 요즘으로 치면 ‘피아식별띠‘같은 것으로 적과 아군을 구별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때서야 아 그렇지 전쟁중에는 그런 기능을 하는 물건이 필요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구체적으로 아는 것과 추상적으로 아는 것을 구별할 필요를 느꼈다.

누구랑 누구랑 싸웠대 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즉시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의 추상을 거친 결과물이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이건 효율적이긴 하지만 효율성보다 구체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잠시 꺼두는 편이 좋다.

누구가 누구에게 싱글렉테이크다운을 시도했는데 카운터를 먹어서 트라이앵글초크에 걸려 기절했대. 라고 하면 그래플링을 모르는 사람에겐 외계어지만 용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좀전의 기술보다 훨씬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앞선 문장을 문화적 전통이 전혀 다른 개체가 접할 경우 엉뚱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 과거의 인간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서술이 일종의 동음이의어적인 착오를 반복할 때가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과거 뿐 아니라 동시대의 서로 다른 준거 집단 간의 소통도 비슷한 양상을 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름들을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탓에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름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품는다. 이 차이를 합치려는 게 아니라면 차이를 발굴하는 것 그 작업이 필요하고 여기에 ‘고증‘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고증‘은 자유 토론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협상조건이며 역사적 사례와 더불어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사항이다.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을 재밌게 들었는데 ‘삼국편‘은 생각보다 소소했고 고대전쟁사는 기대를 가져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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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문장을 보았는데, 러셀 또한 ˝우리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으며 사실 뭘 알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고 말을 꺼낸다.

주요한 원인은 그의 두 제자인 크세노폰과 플라톤이 기억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물론 대체로 신뢰받지 못하는 쪽은 군인에다 답답한 구석이 있던 크세노폰의 서술로 ˝멍청한 자가 현명한 자의 말을 제대로 옮기지 못할 것˝이라는 일반의 편견이 크게 작용한다. 러셀이 언젠가 했던 말을 여기서도 재차 보게 되는데 ˝자신의 가장 멍청한 지지자보다 철학자 가운데 가장 호된 비판자가 자신의 철학을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한 그 말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데에는, 진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제대로 전해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좀 다른 얘기로 빠지는데 어째서 지지자는 쉽게 멍청해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말로 하면 빠고 팬심이고 덕질인데 남녀의 사랑과 비슷해보이지만 또 좀 다른 것 같다. 교제하는 남자/여자 친구가 존재해도 덕질은 이어지므로 그 둘은 분리/공존 가능한 감정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인원이 대체로 집단 내의 사회적 위계를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이 있고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을 적절히 취하며 특히 위계가 높은 개체에 대한 복종과 존경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런 인간의 행동을 사회적 관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듯 하다.

덕질의 대상은 일종의 얼터에고처럼 자신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자신을 대변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따라서 그에 대한 사회적 적대행위, 이를테면 모독은 참을 수 없는 감정적 흥분을 유발하는 듯 하다. 즉 대상과의 동일시의 정도가 빠의 깊이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은 놀랍게도 다양한 인간 개체에 대해 이런 동일시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인종과 같은 상징적인 개념에까지 헌신할 수 있다.

이것은 핵발전소가 터지면 재앙이 되는 것과 비슷한 사례로 인간의 이런 추상적 동일시의 능력이 대규모 협력과 연대를 가능케함과 동시에 대규모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어떤 사람들의 우려처럼 세계대전이 20세기에 발발한 데에는 인간의 폭력성이 심화된 것이 원인이라기보다는, 세계규모의 협력이 20세기에 와서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즉 대규모 협력은 언제나 대규모 분쟁의 씨앗을 품는다는 얘기. 대체로 단결력이 부족한 집단에서는 왕따가 없다. 다같이 한 마음으로 으쌰으쌰할 때 어 난 피곤해서 빠질게 하는 개체가 왕따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으쌰으쌰가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물론 그건 거대한 변화를 일구어낼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해왔든 그 변화에서 소외되는 이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마치 폭탄돌리기처럼 누군가는 그걸 떠안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아닐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을텐데. 하지만 덜 으쌰으쌰하자고 으쌰으쌰하는 건 논리적으로도 모순일뿐더러 으쌰으쌰하고 싶은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히겠지.

그러니 비록 그것이 어줍잖게 어설프게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보이더라도 남은 선택지는 사랑이 충만한 까가 되거나 냉철한 빠가 되는 것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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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이냐 학습이냐의 질문에서 먼저 검토되어야 할 대상은 질문 그 자체인데 우리는 사실상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에도 마치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에 쉽게 속박당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영혼과 육체, 실체와 현상을 마치 완벽히 독립된 두 개의 변수(혹은 상수)로 여겼다는 사실에서 당시 철학자들이 생업에 종사할 필요가 없었으며 따라서 육체노동이 인간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요소들 이를테면 음식 같은 것을 얻는데 필수적인 조건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아니면 아예 몰랐을 수도 있고.

비슷한 경우로 인간 개체는 모체의 헌신과 지지가 없이는 몇 시간의 생존도 불가능한 데다 언어습득도 불가능하다는 생물학적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게 유전과 학습 어느 한쪽으로 기울수 없는 사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산에 필요한 인간 개체의 협동은 본능에 추동되는가 아니면 학습의 결과인가.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처음부터 두 가지 요소로 분리가 되지 않으며 섞여 있어 어느 한쪽이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대개의 인간의 기본적인 구조물들 즉 지성, 언어, 육체의 항상성, 나아가 사회구조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퍼즐조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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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에 이런일이˝의 역사버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고보면 역사에 좋은 쪽이든 안좋은 쪽으로든 이름을 남기는 건 역시 좀 별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엄격하다 못해 잔인해져버린 카토라는 인물은 어떤 정치인을 딸 앞에서 부부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은 운석이 떨어지는 경우와 같이 특별한 때가 아니면 아내와 입맞춤을 하지 않는다고 자부했다는데 뭔가 변태스럽다. 아예 안하는 것도 아니고 운석 페티시가 있는 건가.

카르네아데스는 판자로 유명하지만 회의주의 철학에 있어서도 명성이 자자한 분으로, 한번은 강연을 하면서 정의를 철저히 옹호하고 그 뒤에는 이를 완벽히 부정하는 방식으로 ˝어차피 모든 가치란 생각하기 나름일뿐˝ 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는데 당연히 카토는 이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

캐릭터도 그렇고 인물들 관계도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되게 달라진 듯 하지만 사실 그냥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도 같다. 투정 부리고 미워하고 좋아도 하고 실망도 했다가 기대하기도 하고. 어느 영역에서는 좀 나아진 것 같지만 다른 영역은 아닌 것도 같다.

결국 나는 비슷하다는 쪽에 한표를 던지련다. 양적으로 보다는 질적으로. 삶의 조건이 바뀌어도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연속되고 우리는 여전히 울고 웃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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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밖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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