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때 일본 센코쿠시대의 전쟁 양상에 대한 발표문을 작성하면서 별로 궁금하지 않던 사실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그게 이후의 내 지적인 관심사의 행로에 적잖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지루시‘라고 하는 병사들이 등에 꼽고 다니던 깃발인데 요즘으로 치면 ‘피아식별띠‘같은 것으로 적과 아군을 구별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때서야 아 그렇지 전쟁중에는 그런 기능을 하는 물건이 필요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구체적으로 아는 것과 추상적으로 아는 것을 구별할 필요를 느꼈다.

누구랑 누구랑 싸웠대 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즉시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의 추상을 거친 결과물이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이건 효율적이긴 하지만 효율성보다 구체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잠시 꺼두는 편이 좋다.

누구가 누구에게 싱글렉테이크다운을 시도했는데 카운터를 먹어서 트라이앵글초크에 걸려 기절했대. 라고 하면 그래플링을 모르는 사람에겐 외계어지만 용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좀전의 기술보다 훨씬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앞선 문장을 문화적 전통이 전혀 다른 개체가 접할 경우 엉뚱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 과거의 인간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서술이 일종의 동음이의어적인 착오를 반복할 때가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과거 뿐 아니라 동시대의 서로 다른 준거 집단 간의 소통도 비슷한 양상을 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름들을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탓에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름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품는다. 이 차이를 합치려는 게 아니라면 차이를 발굴하는 것 그 작업이 필요하고 여기에 ‘고증‘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고증‘은 자유 토론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협상조건이며 역사적 사례와 더불어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사항이다.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을 재밌게 들었는데 ‘삼국편‘은 생각보다 소소했고 고대전쟁사는 기대를 가져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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