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애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며, 단 한 번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짝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내 사랑을 눈치채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늘 시치미를 떼고 힐끔,바라볼 뿐입니다. 물론 나도 바람을 핀 적은 있죠.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거나 그 짧은 설렘, 긴장, 썸이랄까, 그런 것들을 즐기고. 또 마지막 순간에는 항상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로.
나는 결국 죽을 때까지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깨닫는 데 삼십 년이 걸렸습니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겨울 휴관)
(콩밥을 나누고 에이즈 환자 모임에 가야 한다 해도 /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말할 수 없는 애인)
그런 점에서 시인은 누구보다도 열렬히 자신을 사랑하고, 경멸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더! 더! 더! / 우린 외롭게 무리 지어 겁을 먹고 망설입니다 / 얼리고 녹이고 불태우고 / 절대로 유년 시절을 쓰고 싶지 않거든요 -사생아들)
(어두운 날들 밤의 물결이여 / 모두 나를 지나쳐 어디로 흘러갔나 / 왜 일부는 나에게 있나-거기 누구 없어요)
(미완성으로 끝내는 것이다 / 포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재능이 좋다 / 나무들은 최선을 다해 헐벗었고 / 새 떼가 죽을힘껏 퍼덕거리며 날아가는 반대로 -12월)
(네가 놀라지 않는 것에 / 내일은 더 무서운 자극이 필요할 거다 / 봐라, 네 식욕은 상상력은 아무것도 아니잖니 -너무 놀라지 마라)
(나는 나를 받아치고 / 숨 가쁘게 떠나보내며/ 나를 그리워한다 / 두려움에 떨며 나를 기다린다 -크라잉게임)
(딸 하나 전도 못 해 대단히 자존심을 다쳤던 무능한 전도사. 과민한 결벽증에 시달렸던 독거노인, 그녀가 내 첫번째 엄마다. 영원한 적수이자 연인, 기타 등등이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